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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32일 : 오 뻬드로우소~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20km)

제32일 : 오 뻬드로우소~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20km),5시간


2019년 10월 20일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둠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짐을 꾸리고,주방에 앉아 청승맞게 빵쪼가리를 먹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더욱 비장한 마음으로 신발끈을 매고 6시 45분 출발..


왠일로 비가 안오는가 했더니만 얼마안가 역시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랜턴 밧데리도 맛이 가기 직전이라 뿌연데다 안개까지 자욱하여 시야가 좋지 않았다.

깊숙한 숲길을 질퍽거리며 걷기를 한시간여,잠시 까미노 표시를 놓쳐 엉뚱한 길로 빠졌다가 되돌아 나왔다.

보통은 뒤에 오는 순례자가 불러 세워 길을 바로잡아주기 마련인데,바로 뒤에 한국인 순례자 두명이 있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부르지를 않았다.

한참을 가다보니 생뚱맞게 도로가 나왔고,뒤로 오던 순례자들이 안보인다는걸 알았다.

거의 500m간격으로 있던 표지석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놓쳤던 갈림길까지 다시 돌아와보니,화살표 방향이 좀 애매하긴 했다.

 

비는 그쳤다.

그리고 안개가 빚어낸 아주 분위기 있는 마을안으로 들어갔다.

그럴듯한 신식집도 있고,아주 오래된 허름한 집도 있었는데,인적은 없었다. 

 

벽돌로 아주 단단하게 지은 오레오(곡식창고)도 만났다.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더 시선이 갔다.

오늘은 유난히도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을 허투로 볼 수 없었다.

투박한 돌담길,그 길에 난 이끼,주황색 지붕,텃밭의 곡식들,가지런한 나무들,그리고 담벼락의 낙서 하나도 더 깊이 가슴속에 넣어두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까미노 표지석도 노란 화살표도 조가비 모양도 더 정감있게 보였다.

이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의 끝이 머지 않았다.




성당 종소리가 숲속가득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성당으로 모여들어 따라가 봤더니,먼저 들어갔던 순례자가 나오며 성당 분위기가 아니라 추모공원이란다.

 

숲길이 이어지고 작은 농가마을을 지났다.

폭이 작은 도랑물도 아주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었는데,정말 깨끗했다.

정말 때묻지 않은 곳임을 또다시 느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맑고 투명한 공기를 집으로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탐났다.





노란 화살표는 수시로 눈에 띄었다.

더이상 길을 헤맬일은 없었다.


순례자 여권속의 도장은 마지막 한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일부러 나름대로 의미를 두기 위해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칸이 모자랄까봐 알베르게 이외에서는 도장 찍는것을 자제했다.

그리하여 계획대로 딱 한칸만 남겨둔 상태였다.

 

까미노 bar에서 마시는 까페 꼰 레체도 고소한 버터 바른 빵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어찌 소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그동안 오아시스 역할을 했던 bar에서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새벽녘 기분좋게 인사하던 세뇨리따,갓 짜낸 오렌지 쥬스,고소한 빵냄새,원두 가는 소리,향좋은 커피,그리고 bar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젠 다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는게 아쉬웠다.

 

32일간 등짝에 붙어 동고동락했던 내 배낭..

어디 한곳 헤지거나 말썽없이 나와 함께 참 잘 버텨 주고 제 역할을 아주 잘했던 참 고마운 배낭이었다.

배낭은 45리터가 가장 적당해 보였다.

더 작았다면 꾸겨넣느라 애먹었을테고,더 컸다면 아무래도 욕심이 생겨 더 채워 넣었을것 같았다.

쌀 10kg을 한달 넘게 짊어지고 다닌거나 다름없었는데,다행히도 내 어깨는 잘 견뎌주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로 된 언덕길엔 새파란 이끼옷을 입은 나무들 너머로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었다.

스스로 껍질을 벗으며 속살을 드러낸다고 하는데,바닥으로는 껍질들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스팔트로 된 긴 언덕을 오르는동안 햇살이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신의 축복을 받은듯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만은 맑은 날씨속에 산티아고에 입성하기를 바랬었다.





고소(Gozo)산까지 계속하여 아스팔트로 된 언덕길이 이어졌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번지면서 주변 풍경은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고소산에서 내려오는 merc를 만났다.

힘들때 함께 격려하고 걸어주었던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고마워 merc,너를 만난건 행운이었어`

까미노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도 더이상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휑했다. 



