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8년 5월 29일
산행지 : 설악산
산행코스 : 소공원-마등령-공룡능선-신선대-희운각삼거리-천불동계곡-소공원
산행이야기:설악산 공룡능선의 산솜다리 피는 계절이 왔다.해마다 거르지않고 보러 가는 일,건강 허락되어 올해도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동서울에서 밤 11시에 출발한 심야고속버스는 1시쯤 되어 속초에 도착했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간신히 1시간을 때우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소공원으로 간다.
출입이 허용되는 3시까지 이 휑한 곳에서 뭘하며 보내야하나~머리 굴리고 있는데,직원분이 그냥 들어가시라며 친절을 베푼다.
오늘은 입장료도 없다.
어제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살펴보니,신흥사의 무산스님이 입적하셔서 다비식이 열리는 내일까지 무료라 그런다.
`천방지축,기고만장,허장허세로 살다보니,온 몸에 털이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무산스님이 남긴 열반송)
3시가 못되어 걸음을 시작하는데..적막강산인 산길은 조금 으스스하다.
가끔씩 새소리와 함께 동물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어두운 산길엔 보이는게 없으니,오로지 청각기능만 극대화되어 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먼저 무섭다고 언니한테 말하면 두려움이 더해질까봐 입 꾹 닫고 걷기에만 집중한다.
나중에 알고보니,언니도 좀 무서웠다고...ㅎ
안개비 내리는 산길을 어느만큼 오르다보니 서서히 날이 밝는다.
해 뜰 시간은 이미 지났고 흐린 하늘엔 먹구름만 가득한데,골짜기 가득 운해가 피어오른다.
시야가 트이는 바위에 올라 새벽 운해에 심취한다.
설악의 아침공기는 더없이 맑다.새들의 노랫소리,메아리를 남기며 울려퍼진다.
덕분에 걸음도 가볍다.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약수물로 갈증을 해소하며 마등령을 향해 열심히 오른다.
햇살은 안개속에서 조금씩 번지고 있는데,산에 내려앉은 안개는 좀처럼 말끔하게 벗겨지지 않는다.
마등령삼거리에 도착하며 한고비 넘긴다.
본격적으로 공룡의 등줄기에 올라서기 전,든든하게 요기를 해둔다.
금강애기나리와 큰앵초,그리고 자주솜대가 이쯤에 피었겠다 했더니만,어김없이 나타나주는 어여쁜 꽃들...
역시나 숲을 화사하게 밝혀주는건 큰앵초다.그 어느때보다 개체수도 많다.
아침햇살 번지며 설악의 웅장함은 더욱 극대화되고,역시 설악임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짜잔~~!!
드디어 오매불망 일년을 그리워했던 산솜다리가 나타나 주었다.
꽃크기며 솜털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난장이붓꽃도 이름처럼 자세를 낮추고 귀티나게 피었다.색감한번 진하다.
중간중간 발목을 잡는 설악의 예쁜이들..
배낭까지 내려놓고 바위를 오르내리느라 걸음은 한없이 더뎌진다.
자꾸만 시선은 바위 위로 향하다보니,산행도 집중이 안되고..
욕심 버리는건..쉽지않으니..
봉우리에 올라설때마다 설악의 바람맛을 맘껏 즐긴다.
오늘 날씨 한번 참 좋다.
새벽기온 후텁지근 하길래 조금 지치겠구나~싶었는데,바람도 좋고 햇살도 딱 좋다.
쉽지 않은 공룡길..
만만치않은 거리에 일단 발들이면 도로 물릴 수도 없으니 올적마다 부담이다.
한살한살 먹어갈수록 그 부담감은 점점 더 커진다.
오죽하면 엊저녁엔 가슴이 막 두근거리며 소화불량 증세까지...ㅎ
오늘도 기도한다.
그저 건강 허락되어 오래오래 즐길 수 있기를~~~
앙증맞은 금강봄맞이도 지금이 딱 적기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기분좋게 눈맞춤한다.
이 꽃을 한번 예쁘게 그려보고 싶은데..
마등령에 이르러 도저히 못갈거 같다며 엄살을 부리시더니,참 꾸준히 같은속도로 잘 걷는 언니...
그동안의 산행 구력이 어디 가겠냐구요??
