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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3일 : 수비리~빰쁠로냐(21km)


제3일 : 수비리~빰쁠로냐(21km),6시간


2019년 9월 21일


비가 제법 내리는 아침이었다.

한국인 순례자와 일본인 순례자는 5시쯤 되어 벌써 나갔고,대만인 순례자도 커버를 씌우며 배낭을 꾸리고 있다.

숙소가 정해진 우리만 느긋했다.

늦어도 3시까지만 가면 되었다.

근심을 덜어내는 성스러운 작업(?)을 마치고,침대에 앉아 요플레와 빵으로 요기를 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7시가 넘으니 감쪽같이 비가 그쳤다. 

어제 건넜던 다리를 다시 건너 오른편으로 난 아르가강을 끼고 걸었다.


아침공기가 더없이 맑고 투명했다.

순례자가 없어 오롯이 둘이서만 한참을 걸었는데,노란색 화살표와 까미노 시그널을 찾아가며 걷는 재미가 꽤 솔솔했다.

나무봉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바닥이든 나무든 잘 살피면 그 어디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먼저 알베르게를 나섰던 대만 아가씨 둘이 앞서가고 있었다.

배낭은 동키서비스를 했는지,짐이 단출했다.

다음 구간 알베르게까지 배낭을 부치고 몸을 가볍게 해서 걷는 순례자가 많았는데,숙소에 마련된 종이봉투에 3유로에서 5유로의 돈을 넣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카운터옆에 두면 알아서 배달을 해주었다.

처음엔 무겁게 느껴졌던 배낭도 점점 적응이 되어 그런대로 짊어질만하여 마지막날까지 동키서비스는 하지 않았다. 


조금 출출했지만,bar가 있는 라라소아냐까지는 왕복으로 오가야만해서 곧장 아레마을을 향해 걸었다.

그 후,작은 마을을 몇번 지났지만 먹을만한 곳은 없었다.





아무리 평지길이라도 오르내림이 많았다.

가끔 오가는 차도 피해야했고,자전거도 피해야 했다.

비 온 후라 싱그러운 수풀속을 기분좋게 걸을 수 있는건 참 좋았다.





새벽녘 내린 비로 중간중간 흙탕물이 많아 바짓가랑이며 등산화는 엉망이 되었다.

오르막은 그런대로 올랐는데,반질반질한 돌길은 너무 미끄러워 모든 순례자들이 엉금엉금 기어내려왔다.

바짝 신경쓰며 내려가는데,누군가 자빠져 무릎이며 팔꿈치에 피가 흘렀다.

독일에서 온 쿤타였다.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양쪽에서 부축여 미끄러운 돌길을 내려와 그래도 마음이 안놓여 상처를 닦고 언니가 후시딘을 발라주었더니,주변 순례객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상처를 보면 꽤 아플만도 한데, 쿤타는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야한다며 휴대폰을 건냈다.

참 유쾌한 사람이었다.


쿤타의 감사인사는 아주 요란뻑적지근했다.

언니랑 나를 돌아가며 안고는 양쪽 볼에 쪽쪽하고,양 손을 잡고 또 쪽쪽거렸다.

좀 민망했지만,그게 스페인식 인사법이었다.

그 후,어떻게 걸을까 걱정했는데,무사히 빰쁠로냐까지 잘 도착했다.



다시 계곡을 지나고 숲길을 지났다.

계곡물은 상당했다.숲도 아주 울창했다.




먼저 앉아 있었던 순례자가 자리를 내어주어 의자에 앉아 오렌지쥬스를 한잔 마셨다.

바나나도 하나 사서 배낭에 넣었다.

오렌지쥬스는 정말 훌륭한 음료였다.

주문을 하면 곧바로 즙을 내어 첨가물없이 한컵 가득 내어 주었는데,달착지근해서 갈증해소엔 아주 그만이었다.

더러는 종이팩에서 따라주기도 했는데,`나뚜랄`이라고 말해야 직접 즙을 짜주었다. 


쿤타를 만나 다시 또 인사를 받았다.

술을 무척 좋아하는지,배낭에서 술을 꺼내 나눠 마시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니,사람들이 웅성웅성거렸다.

곧 축제가 시작된다고 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에게 몇시부터 시작하냐 물으니 `아오라,아오라`그랬다.

하지만 곧 시작한다던 축제는 10여분이 지나도 조용했다.

마을분들이 전통옷을 입고 전통음식을 나눠먹으며 팔기도 했는데,마냥 기다릴 수 없어 마을을 벗어났다.








다리를 건너니,길은 두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강변을 따라 걷다가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를 건너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루트였다.

잠시 고민하다 많은 순례자들이 걷는 왼쪽루트를 택했다.



강변따라 걷는 길은 완만하고 좋았다.

구불구불한 길의 곡선이 특히 예뻤다.

수풀이 울창해 계곡가까이에는 다가갈 수 없었는데,물소리가 무척이나 우렁찼다.