드디어 언덕위에 올라섰다. 

교황 요한바오르 2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탑이 세워져 있었고,네면으로는 정교하게 조각한 그림이 있었는데,줄이 둘러처져있어 몇걸음 떨어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저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희미하게 보였는데,이제 정말 다 왔구나~하는 기쁨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몬떼 델 고소`라는 뜻은 `기쁨과 환희의 언덕`이란 뜻이었는데,예전에 순례자들은 바로 직전마을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이 언덕에 올라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은 알것같아 나도 왠지 뭉클해졌다.










공원을 나오는데,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예배당 문이 닫혀있어 나무 아래서 급하게 단도리를 했다.

얼마안가 비는 멈췄고,무지개가 떴다며 어느 순례자가 가리켰지만,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산티아고 외곽 마을을 내려다보며 도로와 나란히 하여 걸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올수록 심장이 터질듯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대성당 앞에 섰을때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며 걸었다.





산티아고임을 알려주는 설치물에는 각종 리본에서부터 기념품까지 별의 별게 다 걸려져 있었고,

바로 옆으로는 역대 교황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문이 있었다.   


이제 노란 화살표대신 바닥에 박혀진 조가비가 길을 안내했다.

사람들도 차들도 많아졌다.

그 속에서 배낭 멘 순례자들은 모두 다 한 방향으로만 걷고 있었다.



비내리는 거리는 회색빛 건물들과 어우러져 운치가 넘쳤다.

흐릿하게 보이는 대성당의 첨탑만 바라보며 걸었고, 

희한하게 그곳만 햇살이 비추는것처럼 보였다.





산티아고의 중심부에 들어서니 하도 복잡하여 어디가 어딘지 몰랐다.

멀리서 보였던 대성당의 첨탑도 어디론가 사라졌고,잠시 골목에서 우왕좌왕했다.

그럼 그렇지..한방에 찾을리가 없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뿐 아니라 온갖 음식점에 현란한 기념품가게들에 눈이 현혹되어 두리번거리느라  넋이 완전 나갔다.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가다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는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도착했다. 

 성당을 보는 순간,입이 쩍 벌어지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것은 멋진 건물을 봤을때의 시각적인 느낌이었지,내면의 감동은 아니었다.

참 희한했다.

그토록 바라고 바래왔던 곳에 서있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오히려 너무나도 덤덤했다.

울컥하여 감동의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눈물은 커녕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더이상 걷지 않아도 되고,무거운 배낭을 더이상은 메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저 기쁠 뿐이었다.





광장 한복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감사한 마음이 잔잔하게 가슴가득 차올랐다.

불현듯 스스로 다독이며 걸어왔던 32일간의 순간들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마음고생이 많았을 언니와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니가 없었음 감히 혼자 시도도 못했을 길이었다.



장훈이와 화가아저씨,그리고 발가락양말 꿰메던 호벤도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까미노를 함께 공감하며 걸었던 인연이었다.

bar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셨고,같은 숙소에 묵으며 코고는 소리까지 공유했었다.

그들의 앞날에 행복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완주증을 받으러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갔다.

번호표 365번을 뽑아들고 복도에 앉아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대만인 순례자가 반갑게 인사했다.

또 이름을 까먹어 끝내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다.

통넓은 바지입고 언제나 일정한 걸음으로 걸었던 그 뒷모습도 이젠 추억속에 담아 두어야 했다.


두시간 가까이 기다려 드디어 내 번호가 전광판에 떴다.

순례자 여권에 찍힌 도장들을 쭉 훑어보고 맨 마지막 칸에 야고보상이 그려진 도장을 찍으며`무이 비엔(참 잘했어요)`그런다.

다 걸었다는 완주증은 공짜,거리까지 표기 된 완주증은 3유로,보관통까지 하면 토탈 5유로였는데,

기분좋게 5유로를 투척했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숙소를 미리 잡아 두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과 이웃하고 있는 호텔이었는데,예전에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이었다.

특별히 거금을 주었다.

큰일했으니 나에게 주는 상이라 생각했고,무엇보다 등짝에 난 수포가 완전 심각하고 아파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한달 넘게 이어왔던 공동생활을 청산하고,독립된 공간이 있으니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방안으로 온기가 있으니 살것같았다.

더이상 침낭을 안펴도 되었고,샤워하는동안 누가 밖에서 기다리지는 않을까하여 급하게 씻을 필요도 없었다.

