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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5일 : 뿌엔떼 라 레이나~에스떼야(21.1km)

 

제5일 : 뿌엔떼 라 레이나~에스떼야(21.1km),7시간

 

 

2019년 9월 23일

 

간단히 요기를 하고,7시 20분쯤 알베르게를 나왔다.

뒤꿈치 물집때문에 등산화를 신고 벗을땐 여간 곤혹이 아니었는데,막상 또 신고나서 몇걸음 걷고나면 견딜만했다.

 

 

`뿌엔떼 라 레이나`라는 뜻은 여왕의 다리라는 뜻이었는데,마을을 벗어나 바로 그 여왕의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넜다.

여왕의 다리는 물살이 센 강을 건너는 순례자들을 위해 산초3세의 부인이 만들어 준데서 유래했다.

 

 

 

 

뒤돌아 본 마을은 아침빛으로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우뚝 솟은 성당은 더욱 아름다웠다.

 

 

 

 

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니,드넓은 평야와 오솔길이 번갈아 나타났다.

아직 강한 햇볕이 내리쬐기 전이었는데도 등짝이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소나무가 빼곡한 숲길로 들어가면 아주 시원했다.

숲에서 아주 좋은 향도 나서 걷기에 좋았다.

 

 

 

 

 

 

 

 

 

 

처음으로 만나는 마을에서 요오스케 부부를 또 만났다.

화장실을 안내해주어 고마웠다고 연신 `아리가또 아리가또`했다.

날이 갈수록 눈에 익은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엔 까미노`하며 인사하는것도 이젠 아주 많이 익숙해져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부엔 까미노`가 튀어나올 판이었다.

 

 

 

 

 

 

덴마크에서 온 여언이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가끔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늘 걷는건 혼자였다.

성격이 무던해보여 다가가기 참 편한 사람이었다.

 

까미노는 혼자 걷는 길이었다.

길동무가 필요할땐 발걸음이 비슷한 순례자와 함께 걸으며 표면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면 되었다.

더러는 그룹을 이루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며 걷기도 했지만,결국은 혼자 다 이겨내고 혼자 걸어내야만 하는 길이었다.

오로지 혼자서 두 다리의 힘으로 인내하며 걸어야했다.

 

 

 

 

리오하 지방은 최고급의 포도주로 아주 유명한 곳이었는데,명성답게 포도밭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건조한 토양,뜨거운 태양,그리고 밤낮의 일교차가 만들어낸 포도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내기엔 아주 최적의 조건이었을것이다.

탐스런 포도를 눈으로만 볼 수 없어 한송이 따보았다.줄기가 매우 끈질겼다.

서리를 하는거라 긴장하니 더 안 잘라졌다.

포도알이 작았는데,당도는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과즙이 많아 갈증해소에도 그만이어서 입술이 벌겋게 물들 정도로 연신 입안가득 욱여넣으며 걸었다.

 

 

 

 

 

 

 

 

여언이 우리 둘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걷다보면 사진찍는일도 사진찍어 주는일도 쉽지 않은데,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 후,꽤 여러날동안 여언을 볼 수 있었다.

어느날은 새벽길을 함께 걸을 때도 있었는데,참 신중해 보였다.

말이 많지 않았고,음성도 아주 나긋나긋했다.

 

 

 

 

 

 

 

 

시라우키 마을은 멀리서봐도 중세시대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시야에 들어오고도 포장길을 한참이나 걸어서야 도착했다.

공기가 좋아 시야가 넓다보니 늘상 있는 일이었다.

어떤날은 30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 눈앞에 빤히 보이는 날도 있었다.

공기가 맑고 습한 기운이 없으니 땀을 흘려도 옷가지에서 땀냄새가 안나 신기했다. 

 

 

담벼락에 걸린 포도덩굴도 참 예술적이었다.

포도의 고장다운 재밌는 발상이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을 차단하고,습기를 조절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하는게 분명했다. 

 

 

 

 

 

 

 

 

경사가 진 곳에 위치한 상점에 들어가 파워에이드 한병을 사서 숨도 안쉬고 원샷했다.

아홉시도 안되어 햇볕이 작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수분섭취는 필수였다.

마을마다 있는 식수대를 이용하기도 했고, bar나 상점을 만나 오렌지쥬스나 시원한 음료로 갈증해소를 했다. 

 

 

운치가 넘치는 마을이었다.아주 오래 된 마을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을의 아치문을 통과해 노란화살표를 따라 올라가며 투박한 멋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는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마을을 통과할땐 눈이 즐거워서 그런지 발걸음이 언제나 가벼웠다.

가끔 동네 어르신이 바게뜨를 안고 가는 모습을 볼땐 참 정겨워보여 나도 모르게 인사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올라~부에노스 디아스`

 

 

 

 

 

 

 

 

여러개의 아치형 문이 있는 곳을 통과해 미로처럼 생긴 마법같았던 마을을 벗어났다.