산기슭으로 오르는 길은 죽음이었다.

햇살이 강해 왼쪽볼이 무척 따가웠다.

기미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혼자 오신 성남언니~~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처음 만났는데,아주 야무지게 꾸준히 잘도 걸으셨다.

30일동안 걷는다 하셨는데,충분히 걷고도 남을 체력을 갖고 계셨다.

혼자 오신 분중에는 올해 칠십이 되셨다는 경수언니도 계셨는데,정말 잘 걸으셨다.

마을마다 있는 성당에 들르시며 미사보는걸 큰 기쁨으로 여기시는 분이었는데,32일만에 완주하시고 돌아오셨다.

밖에 나가보면 참 대단하신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복숭아 파는 보따리상 아저씨를 만났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막 보따리를 푸는 중이었다.

종류별로 어떤건 1유로,또 어떤건 0.7유로를 받았는데,지갑을 꺼내기도전에 뒤따라오시던 부산아저씨가 먼저 선수를 치셨다.

론세스바예스에서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동석했던 그 처남 매부팀이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내 평생 그렇게 당도높은 복숭아는 처음이었다.

입안가득 달달함이 넘쳤고,과질은 엄청나게 단단했다.

그 후로 납작복숭아며 하얗고 빨간 복숭아를 수없이 사먹었지만,그 보따리상 쎄뇨르가 팔았던 그 당도는 따라갈 수 없었다. 



중세다리를 건너면` 아레`라는 마을이었다.

그러니까 빰쁠로냐의 초입에 해당되는 마을이었는데,그곳부터 제법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곳을 통과했다. 





아레 지역 이후로는 계속 도심을 통과하는 길이었다.

시가지 구경을 하다보면 노란색 화살표를 놓치기 쉽상이라 신경써서 걸었다.





발바닥에 잡힌 물집 때문에 언니가 고생중이었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물집이었는데,하필 발바닥에 닿는 부분이라 신발을 신을땐 너무 힘들어했다.

약국에 가보면 뭔가 방도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그냥 물집밴드를 내미는걸로 끝이었다.


순례자들 대부분이 발에 생긴 물집때문에 고생했다.

매일매일 25킬로 정도를 걸어야하니 어쩌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만큼 발을 혹사시키는 것이었다.발바닥도 무릎도 몸뚱아리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늘과 실은 순례자들의 필수품목이었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나야 발바닥이 익숙해져 조금씩 굳은살이 박히기 시작했다.

나도 양쪽 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몇일 고생했다.

저녁이면 바늘로 찔러 물을 짜내고,종아리 근육을 푸는게 하루의 아주 중요한 일과였다.

아침이면 등산화를 신는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신기한건,걷다보면 또 익숙해지고 적응되었다.

사람은 다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었다.




까미노 위에선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시가지를 통과할땐 늘 이방인이라는걸 실감했다.

어수선하게 두리번거리며 과일가게며 기념품가게등을 들여다봤다.




빰쁠로냐로 들어가는 도시성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투박해서 더 멋스러웠다.

세월의 더께가 어느만큼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요오스케 부부가 앞서가고 있었다.

`부엔까미노,곤니찌와~~`

내맘대로 이것저것 섞어 인사하니 웃었다.




어마어마한 성벽을 따라 걸었다.

노란색 시그널이 안보여 제대로 가고 있는건지도 몰랐다.

요오스케 부부도 이 길이 맞냐고 물었다.

일단 배낭 멘 순례자들이 몇 있어 따라가보기로 했다.

성곽안으로 들어가 시그널을 찾아보기로 했다.




프랑스 문을 통과하면 바로 빰쁠로냐 구시가지였다.

테레비서 봤던 그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었다.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에서 나왔던 그 축제였다.





시가지로 들어가니 눈이 현란해졌다.

높은 건물에 멋스럽게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연신 쳐다봤고,

가게마다 신기해서 다 들여다봤다.

하다못해 개를 끌고가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폼나 보였고,아이들은 인형이 따로 없었다.


옷차림은 정말 다양했다.

반팔에서부터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까지,심지어 끈나시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스페인날씨가 그랬다.

햇살이 있을때와 없을때의 기온차는 천지차이였고,

밤과 낮의 날씨 또한 급격하게 차이가 났다.

나도 하루동안에 반팔과 다운쟈켓을 번갈아 입기도했다. 






예약한 알베르게를 찾는건 너무 힘들었다.

둘 다 지도 보는것에 서툴다보니,구글지도를 켜고 걸어도 방향을 잘 못잡았다.

언니는 나보다 훨씬 나았다.왔던길은 언제나 기억했다.

나는 왔던 길도 못찾고,알베르게를 나와 돌아다니다 집도 못찾고 헤맬 때가 많았다.

길에 관한한 완전 맹탕이었는데,아이러니하게도 매일같이 산티아고로 가는 길 위에 서있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골라 물어가며 가는게 가장 빨랐다.

