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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6일 : 에스떼야~또레스 델 리오(29km)


제6일 : 에스떼야~또레스 델 리오(29km),8시간 20분


2019년 9월 24일


30km에 가까운 길을 걷는 날이었다.

5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고,6시 20분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날이 어둡다보니 랜턴을 켰는데도 도무지 까미노 시그널을 찾을 수 없었다.

숙소주변을 배회하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종업원한테 물어보고 나서야 까미노 위에 섰다.

알베르게를 가리키는 노란색 시그널을 까미노 표시라고 착각했던게 화근이었다.

주택가에서는 화살표 방향에 특히 주의해야만 했다.


얼마간 어둠속에서 가다보니,오른편으로 이라체 와인샘이 나왔다.

하도 유명하여 염두해 두고 걸었는데,놓치고 지나치는걸 외국인 순례자가 불러세워 주었다.

왼쪽 수도꼭지에서는 와인이,오른쪽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왔다.

용기에 와인이 얼마 안들어 있는지,아주 찔끔찔끔 나왔다.맛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왼편으로는 이라체 수도원이 있었다.

와인샘이 있는 양조장도 수도원소속이란다.

새벽 하늘과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웠다.


소나무 숲길을 한참동안 걸었다.

막 동트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조금 어두웠는데,혼자 걷는다면 조금 으스스할거 같았다.

새벽녘의 숲길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길이었다.

앞뒤로 순례자들이 많다면야 별 두려움이 없겠지만,어느날은 그렇지 않을때도 많았다.

가끔 부엉이 울음소리도 들렸고,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오려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은 조금 오싹하기도 했다.







가야할 길이 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저만치에 걷는 순례자는 개미크기만했는데,시야에 들어오더라도 따라잡는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1킬로 이상은 떨어져 있어 보였다.

바로 앞에는 청주에서 오신 한국인 순례자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고 있었다.

친구사이로 보였는데,직장 선후배 사이라 그랬다.

후배로 보이는 사람은 얼핏봐도 60대 중반은 되어 보였는데,후배역할에 아주 충실하셨다.

말끝마다 선배님이라 부르며 존칭을 썼고,선배라는 분은 여전히 직장상사 말투를 하셨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한번 선배도 영원한 선배였다.  




길 양옆으로 샤프란이 아침햇살을 듬뿍 받아 꽃잎을 열기 시작했다.

보랏빛 꽃잎과 노란색 꽃술의 색감이 아주 짙었다.


화살표는 항상 노란색만 있는게 아니었다.

때로는 돌맹이들을 모아 그려놓기도 했고, 잔돌을 모아 그려놓기도 했다.

그 누군가의 배려에 미소가 지어졌고,그 누군가의 여유로움이 부럽기도 했다. 

여유로운 길인줄 알고 왔는데,나는 조금의 여유로움도 없었다.

새벽같이 출발해 물마시는 시간도 아껴가며 걷고 있었고,bar에 들러도 커피를 거의 원샷하며 마셨다.과일은 걸어가며 먹기도 했다.

외국인 순례자들의 걸음속도도 만만치 않았다.아니 나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걷고 있었다.

조금 어영부영하다보면 어느절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문 연 bar가 없어 첫번째 마을은 그냥 통과했다.

마을 중간에 식수대가 있어 물만 마시고 보충했다.

가려서 마시지 않았는데도 물갈이를 안해서 참 다행이었다.

정로환이 물갈이하여 난 병에는 직빵이라 하여 언니가 챙겨갔었는데,한알도 먹지 않았다.

어느 순례자가 설사를 한다 그래서 한 알 준게 다였다.





도로를 따르고 있었는데,화살표는 오른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앞서가는 순례자를 따라 경작지 사이로 난 길을 한참이나 갔는데,길이 희미해지더니 어느 순간 막혀있었다.

수풀사이를 헤치다가 다시 도로변까지 나와 확인하니,화살표 방향이 좀 애매해서 헷갈린거였다.

좁은 오솔길로 들어가니,다시 길은 선명해졌다.



기분좋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흥겨운 음악이었는데,인기척을 느끼고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흥겨워서 어깨를 들썩거리다 귀호강한 댓가로 1유로를 냈다.



구름이 예술인 날이었다.

드넓은 경작지 사이로 난 길은 끝이 없었다.

포도밭이 이어지다가 다시 밀밭이 이어졌다.

