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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4일 : 빰쁠로냐~뿌엔떼 라 레이나(24.4km)

 

 

제4일 : 빰쁠로냐~뿌엔떼 라 레이나(24.4km),8시간

 

2019년 9월 22일

 

비워있던 옆침대는 자는동안 꽉 차 있었다.

실례가 될까봐 어둠속에서 부스럭거리며 배낭을 꾸리다 도저히 안되어 불켜도 되냐 물었더니 두말않고 켜주었다.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였다.

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는데,레온까지만 간다그랬다.

첫인사를 나누자마자 다시 작별인사를 나누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소리없이 내리던 비는 잦아들었다.

레인커버만 씌우고 배낭을 둘러멨다.

어젯밤 묵었던 알베르게는 까미노길과는 조금 떨어져 있어 언니가 구글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았는데,어떻게 된일인지 좀처럼 까미노 시그널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정류소에 있던 한무리의 청년에게 물었다.

산티아고 가는데,이 길이 맞냐?

참내..지금 생각해도 참 멍청한 질문이었다.

700km나 떨어져 있는 도시를 어떻게 걸어가냐고 묻는거였다.

그러니까 서울한복판에서 부산 남포동을 어떻게 걸어가냐고 묻는거나 똑같았다.

`빠라 까미노?`하고 물었어야 했다.이 길이 까미노길이 맞냐고..

차림새를 보고 단박에 알았을텐데 지들끼리 키득거렸던 청년들도 문제긴했다.  

 

 

어둠속에서 길을 제대로 찾아 순례길 위에 올라섰다.

더디고 느려서 그렇지,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나바라대학교를 막 지나 도로변을 걷는중이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니,미처 우의를 입기도전에 옷과 신발을 흠뻑 적셨다.

어쩐지 지금까지 비한방울 안맞고 날씨가 참 좋다 했다.

할 수 있는건 재빨리 대비하며 날씨에 순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

비는 30여분간 퍼붓고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빼르돈 고개,즉 용서의 언덕을 오르는 초입부터 추수를 끝낸 밀밭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스라히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또 바로 앞에 두 청년이 걷고 있었다.

용수와 경석이었다.

용수와의 인연은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그리고는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이어졌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참 영리한 아이였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는데,운동을 얼마나 지독하게 했는지 갑빠가 장난 아니었다.

몸매를 돋보이게 하기위해 항상 근육이 잘 드러나는 달라붙는 옷을 입었다.

걸음 속도는 단연 최고였다.

두 팔을 엑스자로 흔들며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아무리 용을써도 따라갈 수가 없었는데,한쪽발목에 문신으로 새긴 장미꽃이 막 춤을 췄다.

경석이는 레온에서 점핑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가,나중에 묵시아에서 다시 조우했다.

얼마나 말끔한 행색을 하고 나타났는지,동일인물이 맞나 의심할 정도였다.

 

 

 

 

 

 

 

갑작스레 내렸던 비로 신발이 젖어 양말이 눅눅하긴 했지만,다 나쁜건 아니었다.

그늘하나 없는 오르막을 땡볕에 걸었으면 무척이나 고달픈 걸음이었겠다.

몸이 젖지않을만큼 이슬비가 내렸고,바람도 불어주어 용서의 언덕을 오르기엔 마침맞은 날씨였다.

용서의 언덕은 순례길 중 힘든코스로 손꼽힌다.

 

 

 

 

 

 

빰쁠로냐 시가지를 등지고 열심히 언덕을 올랐다.

군데군데 물구덩이가 있어 잘 피해가야만 했다.

 

 

 

 

 

 

언덕쯤이야~하고 금세 도착할 줄 알았는데,했는데,그게 아니었다.

공기가 맑아 시야가 한없이 넓었다.

바로 앞에 보였던 풍력발전기는 점점 멀어져가는것처럼 보였다.

조금씩 고도를 높히는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이었다.용서의 언덕을 가기 위해서는 마을도 하나 지난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빰쁠로냐 시가지가 등뒤로 아주 가깝게 보였다.

