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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2일 : 론세스바예스~수비리(21.9km)


제2일 : 론세스바예스~수비리(5시간 30분)


2019년 9월 20일


몸이 곤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아주 잘 잤다.다행히 크게 코고는 사람도 없었다.

5유로주고 구입한 아침식권을 들고 시간맞춰 식권에 적혀진 레스토랑으로 갔더니,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든든히 먹고 7시 30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도로와 나란히 하는 경사진 숲길을 따라 걸었는데,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라 앞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용을 쓰며 걸었다.

크게 고도차가 나지는 않지만,여러번 도로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했다.


산티아고까지 787km..

거리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냥 걷다보면 시간이 다 해결해주려니~했다.


첫번째 만난 마을이 참 예뻤다.

과하지 않게 색칠한 지붕들이며 새하얀 담벼락,그리고 창틈에 올려진 화분이 시선을 끌었다.



아침일찍 마을을 지날땐 항상 조심했다.

그들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춰야했고,스틱은 손에 쥐고 소리가 안나게 들었다.

그게 그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마을분들을 만날때면 먼저 `부엔까미노!`하며 인사를 건네주곤 했다.

`올라,부에노스 디아스`하며 답을 했는데,처음엔 좀 어색했던 인삿말은 얼마안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을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니 목장길이 나왔다.

걷는내내 말똥 소똥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다.

이따금씩 농가트럭도 지나가서 옆으로 밀착하여 멈춰서곤 했다. 



채 마르지 않은 양말을 옷핀으로 고정하여 배낭에 매달았다.

다른건 쉬이 마르는데,언제나 두꺼운 양말은 잘 마르지 않았다

건조기를 돌려도 끝부분은 늘 젖어 있었다.



몽환적인 아침풍경을 마주했다.

들판위로 안개가 피어오르며 멋진 풍경을 선사해줬다.

아침풍경은 까미노길이 주는 가장 큰 선물중의 하나였다.

어느날은 물안개가 운치를 더해줬고,또 어느날은 새벽하늘이 말이 안나올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또 어느날 골목길을 지날땐 하늘색이 완전 청색일때도 있었다.


중간중간 식수대가 설치되어 있어 물걱정은 안해도 되었다.매일같이 플라스틱 물통만 갈아주면 된다.

물이 충분해 그냥 지나칠라치면 동네어르신이 붙잡고 물맛 좋으니 한번 마시고 가라고까지 했다.

 



가끔씩 나타나는 마을은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큰마을이든 아주 작은 마을이든 숲길이나 산길을 걷다 저만치에 마을이 보이면 너무 반가웠다.

bar도 마찬가지였다.걸음이 지쳐갈 무렵에 만나는 bar는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창가마다 놓여진 화분들이 참 낭만적이었다.

그들의 여유가 느껴졌다.




마을 가운데서 길은 다시 숲길로 이어졌다.

꽤 힘든 오르막이었는데,헐떡대며 올라 쉬지도않고 곧바로 길을 이었다.




드디어 쉬어갈 수 있는 bar가 나왔다.

쉬고싶은 마음은 다 똑같아 순례객들로 붐볐다.화장실은 줄까지 서있었다.

세요를 찍고,1.7유로하는 오렌지쥬스와 바나나 하나를 샀다.

즙을 `후고`라고 말했더니,`쑤모`로 정정해줬다.

중남미에서는 `후고`를 쓰고 스페인에서는 `쑤모`를 썼다.

우리 스페인어 선생님은 파라과이에서 공부를 하셨다.





다시 숲으로 들었다가 긴 오르막을 만났다.

따가운 햇살까지 내리쬐니 완전 죽을맛이었다.

중간중간 산딸기를 따먹어가며 더위를 이겨내본다.아주 달아 자꾸만 손이 갔다. 

주의할점은 땅바닥과 가깝게 달린 열매는 따먹지 말아야 한다는것이다.

말이나 다른 짐승들의 오물이 묻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말 부러운 순례객..

나는 왜 저렇게 여유가 없었을까?


넓은 찻길을 건너니,간이매점이 있다.

매점 바로 옆에 앉아 바나나를 먹으며 쉬었다 간다.