햇볕은 너무나도 따갑게 내리쬐었다.그늘하나 없어 어디 쉴만한 곳도 마땅찮았다.





`평지길 20킬로 정도야뭐~~`

까미노길을 시작하기전엔 자신만만했었다.

나름 산에서 체력을 다져왔다고 생각하여 평지길은 껌이나 다름없을거라 생각했었는데,오산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지길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오만하게 살아왔는지 일깨워 주는듯했다.

땡볕아래서 발바닥에 전해지는 통증을 감내하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포도밭을 지나며 또 한송이를 서리했다.

순례자들 대부분이 포도송이를 하나씩 뜯으며 걸었다.

과즙이 퐁퐁 터져 갈증이 해소되었고,배도 불러서 한송이를 미처 다 못먹었다.



한동안 그늘도 없고 식수대도 없었다.

간이매점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었지만,텅비어 있었다.

인내하며 걷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아무리 걸어도 지평선은 그대로였다.

순례길은 인내심을 무수히 요하는 길이었다. 





쉴만한 곳을 찾다 납작한 돌맹이를 찾았다.

양말을 벗으니 발이 땀으로 인해 불어터져 있었다.

양말을 갈아신고 복숭아를 하나씩 먹었다.

캐나다 순례자가 지나며 사진찍어도 되냐고 묻길래 오케이 했더니,본인 사진기로 한번 찍고 내 사진기로 한번 더 찍어주었다.






가도가도 보이는건 포도밭과 추수가 끝난 밀밭 뿐이었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나즈막한 오르내림이 계속되었다.





마을이 나타나자 조금 살것 같았다.로스 아르꼬스란 마을이었다.

대부분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었지만,우리는 10킬로나 더 가야했다.


건물안에 자동판매기가 있어 커피를 눌렀더니,희멀건 우유만 나왔다.

다시 콜라를 눌렀더니 이번엔 제대로 나왔다.




로스 아르꼬스는 참 예쁜 마을이었다.

하룻밤 쉬어가고 싶을 정도로 골목골목이 정감있었다.

마을 전체가 연한 파스텔톤빛이었는데,창문마다 놓여져있는 화분으로 포인트를 주어 멋을 내었다.

그 속을 걷고 있자니,그림책 속 마을 안에 들어가 있는듯했다.  

마을주민과 마주칠때마다 `부엔 까미노`하며 먼저 인사해 주었다. 

 









내부장식이 아름답다는 아름다운 성모마리아 성당이 눈앞에 턱 나타났다.

그 앞으로는 음료나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회색빛 성당과 참 잘 어울렸다.







성당안으로 들어가 내부장식을 둘러보았다.

무척 정교하여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봐야했다.






동화같은 마을을 벗어나 다시 걸었다.

바로 눈앞으로 10킬로 떨어져 있는 또레스 델 리오란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깝게 보여도 족히 2시간은 가야만 한다는 현실,그리고 햇볕은 더욱 따가워졌다는 현실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행복한 고행길이라 생각했다.

꿈꾸었던 곳에 머물고 있다는것 또한 현실이었다.

어쩌면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의 강렬한 햇살도 감사함 중의 하나였다.

비가 왔다면,황량한 벌판으로 거친바람이 불었다면 더욱 걷기 힘들었을것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다 감사한 것이었다. 





캐나다 순례자와 벨기에 순례자는 언제나 함께 걸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언제나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걸었고,걸음걸이도 무척이나 빨랐다.

캐나다 순례자,데이비드가 말했다.

`너,정말 잘 걷는구나`

그래 나 잘 걸어..불수사도북이라고 아니 삼관우청광이라고 들어는 봤나~~ㅎㅎ(속마음)

`너는 키가 커서 내가 두걸음 걸을때 한걸음만 걸으니 내가 더 잘 걷는거네`

이렇게 말했다.



달콤한 포도의 유혹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서리하는일은 나를 시키더니,너무 큰 송이를 땄다며 쿠사리주는 언니..ㅎ

포도송이가 제법 커서 둘이 다 먹느라 애를 먹었다.








다양하게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목적지로 다가가고 있었다.

발바닥에 열불이 나는건 당연했다.

매일같이 20여 킬로나 혹사 당했으니,부작용이 일어날만햇다.

발바닥도 적응기간이 필요했는데,일주일쯤 되니 뒤꿈치에 굳은살이 박히면서 조금씩 편해졌다.