 

 

 

 

 

 

다시 긴 내리막이 이어졌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 흘러내리는 돌들을 조심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며 도로 건너편으로 접어들었다.

 

 

 

 

 

 

힘이 부칠무렵 올리브 밭 사이에 푸드트럭이 오아시스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납작복숭아 두개를 사고 가격을 물었더니,도네이션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나무로 된 작은 통에 2유로를 넣었다.

수박이며 사과,바나나와 각종 음료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각자 먹고 싶은것을 고르고,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되었다.

 

 

 

 

 

 

 

 

 

 

 

 

계속 그늘은 없었다.

간간이 지하도를 건널때만 조금 시원함을 느낄 정도였다.

햇볕가리개를 뒤집어 썼지만,따가운 햇살은 감당할 수 없었다.

 

 

 

 

 

 

 

 

 

 

 

 

짐을 최소화하려고 그토록 애썼는데도 10킬로였다.

거기에 물과 과일까지 넣었으니,10킬로는 족히 넘는 무게였다.

배낭을 내려놓고 짊어지는것도 보통일이 아니어서 배낭을 멘 채,쉬어갈때가 많았다.

비누 하나로 머리 감고 샤워하고 얼굴닦고 빨래까지 다 했는데,머리 감는게 가장 곤혹이었다.

석회질이 섞인 물이라 그랬는지,머리를 감고나면 빗질이 안될 정도로 아주 뻣뻣했다.

하루에 한두개씩 빗살이 부러지곤 했는데,여정을 다 마쳤을땐 가운데 부분의 빗살이 아예 전멸이었다.

어쩌다 샤워실에 샴푸가 놓여있으면 완전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 날은 머리빗기가 수월해 빗살이 멀쩡했다.

 

 

 

 

마을 중간에는 식수대와 발을 담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물을 충분히 보충하고 나서 등산화를 벗고 양말도 벗었다.

중간중간 발을 편하게 하고 환기를 시켜주면 걷기가 한결 수월하긴 했다.

물집 잡힌곳이 새하얗게 부풀어 있었다.

다시 신발을 신을땐 악!소리가 저절로 나며 눈물이 찔끔 나올뻔 했다.

 

 

 

 

 

 

 

 

목적지까지 7.5km남았다는 이정목이 반가웠다.

적어도 1시간 반이면 도착한다는 뜻이었다.

햇볕은 절정으로 치솟고 있었고,남은 힘은 점점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얼른 도착하여 시원한 맥주를 마실 생각만 했다.

 

 

 

 

 

 

 

 

가끔 자전거를 이용하는 순례자들이 따릉거리며 지나갔다.

`부엔 까미노`와 `그라시아스`는 필수 인사였다.

잘 걸으라는 말과 길을 비켜주어 고맙다는 인사였다.

평지길이 지루할땐 쌩쌩 달리는 자전거가 부럽기도 했지만,언덕길을 쎄빠지게 오르며 페달을 밟을땐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며 다 왔는가 했는데,조금 더 가야했다.

발바닥에 열불이 나면서 점점 걷기가 힘들어졌다.

다행인건 햇볕을 등지고 걷는다는것이다.

오전시간에 대부분 걷다보니 햇님은 언제나 등뒤에 있었고,언제나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갈림길이나 아리송한 지점에서는 어김없이 표식이 되어있어 크게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그렇다고 멍때리다 걷거나 무조건 앞사람만 따라가서는 안되었다.

도미노로 뒤따라가다 앞사람 뒷사람 모두 알바를 하여 뒤돌아 온 적도 있었다.

까미노 앱을 보고 걷는 사람도 있었는데,볼 생각도 안했을 뿐더러 손에 쥐고 걷는게 번거로워 휴대폰은 늘 배낭안에 넣고 다녔다.

 

 

앞서가는 브라질 모녀가 정말 잘 걸었다.

용서의 언덕에서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주고 받았는데,한번 듣고는 그만 이름을 까먹었다.난감했다.

내이름을 기억하고 `미쉘!`하고 친근하게 불러주었다.감동이었다.

`미안해,나 너 이름 까먹었어.`

헤네따라고 다시 알려주고는 `reborn`이란 뜻이라 그랬다.

`참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이네`

`무차스 그라시아스`

 

헤네따는 브라질 처자였는데,엄마와 같이 걷고 있었다.

엄마가 헤네따보다 훨씬 더 잘 걸었다.

뒤따라오는 언니이름을 물어보길래 `헬레나`라 그랬더니,대뜸 스페인어로 트로이가 어쩌구 저쩌구하며 로마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또 난감했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다쳐,헤네따~~   

 

 

 

 

 

 

 

 

 

 

긴 지하도와 다리를 건너 드디어 에스떼야 초입으로 들어섰다.