쭉~가서 왼쪽,아니면 오른쪽..

항상 여기까지만 알아듣고,그 다음은 못알아 들었다.

뭐 신호등이 있는데 건너지말고 꺾어지네마네 하며 설명이 장황해지면 그냥 고개만 끄덕하고,다음 장소에 가서 또 물어보곤 했다.

그 날은 운이 좋았다.

지나가던 세뇨리따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숙소 바로 앞까지 딱 모셔다 주었다. 

하도 고마워서`그라시아스` 에 이어 `메 아 쌀바도`를 외쳤다.

니가 우리를 살렸다~~~ 


알베르게는 4인실이었는데,샤워실이며 욕실이 깨끗했다.

아침식사시간은 8시부터였다.일찍 나와야해서 아침은 못먹는다하니 도시락을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친절도 하셔라~


카운터 청년은 목소리가 참 다정다감했고,인내심도 있었다.

서툴게 이어가는 나의 스페인어를 끝까지 차분하게 잘 들어주었다.중간중간 `무이 비엔~`하며 칭찬까지 하면서..

게임을 좋아하는지,정원을 가느라 사무실을 오갈때면 게임에 열중이었다.

불켜는 스위치가 아무리 찾아도 안보여 내려갔더니,그 때도 게임중이었다.


샤워를 하고,옷가지를 빨아 뒷뜰에 널어놓자마자 서둘러 알베르게를 나갔다.

대도시라 여기저기 둘러볼 데가 많았다.

머무는 시간은 반나절,그러니 발빠르게 움직여 알차게 보고가야만 했다.

 



순례객에서 관광객이 되어 거리로 나갔다.

조금 낯설었지만,골목골목 다니며 그들의 생활상을 본다는게 너무 흥미로웠다.  

빵집을 지날때면 빵냄새가 너무나도 향기로웠고,하몽집을 지날때면 다양한 형태의 하몽이 신기했다.

치즈며 햄종류도 정말 많았다.

과일은 정말 저렴했다.

납작복숭아 몇개를 집어도 2유로를 넘지 않았다.

햇볕이 좋아 모든 과일의 당도가 상당했다. 



골목끝으로 빰쁠로냐 대성당이 보였다.

큰도시든 작은 도시든 어딜가나 성당을 찾아보는것도 순례길의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가끔 미사시간에 걸리면 조용히 들어가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종교가 없는데도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저절로 움츠러들기도 했다. 









빰쁠로냐의 중심 광장인 까스띠요 광장으로 갔다.

거기에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이루나`카페가 있었다.

한방에 찾을 수 없어 몇사람한테 물었는데,스페인청년이 친절하게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1888년에 지어졌다는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오래된 건물답게 무척이나 고풍스러웠다.



야외테이블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그들속에 섞여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순례길의 고단함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광장 중앙으로는 예쁘게 지어진 정자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오르내리며 뛰놀고 있었다.


어느 레스토랑 앞에 츄러스 사진이 보여 얼른 들어갔다.

스페인에서 꼭 먹고 가야할 음식을 메모해 갔었는데,바로 그 목록 중 하나였다.

츄러스의 쫀득함도 끝내줬지만,찍어먹는 초콜렛이 완전 기똥찼다.

아주 달콤할 줄 알았는데,구수한 맛이 났다고나할까?

너무 맛있어서 스푼으로 막 퍼먹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거리의 악사들을 많이 보곤했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1유로씩 투척하곤 했는데,그것도 한푼두푼 쌓여가니 큰돈이 되어

나중엔 센트몇개를 넣거나 그냥 사진만 몰래 찍었다. 



성곽 위로 올라가봤다.

빰쁠로냐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붕색을 통일했는지 다 주황색이었다.

일몰까지 봤음 좋았겠지만,일몰시간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보통 8시 반이나 아홉시정도까지는 머물러야 해지고 난 후의 여명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숙소까지의 거리가 있어 일몰은 포기했다. 





내려다보니 성벽이 더 견고하고 어마어마했다.

빰쁠로냐는 옛날 나바라왕국의 수도였다.







숙소로 돌아가는길에 아시아슈퍼에 들러 컵라면 두개를 샀다.

한국음식이 크게 땡기거나 그러진 않았지만,한끼 때우기엔 컵라면만큼 좋은건 없었다.

분명 아시아슈퍼가 있다고 들었는데,통 찾을 수가 없었는데,

성벽위에서 영훈이를 만나 물어봤더니,좀전에 우리가 지나갔던 길이었다.



전자렌지에 돌려 금방 먹을 수 있는 파스타와 미트볼,그리고 산미겔맥주도 샀다.

결국은 다 먹지못하고 남겼다.

집나오면 무조건 잘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음식욕심이 너무 과했다.

그래도 간만에 매콤한 국물이 들어가니 속이 개운했다.

다음날 묵을 알베르게 예약을 마치고,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