다시 또 숲이다.

길한번 참 다양하게 경험하는 날이었다.

도로,숲길,돌길,흙길,목장길...

지루할 틈 없이 긴장의 연속이었으니,심심하진 않았다.




신나게 내리막을 내려가다보니,나뭇가지 사이로 목적지인 `수비리`가 보였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며 몸까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수비리로 들어가는 입구엔 광견병의 다리라 불리는 다리가 하나 있고,그 아래로는 제법 폭이 넓은 강이 있었다.

많은 순례객들이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나도 물이 무릎까지 오게해서 발을 담가 보았다.

적당히 차가운 물온도가 좋아 한참동안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었다. 


1시가 조금 못된 시간에 수비리에 도착했다.

출발한지 5시간 반이 걸렸다.더이상은 걸을 힘이 없을 정도로 발바닥에 불이 났다.

공립알베르게는 공사중이라 다리를 건너자마자 위치한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일인당 15유로하는 사립알베르게였는데,10명이 한방을 썼다.

일부러 동양인만을 모아 놓았는지,내 침대 앞과 옆으로 대만인과 일본인이 자리했다.

마침 일본인 순례객은 오리손에서 봤던 요오스케였다.

키가 작고 아주 귀염성 있는 얼굴이었는데,함께 동행한 사람이 부인이라 그래서 조금 놀랐다.

나이차가 무척 있어보이길래 모자지간인줄 알았었다.알고봤더니 열다섯살 정도의 나이차가 있는 커플이었다.

어쨌든..아시아인이 한방에 모였으니,아시아인 파티를 하자며 으쌰으샤했다.




걷다보면 끼니를 놓칠때가 많았다.

아침일찍 걷기 시작하면 늦어도 한두시면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중간에 bar에 들르지 않으면 점심을 놓치기 일쑤였다.

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숙소먼저 들어가야했다.

그런 다음엔 몸뚱아리를 씻고,또 그 다음엔 빨래를 해야 그 다음날 옷이 확보되었으니,일찌감치 도착해도 할일은 언제나 태산이었다.

다행인건,햇살도 좋고,해도 길어 빨래가 아주 잘 마른다는것이었다.

보통 두세시간만 널어놓으면 뽀송뽀송해졌다.

할일을 마치고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또 시에스타에 걸리기도 했다.


허기가 져서 레몬맥주 한잔씩하고 동네를 돌아다녔는데,작은 마을이라 크게 볼꺼리는 없었다. 


저녁은 뽀요 빠에야와 샹그리라비노를 주문했다.

빠에야는 조금 짰고,비노는 그럴싸했는데,

언니는 체기가 있다며 많이 남겼다.


다음날은 빰쁠로냐였다.

꽤 큰 대도시라 알베르게 확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론세스바예스에서는 4시에,그리고 이곳 수비리에서는 1시 넘어 마을전체 숙소들이 full이었다. 

그 후에 도착한 순례객들은 택시를 이용해 다음 마을까지 가거나 아님 5킬로 가량을 더 걸어가야만 했다.

빰쁠로냐는 대도시다.거기에 주말이다.마침 와인축제기간이라고도 했다.

관광객과 순례객이 모아지면 숙소전쟁일터..

공립은 하늘의 별따기일테고,사립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해보자..바로 이 순간을 위해 배워 온 스페인어를 써보자.

한군데는 안받았다.또 한군데는 이미 예약이 꽉 찼단다.

다행히 다른 한군데가 받았다.그 쪽에서 `올라`하는 순간,조금 떨렸다.

`올라..나는 순례자다.

두명 예약하고 싶은데,침대 두개 있냐?

4인실 있는데,일인당 아침 포함해서 16유로다.

예약할께.

늦어도 3시 까지는 도착해야해.늦으면 꼭 전화해라.

발레.무차스 그라시아스.아스따 마냐나~~`




숙소예약을 해놓으니 마음이 너무 편했다.

그 후로는 매일같이 다음날 묵을 알베르게를 예약하며 다녔다.


아홉시쯤 되어 침낭안으로 들어가 깊은 잠을 잤다. 

조금씩 긴장이 풀리며 적응이 되어간다는 증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