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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야기/산행(2009~2019)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일 : 2019년 5월 30일

산행지 : 설악산

산행코스 : 소공원-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신선대-천불동계곡-소공원

산행이야기:다시 일년이 되어 설악산 산솜다리 피는 계절이 왔다.공룡능선에 피어있을 산솜다리가 아른거려 미칠 지경이니 도저히 안가고는 못배긴다.큰 맘먹고 나서는 일,이번에도 무탈하게 잘 걷다 오기를 바랄뿐이다.


 심야버스는 새벽 1시쯤 되어 속초에 도착했다.산행을 시작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잠시 쉴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 편의점에 들어가 겨우 30분을 때우고 택시를 타고 설악동으로 가자한다.

어디가세요? 설악산이요.

그 힘든 곳을 왜 가요?

가본적 있으세요? 많이 가봤어요.

가본데를 왜 또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입산은 3시부터 가능하지만,입장료를 끊으니 군소리없이 그냥 들여보낸다.

겁없는 세여인,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산행을 시작한다.

새벽하늘엔 별이 촘촘하게 박혀있고,손뻗으면 딸 수도 있을만큼 아주 가깝다.

얼마안가 후다닥하는 기척에 놀라 불을 비춰보니 담비 한마리가 오히려 우릴보고 식겁해 숲으로 달아난다.

그들만의 세상에 왠 불청객인가 했겠다. 

불빛에 사정없이 몰려드는 날파리들의 습격은 비선대를 지나자 조금씩 잦아들고,

비선대부터의 산길은 자비로움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경사급한 오르막길 뿐이다.

한걸음 한걸음씩 보태져 드디어 능선에 올라서며 한고비를 넘고,세찬 바람에 미처 쉴 새도 없이 곧바로 걸음을 이어간다.


조금씩 동이 트고나니,속초바다가 지척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해맞이를 하려고 전망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지만,추워도 너무 추워 다시 배낭을 둘러맨다.


아침햇살 가득히 봉우리마다 내려앉는다.

멀리 중청에서 대청봉까지의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설악의 첨봉들도 깨어나 가슴 뛰게 만든다. 




깊고 높은 산속에서 맞이하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함의 끝판왕이다.

온갖 새들의 지저귐에 귀가 즐겁고,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눈이 즐거운 시간이다.

힘든건 둘째다.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은 언제나 더 큰 기쁨으로 얻게된다.



산행 시작한지 3시간 반만에 마등령에 도착하며 또 한고비 넘는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도착했다며 토닥이며 자축한다.



숲속 가득 큰앵초며 금강애기나리 그리고 두루미풀이 피어 있지만,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꽃대를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차분히 앉아 기다리기엔 너무 갈길이 멀다.




오늘의 첫번째 주인공은 난장이붓꽃 되시겠다.

보라색이 정말 압권이다.귀티가 풀풀 난다.


두번째 주인공,산솜다리는 언제봐도 사랑스럽다.

뽀송뽀송한 솜털이 매력포인트다.

주로 높은 바위 위에 터를 잡고 있기 때문에 대가족을 만나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게 함정이다. 




바위틈에 숨어있는 보물들을 찾아내는 재미에 걸음은 한결 가볍고,

땀 흐르는 족족 씻겨주는 바람이 있어 또한 걸음이 가볍다. 




드디어 세번째 주인공,금강봄맞이를 만났다.

가녀린 꽃대며 새하얀 꽃잎이 한미모한다.

초반엔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만 눈에 띠어 혹 못보고 가면 어쩌나~했었는데,기특하게도 꽃대를 힘껏 올려 앙증맞은 꽃을 피워냈다.





언니가 요즘 뭘 드셨는지,걸음이 완전 짱짱하시다.

뒤에서 꽃찍다보면 어느절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마는 통에 똥줄빼게 만드신다.

언니는 나비공주가 함께 걸음맞춰 준 덕이라며 `나비효과`라 그런다.

암튼 둘 다 체력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건 확실하다.

이렇게 발맞춰 줄 동무가 있다는것도 나의 아주 큰 복이다.

부디 건강 잘 유지해서 우리 모두의 회갑연은 마등령에서 하는걸로다가~~ㅎㅎ


스틱없이 사뿐사뿐 종종걸음으로 잘도 걷는 우리 공주님..

그대의 인생2막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간밧데!!



산솜다리 가족이 바위틈에 터잡고 있다.대가족이다.

딱 열송이가 아기자기하게도 옹기종기 소담스럽다.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1275봉으로의 오르막은 언제나 기가차다.

오르막이 꽤나 길어 몇번의 쉼을 해야만 한다. 

그나마 오늘은 나은편이다.날이 무덥지 않아 수월하긴하다.