1275봉 오르는 길엔 발끝으로 난장이붓꽃이 예쁘게 피었다.
특히나 병꽃은 유난히도 색감이 짙다.
가느다란 꽃자루며 동그란 잎사귀,그리고 순백의 꽃색과 노랑색의 꽃밥까지 어느것하나 모자람없는 매력적인 꽃,금강봄맞이..
이름마저 너무 예쁘다.
돌단풍도 그 존재를 충분히 드러내고...
진을 다 빼며 1275봉에 올라선다.
9시가 넘은 시간,멋진 풍경 사방으로 두고 너른 바위에 앉아 밥상을 차린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에너지 소모가 많은지 배가 금방금방 고파온다.
상추쌈에 밥 한숟가락 올려 냠냠..
아삭고추 쌈장 찍어 또 냠냠..
똥파리 쫓아가며 즐기는 성찬으로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한다.
1275봉을 내려선다.
햇살이 조금 강해지긴 했지만,바람이 차갑게 불어주니 땀 흐를새가 없다.
아직 갈길이 멀어 계속되는 꽃들의 출현에 쿨하게 지나치려 맘먹지만..
어느절에 무의식적으로 배낭을 내려놓는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대견한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냐구요??
간만에 방향을 달리해서 걸었더니만,정말 어이없게 알바까지 하는 우리..참내..ㅎ
새벽길에 잠깐 알바를 했었는데,대낮길에 또 알바를 하고만다.
밧줄까지 버젓이 내려놓아 정규등로인줄 알고 낑낑대며 간신히 내려섰는데,길이 막혔다.
어쩐지 길이 생소하다 싶었다.
이내 길을 바로잡고는 하두 어이가 없어 둘이 한참을 배꼽잡고 웃는다.
언니와의 산행길에서 `알바`는 늘상 있는 일이라 알바를 안하면 산길이 재미없으니,오늘도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만든 셈이다.
한낮인데도 아침에 형성됐던 운해가 여전히 남아있다.
울산바위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산솜다리 백송이를 보여주겠다며 언니를 꼬드겨 금줄너머 노인봉을 살짝 들어가보지만,
예전에 봤던 산솜다리 군락지는 흔적도 없다.
백송이는 커녕 열송이도 안보인다.
그 대신,바닥으로 난장이붓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실은 난장이붓꽃 백송이였다며 너스레를 떤다.
1275봉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가 아닌가싶다.
멋진 설악의 풍광을 즐기며 길을 이어간다.
꽃들은 연이어 나타나며 발목을 잡고,바람은 적당히 참 잘 불어준다.
가져온 물이 아직 넉넉하다.
이번엔 진짜 산솜다리 백송이를 보여주겠다며 언니를 바위위로 유인한다.
짠~~!!
이번에도 허탕치면 어쩌나 했는데,이번엔 진짜다.
단언컨대,공룡능선의 모델 중 가장 멋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델이다.
딱 좋은 시기에 와서 풍성하기도 하거니와 죄다 생생하다.
두고가기 아쉬워 계속 보고 또 보고..
부디 이 상태 그대로 내년에도 또 볼 수 있기를..
뒤돌아보고 감탄사 한번 날려주시고..
하늘색 고우니 봉우리들이 더 신비스럽게 보인다.
언제쯤 나오나~했던 신선대는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오고..
신선대로의 마지막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다.
드디어 신선대에 올라 신선이 된다.
1275봉에서부터 세존봉,범봉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며,발아래 세상은 그림같다.
언니가 뜨끈뜨끈한 바위위에 눕는다.
나도 따라 눕는다.
한숨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매끄러운 바윗길을 힘 꽉 쥐고 내려서고..
희운각 삼거리를 지나며 천불동계곡으로 접어들어 다시 또 마냥 걷는다.
눈개승마 군락지를 지나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걸음을 이어간다.
공룡을 넘고나니,한결 마음은 편안해졌다.
산목련 함박 웃어주고..
이상하게도 고도를 낮출수록 기온은 점점 차가워진다.
안개는 점점 두터워지고 바람결이 싸늘하다.
산 위에서 보았던 그 안개세상으로 들어온듯하다.
천당폭포
양폭
금마타리
원추리
산행한지 14시간만에 다시 소공원으로 돌아오며 산행을 마친다.
속초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