그 뒤로 보이는 산자락은 구름이 춤을 추고 있었다.

 

 

 

 

 

 

참 요긴하게 썼던 반스패츠..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섰을때는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

등산화는 항상 눅눅하고 젖어 있었는데,나는 다행히 스패츠덕에 뽀송뽀송한 양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져갔던 우의는 완전 꽝이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주 가볍고 부피가 손바닥만한 판초의를 가져갔었는데,연식이 오래되었던 터라 우의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통에 연신 손으로 짜야만했고,바람이 불면 펄럭거려 스틱을 배낭에 꽂고 양손으로 우의자락을 붙잡고 걸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새로 하나 장만할까 싶어 상점에 들렀더니 50유로 이상이라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구간을 비슷비슷하게 나누다보니,눈에 익은 순례자들을 자주 만났다.

외국인 순례자들은 이름과 국적을 물어보는걸로 안면을 텄는데,자꾸만 이름을 까먹어 난감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상대방에서는 `미쉘!`하고 내이름을 불러주는데,나는 겨우겨우 이름을 떠올리며 머뭇거릴때가 많았다.

한국인 순례자들은 언제나 눈인사만 나눴다.

그냥 우리끼리 말할땐 특징을 말하며 `통풍아저씨,성당언니,드라이 아줌마`이렇게 말하면 다 통했다.

 

 

 

 

 

 

bar를 이용할 수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한템포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같은 곳이다.

등산화를 벗고 잠시나마 양말도 벗었다.

커피를 주문하다 요오스케 부부를 또 만났다.

자주 보니,정이 드는것 같았다.남같아 보이지 않아 이것저것 물어보다 모자사이가 아니고 부부사이란걸 그 때 알았다.

다시보니,참 잘 어울렸다.

 

 

 

 

 

 

초콜렛을 나눠먹으며 등산화에 대해 말하다 한참을 웃었다.

용수는 목없는 노스페이스 트래킹화를 신었고,경석이는 제법 고가의 비브람화를 신고 있었는데,

용수는 순례길에서 창피를 당하면 어쩌나 하며 걱정했다고 했다.너무 고가의 신발이라서..

반면 경석이는 비싼 신발인줄도 모르고 그냥 남들이 추천해줘서 무작정 신고왔다 그랬다.

참 심성곱고 어여쁜 아이들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다시 잇는 길은 자갈길이었다.

발바닥이 얼얼했지만,공짜로 발마사지를 받는구나~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고도를 높히니 시야는 한없이 넓어졌다.

밀밭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었다.

파란물결이 넘실거렸음 정말 죽음이었겠다.

풍력발전기가 가까워오며 뻬르돈봉까지도 머지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매일같이 걷다보면 적어도 5킬로 정도는 몸이 축날꺼라 생각했다.

그러나,생각만큼의 효과는 보지 못했다.

다 걷고나서는 바지가 좀 헐렁하긴 했지만,산티아고와 마드리드에서 도로 살이 붙어버렸다.

신기할만큼 빵이며 음료며 뭐든 입에 잘 맞았다.빵은 씹을수록 고소했다.

닭고기든 소고기든 왠만하면 다 맛있어서 앞에 놓여지는대로 죄다 입에 넣었다.

덕분에 무사히 완주하긴 했지만,그 덕분에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말았다.

 

 

 

 

 

 

 

 

 

 

드디어 뻬르돈 고개에 닿았다.

과연 책에서 봤던대로  철제로 된 순례자상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바람이 지나가는 곳`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철제상은 특히 인상깊었다.

그 바람이 지나가는 곳에 내가 서있었다.

그리고 용서의 언덕이란 이름에 맞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동안 남에게 상처 주었던 말들,상처 주었던 행동,그리고 알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

어른스럽지 못했던 행동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나이다~~~

 

 

 

 

 

 

 

 

 

 

 

 

푸드트럭에서 사 온 바나나와 복숭아를 입에 욱여넣었다.

