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Santiago)
2019년 10월 21일
그토록 편안한 잠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밤새 한숨도 못잤다.
등짝에 난 수포는 옷깃만 스쳐도 아프고 바늘로 콕콕 찌를듯 아팠다.
그동안은 그럭저럭 참을만 했는데,긴장이 풀려서인지 통증이 극도로 찾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베드버그에 물린 흔적이 아닐꺼란 생각이 들어 검색을 했더니만,대상포진 증세랑 너무 똑같았다.헐~~
만일 대상포진이라면 내가 일주일동안 견뎌낼 수는 없었을텐데..
조식뷔페가 무척 근사했지만,너무 걱정스런 마음에 잘 넘어가지도 않았다.
큰병이면 어쩌나~주사를 맞으면 어쩌나~~
근처에 보건소가 있었지만,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대학병원을 가기로 했다.
어차피 여행자보험을 들고 왔으니,그것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이른 아침 골목길엔 피니스테레나 묵시아까지 길을 잇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두곳을 다 가려면 최소 4~5일은 더 걸어야하는데,대서양을 바라보는 서쪽의 끝으로 가는것이었다.
다시 배낭을 메고 가라 그러면? 무조건 no~~~
산티아고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거리가 먼데다 좀 헤매기도 하여 40분이 넘게 걸렸다.
일단 인포메이션을 찾았다.
`베드버그에 물린거 같다.일주일동안 약을 먹었는데 오히려 더 심해졌다`
간신히 더듬더듬 말했더니,다른 건물인 응급센터로 안내했다.
여권을 내밀고 주소를 적고 다시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베드버그에 물렸는데,어쩌구 저쩌구~~~
서류를 작성하길래 끝인줄 알았더니 또 한군데를 더 들러 손목에 인적사항이 적혀있는 팔찌를 채웠다.
그런 다음엔 대기실에 앉아 초긴장하며 방송에서 내 이름이 나오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었다.
스페인 환자들 속에서 기다리기를 한시간여...
누구누구 몇번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방송은 수시로 나오는데 도무지 내이름은 부르지를 않았다.
아니,부른건지 안부른건지도 모르겠다.
귀를 쫑긋 세워 방송음에 초집중하다 문득 손목에 채워준 팔찌에 48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48번째로 부른다는건가?
언니가 옆에서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그거 니 나이거든...ㅎㅎ
기다림에 지쳐갈 즈음 드디어 `세뇨라 황,9번방으로`라는 방송이 나왔다.
너무나도 상냥하고 예쁘게 생긴 의사선생님을 대면하니 마음이 놓였다.
등짝을 보여줬더니만,단박에 `herpes zoster`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혹시나하여 대상포진이란 용어를 검색해 두었는데 역시나였다.
이런 저런 유의사항과 약처방이 내려졌다.
다행히 주사는 맞지 않았다.이미 첫증상이 발생한지 골든타임 72시간이 지난 후라 치료는 약 뿐이었다.
시계까지 그려 약먹는 시간을 설명하고,샤워하는 흉내까지 내며 주의사항을 일일이 알려 주셨는데,정말이지 친절함의 끝판왕이었다.
행색이 남루한 동양인 여자가 타국에 와서 병원까지 찾아왔으니 딱하기도 했겠지..
그동안 먹었던 베드버그약이 다행히도 항히스타민 역할을 하여 견딜 수 있었던 거였다.
어쨌든 나는 그 악명높은 대상포진의 고통을 미련하게 견뎌냈고,언니는 계속하여 독종이라 놀려댔다.
덕분에(?) 스페인 대학병원도 가보고 황미숙 출세했다.ㅎ
병원비도 안받고 약처방전만 들고 가라길래 스페인은 외국인에 대해 의료복지가 참 잘되어 있나보다 생각했는데,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나중에 우편으로 청구하는 시스템이었다.
서양약이 좋긴 좋은지 약을 먹고나니 살만해져서 다시 거리를 쏘다녔다.
광장은 여전히 북적였고,아치문 앞에서는 여전히 버스킹공연중이었다.
점심은 갈리시아 지방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고추 튀김을 먹었다.
`pimientos padron`이라 불리는 요리였는데,많이 맵지 않고 기름에 튀겨 아주 맛있었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었는데,꾹 참느라 혼났다.
알라메다 공원은 그늘이 많고 숲이 우거져 산책하기 아주 좋은 곳이었다.
공원의 명물인 할머니 동상도 아주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이곳 특유의 날씨를 말해주듯 한손엔 우산을 들었다.
제주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여기 완전 외국같지 않아,언니~~`ㅎㅎ
알라메다 공원을 찾은 이유는 바로 산티아고 구시가지 전경을 한 눈에 넣기 위해서였다.
전망대 앞에 서자마자 너무나도 근사하여 환호성을 질렀다.
주황색 지붕위로 우뚝 솟은 산티아고 대성당은 더욱 위엄있고 웅장해보였고,천년이 넘게 이어진 순례자들의 숨결이 느껴지는듯 신비로웠다.
오전엔 아리따운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더니,오후엔 왠 남자가 희한한 악기를 들고 연주중이었다.
참 희한했다.
모처럼 주어진 3일간의 달콤한 휴식시간에 맛있는거 먹으며 푹 쉬고 도시에서의 여유를 맘껏 누려봐야겠다고 맘먹었지만,불과 하루 반나절 머물렀을 뿐인데 벌써 도시가 지루해졌다.
벌써 새로운 환경의 새로운 도시가 그리웠다.
난 아무래도 느긋하게 한도시에 오래 머무는 체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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