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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28일 : 사리아~뽀르또마린(22,4km)


제28일 : 사리아~뽀르또마린(22,4km),5시간 20분


2019년 10월 16일


등짝에 생긴 수포때문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등을 바닥에 대고 편히 누워야 하는데,수포생긴 부위가 바닥에 닿지않게 하기위해 모로 하여 누울 수 밖에 없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좁은 침낭안에서 몸을 뒤척일때마다 신경이 쓰였고,깜빡 잠이 들면 자세가 바뀌어 잠이 깨고 또다시 잠이 들고 깨고를 반복했다.

새삼 등을 바닥에 대고 자는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어떻게 된일인지 약을 먹고 있는데도 수포가 더 커져 욱신거리고 따꼼거렸다.

방안에 온기라도 있으면 좀 나을텐데,온기 없는 방안은 침낭을 돌돌 싸매고 있어도 춥기만 했다.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잠자리에 몸까지 안좋으니 집생각이 났다.

내가 어쩌자고 이 고생길을 자청하여 돈써가며 내 발로 왔을까?

그동안 잘해왔는데,막판에 이 무슨 날벼락인지 몰랐다.

과연 내가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지 신이 나를 시험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는둥 마는둥하고 일어나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등이 결렸지만,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7시 반쯤 되어 이슬비 내리는 새벽길을 나섰다.


한무리의 순례객들이 마을 끄트머리에서 잠시 길을 놓쳐 우왕좌왕했다.

어두울때 길을 걷다보면 앞사람 불빛만을 따라가게 되는데,앞사람이 길을 잘못 들면 다같이 길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마을 주민이 방향을 바로 잡아 주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산길을 빠짝 치고 오르다보니 온몸으로 땀이 흥건했다.

빗줄기가 가늘어져 거추장스러운 우의를 벗고나니,앞뒤로 걷던 순례자는 벌써 한참을 앞서고 있었다.

어두운 숲길에선 앞뒤로 불빛이 좀 있어줘야 안심인데..

외국인 순례자들은 어쩜 그렇게도 발걸음이 빠른지 모르겠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오르막을 올라,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곤 했다.




사리아 숲길에서 조심해야할것이 있었는데,그것은 바로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종이를 내밀고 서명을 요구하는 일명 `서명단`이었다.

서명을 하고나면 기부금을 강요했는데,종이에 적힌만큼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뒤에 오던 경수언니는 그런 사실을 모르셨던 모양이었다.

서명을 하고나서 한참을 실랑이 벌이다 결국 10유로나 기부하셨는데,누가봐도 순수한 의도로 성금을 모으는 사람들같지는 않았다. 




해가 뜰 시간인데도 하늘은 잿빛이었고,가끔 빗방울도 날렸다.

숲길이 촉촉하여 걷기는 너무 좋았다.바람이 없으니 춥지도 않아 걷기엔 딱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돌담길 아래로 사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두엄더미에 모여있었는데,그대로 거름으로 쓰는것 같았다.

하나 따서 입에 넣었더니 맛이 꽤 괜찮아서 하나를 더 따서 주머니에 챙겼다.

 



담벼락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걸음을 이어갔다.

숲길로 이어지는 작은 마을을 지날때면 꼬끼오~하는 닭울음소리가 정적을 깨기도 했다.  


대만인 순례자는 언제나 혼자 묵묵히 걸었다.

일정이 비슷한지 매일같이 보곤해서 하루라도 안보면 이상할 정도였다.

엄청나게 부지런하여 새벽에 주방에 가면 언제나 먼저 자리잡고 뭔가를 먹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주 그럴듯하게 차려놓고 먹었다. 

나처럼 산만하게 걷는 걸음이 아니라 느리지만 꾸준히 아주 일정하게 걷는 걸음이었다.

`부엔까미노` 대신 `니하오`하며 지나쳤는데,그럴때마다 `안녕하세요`라고 답해주었다. 