그리고,축축하게 젖은 우의를 바람에 말렸다.

바람이 무척 세게 부는 곳이라던데,다행히 바람이 강하지 않아 앉아서 요기하며 쉬기에 아주 좋았다.

 

 

 

 

 

 

 

 

 

 

 

 

우떼르가라는 마을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굵은 자갈과 돌길이라 무척 조심스러웠다.

반복하며 압박을 주다보니 뒷꿈치에 물집이 잡힌다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발을 달래가며 중간중간 쉬어야만 했다.

 

 

 

 

자전거길과 까미노길을 잘 확인해야 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언제나 긴장하며 까미노 시그널을 주의깊게 살펴야한다.

무턱대고 뒷사람을 따라가다가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진흙길에 돌길에 자갈길에 도로에,오늘도 참 버라이어티한 길이 놓여져 있었다.

나즈막한 오르내림이 계속되었다.

평지길은 쉬운가 했더니만,그도 아니었다.

발바닥에 열불이 났다.

 

 

 

 

 

 

 

 

우떼르가 마을을 통과했다.

마을구경을 하며 여유를 갖고 걸었다.

동네아이들은 인형이 따로없었다.

`무이 구아뽀!`했더니,인형같이 웃었다.

 

 

 

 

 

 

 

 

 

 

걸어온 거리는 채 100km가 못되었고,

산티아고까지는 700km만 더 걸으면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반쯤 온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익살스런 포즈로 웃음을 주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는데,언제부턴가 우리 둘만의 세레모니 포즈였다.

 

 

 

 

 

 

 

 

 

 

 

 

뿌엔떼 데 레이나로 가기 직전에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바닥에 조가비 모양을 아주 단단하게 박아놓은게 특이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예약해 둔 알베르게를 찾는게 큰 숙제였다.

작은 마을은 그런대로 찾기가 쉬운데,대도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썼던 방법이 몽몽님 찬스였다.

매일같이 예약한 알베르게 주소를 몽몽님한테 보내면 아주아주 친절하게 지도에 그림까지 그려 보내주곤 했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마을초입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라는둥,성당 앞에서 계단을 올라가라는둥,시청 담벼락을 끼고 올라가라는둥 하며 아주 상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답변이 늦게 오는날은 술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려니 했다.

그렇게 몽몽님은 다른 방법으로 나와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마지막날 지도를 보낼땐 다 끝나서 섭섭하다고까지 했다.

 

그 날은 마음이 급했는지,뿌엔떼 데 레이나에 미처 도착하기도전에 직전마을에서 숙소를 찾았다.

지나가는 마을사람을 붙잡고 하쿠에 호텔을 물었더니 아무도 몰랐다.

4킬로나 더 걸었어야했다.

나중에 알아채고는 둘이 하도 한심스러워 헛웃음만 날렸다.

 

 

 

 

 

 

 

 

산 후안 성당앞에는 순례자인듯한 철제로 된 동상이 서있었다.

마침 성당 종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정화되고 마음까지 정화되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알베르게는 마을 완전 초입에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투숙하는건 좋았지만,

슈퍼나 성당이 있는 중심가로 가려면 조금 걸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호텔과 함께 운영하는 알베르게였는데,우리는 가난한 순례자이기에 침대2개를 예약했다.한국말을 곧잘하는 청년이 카운터에서 접수를 받았다.

예약했다고 하고 이름을 말하니,`무이 비엔!`이런다.

잘했다는 뜻이다.

목이 말라 죽겠으니 맥주한잔 먼저 달라하니,더 좋아했다.

 

 

 

 

침대를 배정 받았지만,이리저리 뒤져봐도 우리 침대가 안보였다.

맥주 한잔에 취할리는 없었는데,배낭메고 헤매기를 10여분..

B21,22번이었는데,스페인은 숫자 1과 7을 참 요상하게도 썼다.