거리는 얼마 안되었지만,마치 무슨 거대한 대장정을 마치고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마을 초입에는 식수대와 십자가상이 양쪽으로 세워져 있었고,

도로에는 차가 연신 오가고 있었다.

 

 

 

 

여언이 물었다.발이 괜찮냐고..짜리몽땅한 동양아줌마가 기를 쓰고 걷고 있으니 딱했나보다.

괜찮을리가 있냐,아파 죽겠다.

너는 괜찮냐?

내리막에 약간 무릎이 아픈거 말고는 노프러블럼이다.

그래,좋겠다.

 

여언은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우리는 마을 중심가를 지나 한참 더 언덕을 올라가야 있었다.

 

 

 

 

 

 

 

 

 

 

마을을 통과하며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용수와 영훈이었다.

어느새 도착하여 말끔히 씻고 마을탐방중이었다.

다들 단벌신사들이다보니 멀리서도 옷차림만 보고도 누가 누군지 알아냈고,

하다못해 빨랫줄에 널어놓은 속옷만 보고도 누구것인지 금방 알았다.

영훈이는 줄무늬 보라색이었고,언니는 민무늬 살색이었다.

발가락 양말이 보이면 그건 무조건 용수 양말이었다. 

 

 

 

 

 

 

 

 

 

 

 

 

마을길은 차와 사람이 혼재했다.

길을 건널라치면 언제나 차는 멈췄다.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만한 골목길에서는 건물외벽에 바짝 붙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에스떼야는 마치 시간을 돌려 중세시대로 와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도시였다.

건물들이 나란히 고풍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예약해 둔 알베르게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구글앱이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는데다 근처에도 못가고 도심을 헤매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몽몽님이 보내준 아주 쉬운 지도그림도 눈에 잘 안들어왔다.

 

 

 

 

 

 

 

 

 

 

몇번을 물어본 끝에 알베르게를 찾았다.

앞에 체육관이 있었고 병원도 있었다.

거의 마을 끝에 위치했는데,긴 걸음 끝이라 몸이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온씨네다 알베르게는 배드당 10유로였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마을 중심가에 자리잡은터라 다섯개의 배드가 놓여져있는 방엔 딱 우리 둘뿐이었다.

다른 방으로 서양남자 몇이 있었는데,왠일인지 따로 배정했다.

누구 눈치보며 짐을 쌀 필요가 없었고,옷도 맘대로 벗고 입을 수 있어 좋았다.

소곤대며 목소리를 낮출 필요도 없었고,

욕실도 지금껏 본 중에 가장 깨끗하고 넓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날때면 조금 무섭기도 했다.

방열쇠가 따로 있어 들락거릴때 열쇠를 꼭 챙겨야하는게 조금 불편했다.

 

 

 

말끔히 씻고,말끔히 빨래를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여유가 있었다.

빨래도 야외에 있는 빨래터를 사용하지 않고 샤워하면서 빨았다.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도 여유가 있어 침낭까지 얼마간 널어놓았다.

빨래가 말랐는지 확인하러 갔다가 건물로 통하는 문이 안열려 생쇼를 하기도 했다. 

 

 

밥이고 뭐고 쉬고 싶었지만,배꼽시계는 어김이 없었다.

bar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주문하며 빵집위치를 물었더니,바로 건너편을 가리켰다.

씨에스따가 끝나면 5시에 문을 연다고 했다.

맥주를 원샷하고 띤또데베라노를 하나 더 주문했다. 

레드와인에 탄산음료를 1:1로 섞어 얼음이나 레몬을 곁들이는 매혹의 음료였다. 

 

 

따빠스까지 덤으로 내어준 덕에 허기를 어느정도 달래기엔 충분했다.

빵집은 5시가 지나도 열리지 않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점원 아가씨도 본인이 했던 말이 있어 덩달아 안절부절했다.

그러더니 나를 불렀다.

`전화해봤는데,오늘 빵집문 안연대..그래서말인데,내가 너희한테 빵을 좀 줄까 하는데..`

오우~이렇게나 친절할 수가~

무차스 그라시아스,세뇨리따~~

 

 

 

 

 

친절한 아가씨 덕분에 바게뜨빵을 가슴에 안고 숙소로 돌아와 근사하게 한 상 차렸다.

마침 주방에 다른 순례객이 두고간 쌀이 있어 냄비밥을 했다.

냄비밥은 언니가 전문이었다.

특별히 언니 배낭에 꼬불처뒀던 김도 꺼냈다.

로메인 상추와 조미김과의 조합이 그럴싸했다.

그리고 바게뜨는 공짜라서 더욱 고소했다.

 

 

바늘을 찔러 물을 빼고 풋크림을 잔뜩 발라 발마사지를 하는걸로 하루일과를 마무리했다.

그저 발바닥이 적응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