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일 : 아르수아~오 뻬드로우소(19.2km),4시간 30분
2019년 10월 19일
비교적 짧은 구간인데다 평이한 구간이라 부담이 없었지만,비가 말썽이었다.
7시 30분에 출발하여 도착할때까지 비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소리없이 내리는 비는 양도 제법 많아 연신 우의를 짜가며 걸어야만 했다.
어쩌자고 내가 제기능도 못하는 이 허접한 우의를 가져온건지 후회막급이었지만,그렇다고 50유로가 넘는 우의를 또 살 수는 없었다.
50유로면 순례길에서 이틀은 먹고 살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순례길 준비물 중 가장 큰 실수였다.
비가 오다말다 오다말다를 반복할땐 성가시다 투덜댔는데,차라리 그게 더 나았다.
쏟아지는 비에 안개까지 자욱하여 그저 앞만보고 묵묵히 걷기만 할 뿐이었다.
bar에 들러 비가 잦아들기를 바랬지만,오히려 더 심하게 쏟아져 내렸고,
풍경은 요며칠의 풍경과 별반 다를바 없는 아주 단조로운 풍경이었다.특이한건 유칼립투스 숲길이 많다는 것이었다.
도로와 나란히 걷다가,작은 농가를 지나고,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숲길을 걸을땐 흙탕물에 물 웅덩이를 피하는게 관건이었고,농가를 지날땐 배설물들을 피하는게 관건이었다.
신발도 조금씩 젖어들어 발끝부분이 축축했고,바짓가랑이 흙탕물은 말할것도 없었다.
그렇게 빗속에서 20km를 걸어 오 뻬드로우소에 도착했다.
얼마나 정신없이 걸었는지 땅만보고 걷다가 오 뻬드로우소를 지나쳐 다시 돌아왔다.
모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 채,숙소로 들어갔다.
100여명 가까이 수용하는 큰 알베르게였는데,아주 체계적으로 운영되는거 같았다.
샤워실은 남녀구분이 되어 아주 넓었고,머리맡에는 각자 쓸 수 있는 콘센트도 있었다.
대박아이템은 찜질방까지 있다는거였는데,아쉽게도 나는 사용하지 못했다.
등짝으로 난 수포때문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도 무척 따꼼거렸기 때문이었다.
주방도 아주 넓고 깨끗해서 아주 맘에 들었다.
10유로가 아니라 15유로를 줘도 안 아까울 그런 시설이었다.
숙소 아가씨가 추천해준 레스토랑에 갔더니,식사준비가 안되어 정식메뉴는 안되고 음료만 가능하다 그랬다.
비가 내려 어디 갈데도 마땅찮아 할 수 없이 따뜻한 차를 시켜 몸을 녹였다.
차 한잔으로 요기가 될 리 만무했다.아이스크림을 꺼내 먹고 있는데,그새 음식이 된다며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진작에 된다 그랬으면 음료값은 안내도 되는건데..
음식을 시키면 음료와 후식이 딸려 나오니 안써도 되는 돈을 쓴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기분좋게 농어한마리를 먹었다.
살이 부드러워 입에 살살 녹았다.
시장이 반찬이라 더 맛있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다.비싼 점심이라 더 맛있었다.점심값으로 둘이 합쳐 40유로나 냈으니...
오늘은 식대가 좀 나갔다.
아르수아는 한바퀴 돌아봤자 30분도 안되는 마을이었는데,현대식건물들이 많아 크게 볼꺼리는 없었다.
슈퍼에 들러 저녁꺼리를 사며 숙소까지 가는걸로 시내구경을 마쳤는데,
순례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일부러 성당이 있는 한적한 뒷길을 택했다.
돌담길 옆으로 돌과 나무로 지어진 오레오가 눈에 띄었다.
옥수수와 달걀,그리고 채소와 과일로 한상 차려놓고 저녁을 먹는데,바로 옆에서는 외국인 남녀가 요리를 하며 연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부산아저씨들도 만났다.
걸음이 빨라 벌써 산티아고에 도착했을꺼라 생각하셨다는데,아주 의외라는 표정이셨다.
이제,정말 딱 하루 남았다.
내일이면 드디어 그토록 바래왔던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그동안의 소회를 정리하고,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품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모녀사이로 보이는 외국인 순례자 두명이 마치 제집 안방인양 시끄럽게 떠들어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멈추겠지~하며 참았지만,오히려 더 웃고 떠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마치 주변사람들을 허깨비로 취급하는것 같았다.
누군가 제지해주기를 바랬지만,아무도 나서지를 않아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주 교양있게 한마디 했다.
`익스큐즈 미,쉿~~`
강도높게 불만을 표시하고 싶었지만,말빨이 딸리다보니...
아,진짜 영어 좀 잘하고 싶다.
오늘밤은 꿈이나 잘 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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