쉬어갈겸 꽃앞에 서보지만,무심한 바람은 도와주지 않는다. 

한참을 머물러서야 겨우 한컷씩 얻는다.


어쩜 이토록 아름다운지..

어쩜 이토록 사랑스러운지..

두고가면 한동안 머릿속에 아른거릴거 같아 눈에 꼭꼭 넣는다.

일년 후에야 만날 수 있기에 더 애틋하다.





헥헥대며 1275봉에 올라선다.

역시나 바람이 세차다.

바위 어드메쯤 산솜다리가 이쁘게 피었을테지만 도저히 오를 엄두가 안난다.

잠깐의 쉼도 없이 이내 봉우리를 내려선다. 



지나가는 산객,우리가 일본인인줄 알고 `곤니찌와~`ㅎㅎ

요즘 인생2막을 위해 일본어공부에 열공중인 공주님과 언니가 몇마디 주고받는걸 보고는 착각하신게다.

한참을 배꼽잡고 웃는다.



약간의 모험이 필요한 위치에 피어있는 산솜다리 가족..

눈앞에 보이는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신경쓰지 말고 진행하라해도 적당한 지점에서 기다려주는 동지들..

행여나 이쁜 모델 지나치지 않을까 일일이 점찍어주는 센쓰까지..






바람 피해 숲속 한켠에 밥자리를 잡았는데,그럼에도 추워도 너무 춥다.

으슬으슬 추운건 기본이고 콧물에 손가락까지 시려 덜덜 떨면서 겨우 한끼를 때운다.

정말이지 아랫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날씨다.

지난주 소백산과도 비교도 안될 정도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간절하지만,더위에 대비한 차가운 음료뿐 추위에 대비한 음료는 하나도 없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씹어 넘기고는 얼른 정리하고 일어선다.





대규모 산솜다리 군락지를 볼 수 있는 포인트에 이르렀다.

바람이 어찌나도 매섭게 불어대는지,몸이 막 날아갈것만 같지만,절대 지나칠 수 없는 꿀포인트다.

언니는 바위에 딱 붙어 바람을 피하고  있고,나비공주님은 도중에 도저히 안되겠다며 곧바로 내려가지만,

극성맞은 나는 바람과 맞짱뜨며 기어이 바위를 기어오른다. 


그리하여 환상의 산솜다리 가족들을 만나고..

일년을 기다린 보람이 가슴벅차게 눈앞에 들어온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오래오래 두고 보고싶은 이쁜이들이다.








같은 계절,비슷한 날짜에,똑같은 길을 걸으며,똑같은 봉우리를 보고,똑같은 사진을 찍고,똑같이 감동한다.

신기한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항상 처음 대하는듯 새롭고,오히려 그리움이 더 극대화된다는것이다.

돈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것도 아니다.

노력한 만큼 받아주는 산과 친구한다는게 감사할 뿐이고,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게 너무 즐겁다.

새소리,물소리,바람소리,바위소리,그 어느것하나 특별하지 않은게 없다.

때되어 피어나는 야생화를 보는건 더욱 특별하다.

절대 시기를 거스르는법이 없다.

언제나 정직하게 피어 자연의 이치대로 순응한다. 








오늘 팔힘깨나 쓴다.

몇군데는 팔다리를 잘 이용해야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이 있다.

바위가 닳아 매끄러운 곳도 꽤 있다.





금마타리


자주풀솜대


발끝으로 금강봄맞이가 새하얗게 흩뿌려져 있다.

이맘때나 볼 수 있는 설악공룡의 3종세트는 지금이 한창인거같다.

 



어느새 신선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아니 벌써? 하며 너무나도 쉽게 도착했다며 기고만장 멘트를 날리는 우리..




오늘 산행의 드레드코드,파랑색 티셔츠..

약속했던것도 아닌데 우연의 일치로 깔맞춤했다.ㅎ


두번째 드레스코드는 빨노파패션..

이또한 우연의 일치였다는것..



다시 마등령으로 돌아가네,대청봉까지 오르네마네 하며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다 신선대를 내려선다.

막상 신선대를 내려서려니 좀 아쉽긴하다. 



천남성



천불동계곡을 내려서며 찬찬히 고도를 낮추고,점점 후텁지근해지는 기온에 공룡의 그 사납던 바람이 막 그리워진다.

열두시간만에 다시 소공원으로 돌아오며 산행을 마무리하고,가장 먼저 우리가 한일은 시원한 맥주한캔 원샷하기..

그리고 두번째는 옷갈아입고 물치항으로 회먹으러 가기.. 


결국은 또 이렇게 공룡의 등뼈를 걷고 왔다.

 힘든 기억은 또 잊었다.

뿌듯함만이 가슴벅차게 차오른다.

아무래도 내년에 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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