첫인상이 별로라 거리를 두었는데,자꾸 만나다보니 정이 생겨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은 순례자사무소 앞에서 만나 찐하게 작별인사를 나눴다.






목장 사이로 난 돌담길 따라 나즈막하게 오르내렸다.

계속하여 초록의 숲과 초원이 이어지니 마음이 맑아지는거 같았다.






올망졸망 가꾸는 텃밭이며 울타리 아래에서 모이를 쪼는 닭을 보며 어릴적 추억에 잠겼다.

우리의 시골 정취와 너무 닮아있어 어디든 사람사는곳은 다 똑같다는 말을 실감했다.




bar에 들어가 커피만 한잔 얼른 마시고 일어났다.

잔뜩 흐린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듯하여 비오기전에 조금이라도 더 걸어놔야 했다.

뒤이어 용수와 영훈이가 도착했지만,마음이 급해 커피도 한잔 못사주고 배낭을 둘러멨다. 

빗속을 걷는 불편함을 익히 알기에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했다.








초원위의 나무는 언제 봐도 그림이다.

 나무 모양도 참 이쁘게도 생겼다.

하늘만 파랗다면 윈도우 화면으로 쓰기에 아주 적합한 풍경들이 아주 많았다.




숲이 정말 울창하여 숲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할 정도였다.

새소리,바람소리,그리고 등산화에 밟히는 도토리와 호두소리가 꽤 낭만적이었는데,

도토리 크기는 그동안 내가 봐왔던 크기의 3배는 되어 보였고,

호두는 나무에서 갓 떨어져 껍질이 딱딱하지 않아 까먹기 좋았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는것 같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걸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도 거의 달리다시피했다.

그리고 드디어 산티아고까지 100km지점의 이정표를 만났다.의미있는 이정표답게 비석에는 각국의 언어로 빼곡하게 낙서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와 날짜를 생각하면 앞으로 남은거리는 아주 수월해 보였지만,100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묵직하게 다가왔다.





비가 오다말다 오다말다를 반복했다.

배낭을 내렸다 짊어졌다를 반복했고,카메라를 배낭에 넣었다 꺼냈다,우의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그냥 길만 걸으면 되는것을 `기록`해야겠다는 욕심에 몸이 두배로 힘들었다.

오래 많은것을 기억하는 방법은 사진으로 발자취를 남겨놓는 방법밖에 없었다.




초원위에 자리한 작은 성당은 그림책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몸이 지쳐있다가도 예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나면 에너지가 저절로 솟았다. 

빨리 이 고된 길이 끝났으면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엔 이 소중한 순간이 더디 갔음 했는데,

하여간에 하루에도 열두번씩 변덕이 죽 끓듯 했다.

걷다보면 마음을 내려놓고 비워낸다던데,나같은 사람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참 친절도 하지..

노란 화살표가 세개나 그려져 있다.

표지석도 자주 나타났는데,2~3킬로마다 하나씩은 세워져 있는거 같았다.

한동안 안보이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신호이니,얼른 되돌아 나와 다시 확인해야한다.






별의 별 기념품에 각종 순례용품등을 파는 상점이 있었는데,

신라면과 햇반에 고추장까지 팔고있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많다는 증거였는데,가끔 외국인 순례자들이 왜 이렇게 한국인이 많나며 묻기도 했다.

그러니까..유명한 영화배우 나오는 TV프로그램에 이곳이 나와서..

한국사람들은 걷는걸 워낙 좋아해서.. 

뭐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어 내 대답도 횡설수설이었다.

   


순례길을 다 걷고나면 세상의 끝,피니스테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신발을 태워 대서양에 띄워 보냈다고 한다.

헌것을 버림으로하여 그동안의 죄를 벗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인데,

순례길에서 신발이 주는 의미는 그만큼 컸다.

미처 세상의 끝까지 가닿지 못한 신발들은 이렇게 다른 생명의 둥지가 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평지길 달릴땐 참 부럽다가도,낑낑대며 오르막을 오를땐 좀 딱해보이기도 했다.