 침대배치를 미로처럼 배치한것도 큰 원인이었다.

동양인 아줌마 둘이 왔다리 갔다리하며 헤매고 있으니,안면이 있는 프랑스 아저씨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본인이 직접 찾아주려 했으나 역시나 찾지 못하자 선뜻 카운터까지 가서 위치를 알아왔다.

하튼가,프랑스 사람 매너 죽인다.

 

침대는 이층침대였는데,칸막이가 되어있어 독립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음침해서 배드버그약을 구석구석 야무지게 뿌렸다.

 

 

 

 

갈증이 가시지않아 씻자마자 또 맥주한잔을 마셨다.

그랬더니 카운터 청년이 사과 두개를 공짜로 주었다.

조금 있다가 눈이 또 마주쳐 `께 리꼬!`하며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더니 인심쓰듯 또 두개를 줬다.

그러고는 또 다음날 간식으로 먹기위해 두개를 산다고 했더니,다시 또 두개를 줬다.

총 여섯개를 공짜로 얻은 셈이었다.

말만 잘하면 공짜라는 말을 실감했다.

 

 

 

 

우리를 발견하고 요오스케가 부리나케 달려들어와 화장실을 찾았다.

너무 급한 나머지 엉덩이를 꼭 쥔채..

서둘러 내가 화장실을 안내했는데,통로가 헷갈려 조금 헤맸다.

일을 보고 나와서는 감사인사를 정말 극진하게 하고 떠났다.

하마터면 쌀뻔 했다는 시늉을 할땐 너무 적나라해서 배꼽빠지게 웃었다.

 

 

 

 

 

 

 순례객이 하나둘씩 야외테이블에 모여들었다.

프랑스 아저씨는 성격이 참 좋아 누구든 호의적이었다.

침대를 찾아 준 보답으로 맥주 한잔을 쏘니,안주를 듬뿍 나눠주었다.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프랑스 아가씨는 따파스를 먹어보라 건냈다.

옥수수 알갱이였는데,고소한게 맥주안주로는 그만이었다.

앞으로 걸을 메세타 구간이 원산지라 그랬다.옥수수가 아주 유명한 곳이라 했는데,걸으면서 정말이지 끝도 없는 옥수수밭을 봤다.

 

 

 

 

 

 

 

 

슈퍼에 들러 다음날 간식을 사고,저녁때 먹을 간편식 몇개를 샀다.

 순례길에서는 그저 배만 채우면 되었다.

그저 등대고 누울곳만 있으면 감사했고,

따뜻한 물로 몸을 씻는것만도 감사했다.

비록 불편하지만,그 불편함과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익숙한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졌다.

순례길은 당연했던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런 길이었다.

 

 

 

 

 

 

 

 

제법 갖춰진 큰 마을엔 순례자들을 위한  전문점이 있었다.

계절에 맞는 옷을 사거나,필요한 물품들을 살 수 있는 곳이었는데,

나는 에스떼야에서 10.3유로주고 양말을 한켤레 샀다.

여벌의 양말을 세켤레나 가져갔었는데,잘 마르지않는데다 중간중간 쉬어갈때 한번씩 갈아신으면 발이 한결 부드러웠다.

 

 

 

 

 

 

성당에 들어갈때면 언제나 엄숙해졌다.

정교하게 꾸며놓은 제단과 각종 장식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세탁기와 건조기,그리고 조리대가 한군데 모여 있었다.

아직까지는 햇볕이 좋아 세탁기든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빨래만 했다.

 

 

 

 

음식은 대체적으로 짰다.

그래서 꼭 과일이나 야채가 필요했다.

카운터 청년에게 얻은 사과와 함께 간편식 세개를 해치웠다.

 

양쪽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

부디 나한테만은 피해가길 바랬으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다 거쳐가는 과정이려니~~

바늘에 실을 꿰어 통과시켜 물을 싹 빼고나서,풋크림을 충분히 바른 후 마사지를 하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