새하얀 수건도 넘쳐났다.그동안 써왔던 습식수건은 꼴도 보기가 싫었고,

샴푸로 머리를 감고,드라이로 머리를 말릴 수도 있었다.

간만에 넓은 욕조에서 몸을 씻고 가벼운 몸으로 다시 시가지로 나갔다.








성당 주변은 더 북새통이었다.

순례자들과 관광객들,그리고 꼬마 기차까지 오가며 관광지다운 분위기를 한껏 풍겼다.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의 하일라이트는 매일 정오에 열리는 순례자 미사였다.

미사를 시작하기전에 순례자 이름과 국적,그리고 출발지를 낭독하는 시간이 있고 그 다음은 향로 미사를 시작한다.

천장에 매달린 향로를 양편에서 잡고 당기면 그네처럼 왔다 갔다하는데,향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며 은향로의 모습이 장관이라 그랬다.

내부 공사중이라 사진에서 봤던 그 장면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성당 내부는 아주 어수선했는데,야고보의 무덤과 야고보상을 보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사진촬영은 금지였다.

  






야고보의 무덤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지나 중앙에 있는 야고보상 앞에 섰다.

그리고 나서 두 어깨에 손을 대고 기도를 했다.

그렇게 하면 기도를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었다.

나와 내 가족,그리고 주변의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길~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기를~ 

 


성당 주변을 돌아다니는 재미에 시간 가는줄 몰랐다.

 여유롭게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근사한 저녁도 먹었다.

완전 얻어 걸린거마찬가지였는데,그냥 무작위로 들어갔더니 좋아하는 해물모듬이 있었다.

 하나하나 정말 맛있어서 맥주를 안 시킬 수가 없었다.

무시아를 다녀오는 날, 한번 더 먹기 위해 찾았을땐 아쉽게도 정기휴일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다시 대성당과 마주했다.

정말 끝이구나~하니 좀 허전한 마음도 들었다.

이곳으로 향하며 힘들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막상 이곳에 서니,그 길들이 다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기분이 이상했다.






변덕스런 날씨답게 늦은 오후가 되니 다시 비가 내렸다.

비내리는 오후의 거리를 여기 저기 돌아 다녔다.그래야 성당 주변이었지만..

점점 사람들로 늘어나 거리는 활기로 넘쳤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프란치스코 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내 비록 처음 뜻한것처럼 나를 비워내지는 못했지만,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 이걸로 됐다. 

부디 집으로 돌아가서도 이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할텐데.. 


이로써 나의 산티아고는 끝이 났다.

새까맣게 변해 빠지기 일보직전인 발톱 두개와 등짝과 배로 끔찍스럽게 번진 수포를 남긴채..

그리고 딸랑 3킬로의 몸무게만을 덜어낸 채.. 

그래..영광의 상처라고 해두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말이 800km지 그걸 두발로 걷는다는건 정말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매일같이 10kg의 배낭을 메고 평균 25킬로를 걷는것도 보통일이 아닌데,게다가 불편한 잠자리까지 감수해야만 했고,

변화무쌍한 날씨도 감내해야만 했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해 피레네 산맥을 넘을때부터 내가 꿈꿔왔던 낭만적인 길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후 일주일동안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은 말이 아니었다.

저녁이면 물집을 짜고 새벽이면 등산화에 억지로 끼워넣느라 애를 먹었다.

메세타 구간은 햇볕과의 싸움이었다.

도무지 끝이 나지않는 고원을 걷고 또 걸으며 극한의 고독을 경험했다.

 갈리시아 지방은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빗길을 저벅저벅 걷고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 무던히도 담금질이 필요했다. 

 

걷고나면 대단하고 묵직한 무언가로 가슴이 채워질 줄만 알았다.

하지만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만 있을뿐 여전히 빈가슴이었다.

그러나 까미노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것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사람들이 그 길위에 있었다.

언젠가는 그 뜨거운 햇살이,축축한 초원길이,비내리는 새벽길이,어쩌면 목장길에서 맡았던 그 소똥냄새까지 그리워질것이다.

또 어느날은 딱딱한 침대에 누워 침낭속에서 뒹굴었던 날들을 떠올리며 참 낭만적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고,

문득 merc와 jorgen,그리고 berna나 보고싶어 사진을 들춰 보는 날도 있을것이다. 

온몸의 감각을 열어 산티아고가 주는 선물을 흡수했던 그 날들은,  

값진 경험으로 남아 앞으로의 인생에 중요한 자양분이 될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