그 후론 중간에 따로 양말을 갈아신지 않아도 되었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아스팔트길을 따르다보니,산솔이란 마을이었다.

초입에 있는 bar에 들어갔더니,오렌지쥬스가 한잔에 2.5유로나 되었다.나뚜랄도 아니었다.

꽤 비싼 편에 속했다.

대부분 순례길 위에선 커피나 쥬스같은 음료가 2유로를 넘지 않았다.

뒤이어 한국인 순례자가 도착했다.

얼굴에 참 희한한 선크림을 발라 항상 눈에 띄었는데,금액을 알려주니 다시 배낭을 둘러멨다.






강을 건너자마자 마침내 목적지인 `또레스 델 리오`에 도착했다.

이전 마을이었던 산솔보다는 아주 규모가 작은 아담한 마을이라 이렇다할 슈퍼도 없었다.

알베르게에서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과일이며 빵과 음료들을 팔고 있었는데,다음날 필요한 간식은 거기서 준비했다.






언덕을 올라 앞이 막힌곳에 까사 마리엘라라는 알베르게가 있었다.

순례자여권과 여권을 보여주고 쎄요를 찍으면서 맥주 한잔도 주문했다.

한번에 원샷 하자마자 2층으로 올라갔다.



저녁까지 포함하여 22유로였다.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자리잡아 내가 1층을 썼다.

총 12명이 쓰는 방이었는데,죄다 서양인이었고,내 바로 옆으로는 폴란드 순례자가 자리했다.

순례길에서 많이 보던 사람이었는데,몸이 남자처럼 건장하여 언제나 흐트러짐없이 안정된 자세로 걸었다.

도착했을땐 자고 있었는데,바로 옆에서 부스럭거리며 짐을 푸느라 조금 미안했다.

한국에서 왔다 그러니까 북한의 `김정은`이란 이름을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건조기를 돌렸다.

3유로였는데,알베르게마다 금액이 제각각이었고 사용방법도 제각각이었다.

옆에 있던 외국인 순례자가 동전넣는 곳과 사용방법을 알려주었다.

어느 알베르게에서는 4유로나 주고 기껏 돌렸는데,채 마르지 않은채로 나왔었고,

어느 알베르게에서는 여럿이 함께 쉐어하여 돌리는 바람에 양이 너무 많아 젖은 채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로는 주인한테 미리 건조기 쓰는 방법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은 순례자메뉴였다.

숙소에서 받은 식권을 들고  50m정도 떨어진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벌써 줄 서 있었다.

 다른 알베르게에서 묵는 여언도 그곳에 있었다.

식탁에 놓여진 와인으로 `쌀룻!`하며 건배했다.

 


첫번째,두번째 요리가 차례대로 나왔고 나중엔 후식이었다.

순례자메뉴뿐 아니라 코스요리는 다 그랬다.

그런데,문제는 시간이 하세월이라는 것이었다.

기본 2시간은 잡아야 저녁식사가 끝났다.

원래 그곳 사람들이 그랬다.

옆자리엔 프랑스,그리고 앞자리엔 덴마크,그리고 브라질 순례자등등 각국의 순례자들이 모여 식사를 함께 했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며 웃고 마시며 식사시간을 즐겼다.

좀 먹을라치면 말시키고,또 먹을라치면 말을 시키고..

눈만 마주쳐도 말을 시키고,와인을 따르고,수프까지 손수 퍼주고...

그러지않아도 말이 서툰데,먹으랴 머리 굴리랴 먹다가 체할것 같았다.

그렇게 하다보면 기본 2시간이었다.

먹으면서 소화가 다 되는것 같았다.후딱 먹고 발닦고 잤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었다.

어쨌든,함께 즐기는 식사시간은 순례길이 끝나도록 적응이 안되었다. 

 

리오의 밤하늘이 예술이었다.

청색의 하늘은 누군가 물감을 풀어놓은듯 했다. 

피곤함도 잊고 성당까지 올랐다가 마을 입구까지도 내려갔다.

마치 시간을 되돌려놓은듯 아주 오랜 도시속에 머물고 있는듯했다.











다음날은 리오하 주의 주도인 로그로뇨였다.20km..

거리가 비교적 짧아 부담감이 덜했던 밤이었다.

순례객들이 다 들어오기도 전에 잠이 들었는데,정말이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