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둘째날(2012년 8월 1일)
(희운각-가야동계곡-수렴동-백담사)
밤차타고 내려와 밤길을 걸어 언니가 오셨다.
다섯번의 등골오싹한 경험을 하시며 천불동계곡을 어렵게 걸어오셨다고..
언니를 기다리며 신선대에서의 일출을 놓칠까 조급해했던 내가 괜히 부끄럽다.
끓여놓은 김치찌개에 언니가 준비해오신 밑반찬들을 먹고 부지런히 신선대로 오른다.
어느새 내마음을 읽으시고 천천히 갈테니 먼저 가라고..
똥빠지게 걸어 신선대에 닿으니,대청봉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범봉너머로 안개가 솔솔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침햇살에 공룡의 봉우리들이 막 꿈틀거린다.
신선대너머에 있는 꽃밭에서 놀다가,다시 신선대로 올라와 과일먹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다.
걸리면 혼자 독박쓰고 10만원내라는 조건으로 산님 한분이 범행(?)에 가담하고,
셋이서 살곰살곰 가야동계곡으로 들어선다.
은밀한곳으로의 산행은 언제나 짜릿함의 극치다.
때묻지 않은 처녀림을 만나는 것부터 거친산길을 헤쳐나가다보면 그야말로 산맛이 난다.
나 자연으로 돌아갈래~~~~하며 두팔벌려 외치고 싶어진다.
명경지수..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이니..
몸을 담근다.말이 필요없다.환상이다.
이제서야 씩씩하게 소주한병을 꺼낸다.
이맛또한 말이 필요없다.환상이다.
산우가 윤동주의 `서시`를 강릉사투리로 구성지게 읊으신다.
배꼽을 잡는다.
이렇게 산이 또하나의 인연을 만들어주었고,경계로부터 무장해제시킨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2차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에 읊기로 예약받고..
가야동계곡의 매력에 푹 빠져든다.
어려운구간이 있으면 잠깐 숲으로 들어섰다가 다시나와 너른 암반위를 물길따라 내려간다.
어느 가을날,단풍곱게 물들때..또한번 오고싶다.
아름다운 물빛..
또 발걸음을 멈춘다.
절대 지나칠 수 없는곳..
빙어 날다~~~
제2의 솔맨형님 탄생이요~~~~
어릴적 동막골에서 개헤엄쳤던 실력만 믿고 쪽빛沼에 퐁당~~
몇번 퐁당거리다 일어서는데..어랏?? 이건 뭐지?? 발이 땅에 안닿는다.너무 물이 맑아 깊이가늠을 안했던 나의 불찰..
꼬륵꼬륵 물속에서 내다리를 점점 잡아당긴다.허우적허우적..엄마야~~나 살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들고..
아..이렇게 生을 마감하는구나...이제 인생 반밖에 못살았는데..흑흑..
아직 갈 운명은 아니었나보다.
그 짧은 순간에 어제 봤던 `도둑들`의 한장면이 생각났다.
팹시,김혜수가 물속에서 눈을 뜨고 있던장면..
눈을 떴더니,신기하게도 눈에 물이 안들어온다.밑바닥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물먹으며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바위에 붙고..오리소리를 내며 토하기 일보직전에 이르고..눈물콧물 다 쏟고..
한마리 빙어처럼 날던 제2의 솔맨형님은 상황종료 되어서야 날 구하신다며 도착하시고..
장난일줄 알았다고...
한마리 아름다운 인어가 되어 유영하려했던 꿈은 꽥꽥 오리신세가 되었다..
어쨌든..나,살!았!다!!...하느님 부처님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쓰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다시 길을 나선다.
깊고깊은 골엔 뱀도 공생한다.아무리 자연인으로 돌아왔어도 뱀과의 조우는 거부하는데..
어제 한계령오름길에 한마리 봤고,오늘만도 벌써 세마리째다..도마뱀까지 합치면 다섯마리째..
이번엔 독사다.저 루트밖에 없는데,가슴이 후당거려 도저히 발을 뗄 수가 없다.
한참을 우왕좌왕하다가 언니가 먼저 통과한 다음에야 온갖 괴성을 다 지르며 통과..
나참..오늘 가지가지 다한다~~
천왕문
지난번에 이 계곡을 버리고 우측계곡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놓쳤던 천왕문을 오늘에야 마주한다.
거대 바위문이 경외감까지 들 정도다.올려다보다 뒤로 넘어갈뻔..
그 아래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 한 분 발견..
신선이 따로없다..
아마도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저 모습일 수도 있겠다..
쪽빛물은 내내 눈을 즐겁게 하고..
사람의 흔적들이 보이는걸보니,수렴동대피소가 얼마 안남은거같다.
앞장서던 언니가 멈칫 놀라 되돌아오시는데..목간하시는 스님들을 보셨다고..
스님들이 얼마나 혼비백산하셨을까 짐작하니,괜히 죄송스럽고..웃음도 나오고...
복불복..
간크게 수렴동대피소마당으로 돌진하기로 한다.
척후병인 언니가 수신호를 보내면 따라붙고..숨소리까지 죽이며 살곰살곰..두근반세근반 합이 여섯근이요..
화장실옆에 있는 금줄을 넘고..무사통과~~
사이다건배로 자축한다.이토록 톡쏘는 사이다맛은 난생처음..
영시암
마지막으로 계곡물에서 몸단장하고 백담사로 내려온다.
용대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총알처럼 달려 원통으로 나와 버스표먼저 끊어놓고 가장먼저 맥주한캔을 폭풍흡입한다.
아,얼마나 그리웠던 이 맛인가....
흥미진진했던 1박2일간의 설악산행이 끝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며 올림픽소식을 듣고,정치소식을 듣고..
밀려있을 집안일을 생각한다.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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