간혹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뽀르또마린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최소 한시간 반이상은 가야했다.

 


정말 요긴하게 사용했던 7천원짜리 숏스패츠..

빗물이 신발에 들어가는것을 방지함은 물론이고 흙탕물이 바짓가랑이에 묻는것까지 방지하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했다.




마을을 지나다 양몰이하는 개를 만났다.

양들이 제대로 오고 있는 살피는 모습이 아주 영리해 보였다.

말로만 듣던 양몰이 광경을 보다니...

여간해선 보기 힘든 광경이라 눈앞에서 사라질때까지 바라봤다. 







뽀르또마린으로 가는 마지막 마을을 통과했다.

마을입구엔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작은 bar가 마련되어 있었다.






 걷는게 행복한 우리 옥순씨~~

언니는 거리가 줄어들수록 무척 아쉬워했다.









거의 다 왔는데,길이 두갈래로 나뉘었다.

우왕좌왕하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왼쪽 방향으로 따라갔다.




이게 정말 맞는길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가파르고 좁은 내리막 돌길이었다.

바닥이 젖어있어 너무 미끄러워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섰다.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최소 중상이었다.

길 양쪽으로는 뭐하는 용도인지 아주 높은 돌담이 길게 이어졌다.  



 숲을 빠져나와 도로를 따르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목적지였다.

뽀르또마린은 저수지가 생기면서 구시가지는 사라지고 고지대의 신시가지만 남아있는 마을이었는데,

강 위로 난 긴 다리 끝으로 아주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아주 멋스러운 계단을 올라 예쁘게 생긴 아치문을 통과했다.





여전히 숙소를 찾아가는건 큰 숙제였다.

이 골목인지,저 골목인지 당췌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못찾은 날은 한번도 없었다.언제나 늦을뿐 결국은 어떻게든 찾았다.

오늘도 몽몽님이 보내준 사진을 단서로 시청 주변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보니 `ULTREIA`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카운터에 걸려있는 대한민국 독도..

언제 가보려나~~


젊은 여자와 할아버지가 번갈아가며 손님을 받고 있었는데,두 분다 너무 상냥하고 친절했다.

샤워하며 배수가 원할하지 못해 물이 복도까지 흘렀는데,연신 미안해하는 나한테 얼굴 한번 안 붉히고 `노 쁘로블레마(괜찮다)`하며 걸레질를 했고,

건조기를 사용할때도 세탁물을 직접 2층에 있는 건조기앞까지 들어주더니만 일단 세탁기에서 물을 짜낸 다음 건조기를 돌려주었다.

덕분에 옷가지들이 아주 뽀송뽀송하게 말라 나왔다.


오늘은 건조기를 두번 사용했다.

한번은 젖은 빨랫감을 돌렸고,또 한번은 고온 살균한다는 의미에서 침낭이며 옷가지들을 몽땅 넣었다.

계속하여 날씨가 눅눅한데다 어딘가에 베드버그가 숨어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오니 카운터 옆 바구니에 담겨져 있었다.   



갈리시아 수프가 우리나라의 시래기국과 아주 똑같다 하여 전채요리로 그걸 시켰는데,

수프 종류가 많은지 전혀 맛이 달랐다.

내가 먹은건 고깃국에 더 가까웠다. 

어쨌든,뜨끈뜨끈하게 한끼를 잘 해결하고나서 비오는 거리를 쏘다녔다. 










성당에 들어갔더니,순례자를 위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체구가 아주 작은 남성이 혼자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했는데,

소리로 성당안을 가득 채우기엔 조금 부족해보였다. 

1유로를 기부하고 중간타임에 성당을 나왔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93km 남았다.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비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곁에 있을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고..

 메세타 구간을 걸을땐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이 그토록 야속했는데,

이젠 그 뜨거운 햇살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그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