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22일 : 아스또르가~엘 아세보(37.4km)



제22일 : 아스또르가~엘 아세보(37.4km),9시간 30분


2019년 10월 10일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해발 1,530m에 위치한 순례자의 상징과도 같은 철십자가를 지나는데,지금까지와는 완전 다른 지형의 산길을 걸어야만 한다.

26km 떨어져있는 폰세바돈까지도 힘든데,거기서 11km를 더 걸어 엘 아세보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하루 쎄빠지게 걷고,그 다음날 폰페라다에 일찌감치 도착해 도시를 즐기자는게 용수의 갸륵한 발상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룻동안 무려 37킬로를 걸어야만 하는 아주 무식한 발상이기도 했다.

어차피 걷기 위해 온 길이니,어디 한번 무식하게 걸어볼까? 


 일어나면 가장 먼저 볼일을 보고,세수를 하고나서 로션과 썬크림을 바른다.

립스틱은 입술보호와 미용차원에서 꼭 바른다.그래야 좀 봐줄만하다.

그런 다음에는 배낭과 침낭,그리고 옷주머니를 챙겨 복도로 나와 배낭을 꾸린다.

주방에서 요기를 한 다음에 등산화 끈 동여매고 모자쓰고 랜턴을 장착하면 준비완료다.     

매일처럼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을 벗어나 스펙터클한 일상을 꿈꾸며 이곳에 왔지만,여전히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조금은 결이 다른 일상에서 그동안 익숙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됐다.

푹신한 침대,온기있는 이불,따뜻한 밥,샴푸,세탁기,푹신한 소파등등..

아주 가끔은 그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외국인 아가씨가 현관을 나가며 케세라 세라 노래를 흥얼거렸다.

업다운이 심한 구간이라 걱정되어 주문을 거는 거란다.

나도 함께 흥얼거려주며 격려해주었다.케세라 세라~~~ 

  

광장을 지나 시내를 빠져나와 다시 까미노에 섰다.

도로 옆으로 난 길을 열심히 걷고 있는데,어둠속에서 누군가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천천히 천천히~~

새벽에 복도에서 봤던 그 프랑스 청년이었다.

어엿이 세찬이라는 한국이름도 갖고 있었는데,진짜이름 `세바스찬`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구사하는 한국말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는데,별의별 한국말을 다 알고 있었다.

`같이 가요`에서부터 개이쁘다,개부럽다라는 요즘아이들이 쓰는 비속어까지 알고 있었다.

본인말로는 순례길에서 배웠다는데,아무래도 한국인 친구가 따로 있는것 같았다.





첫번째 만나는 마을에서 bar에 들어갔는데,세찬이도 뒤이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수첩까지 꺼내 적어가며 한국말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를 자꾸 `그년`이라 발음해서 계속 연습을 시켰다.

수첩에 이름을 적어달라 그래서 적어줬더니,`누나,개이쁘다`이런다..참내..

 



쉬었다 다시 배낭을 짊어지면 제법 묵직한데,어느 정도 걸으면 몸과 하나가 된다.

 걸음도 그렇다.시동을 걸고 어느 정도 걸어야 속도가 붙었다.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쉬지도 말고`란 말처럼 쉼없이 꾸준히 걷는게 가장 좋았다.





아스팔트길을 걷다 다시 흙길이 이어졌다.

햇살이 대지위로 쏟아지며 눈부시기 시작했고 내 그림자는 길어졌다.

순례길은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길이라,오전에는 해를 등지고 걷지만,오후에는 해를 마주보고 걸어야한다.

 그래서 새벽같이 출발하여 될 수 있으면 오전중으로 걸음을 마치려고 했다.




직전마을에서 다시 4킬로쯤 걸으니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란 마을이 나왔는데,사람이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인적 하나 없었다.

아주 작은 상점을 지나며 용수는 화장실을 이용한 값을 치르기 위해 과일맛나는 젤리를 하나 사들고 나왔는데,

고무를 씹는것 같다며 몇개는 씹다가 그냥 뱉어 버렸고,수박맛 나는 젤리만 골라 먹었다.

하나 먹었더니,어렸을적 문방구에서 사먹던 그 불량식품 젤리맛이 났다.






아스팔트 옆으로 난 흙길이 똑바로 이어졌다.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는 사이에 뒤에 오던 영훈이가 저만치로 멀어졌다.

어물쩍거리다가는 앞뒤로 아무도 없을때가 있어 적당한 간격을 주며 신경쓰며 걸어야했다.

멍때리고 걷다 아무도 안보이면 내가 길을 놓친게 아닌지 불안할때도 있었다. 




풍경이 달라지며 조금씩 고도가 높아졌다.

끝없이 펼쳐졌던 밀밭 대신 빼곡한 숲이 있었고,지평선 대신 높은 산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고개를 올라가는 자전거도 아주 힘겨워 보였고,두발로 걷는 나는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아스팔트길과 산길을 번갈아가며 걸었다.

산길로 들어서면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로 우중충했고,바닥도 아주 울퉁불퉁했다.

그 많던 순례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거의 보이지 않아 숲길로 들어서면 앞서가는 용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야만 했다.    





폰세바돈까지 6킬로 남은 지점,긴 오르막 끝에 마을하나가 나타났는데,

자전거 순례자들이 떼지어 앉아 쉬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니 단체로 `부엔 까미노`~

오늘은 `부엔 까미노(좋은 길)`가 아니라 `말 까미노(나쁜 길)`랍니다.





접시꽃인가?

손님맞이 꽃이라던데,담벼락에 일렬로 서서 나를 맞이해 주는것 같았다.




마당이 호박으로 가득찬 어느 상점앞에서 한참을 쉬었다.

환타하나와 바나나를 사서 아침에 먹다 남은 빵과 함께 요기했다.

사람구경하여 신난듯 상점 주인은 나를 붙들고 연신 말을 시켰다.못알아 들을땐 웃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자그만 상점은 없는거 빼고 다 있는 만물상이었다.

갖가지 과일에 음료와 술,그리고 약간의 의약품도 비치되어 있었다.

영훈이가 찾았던 압박붕대도 거기에 있었다.





산세가 더욱 뚜렷하게 달라지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햇살은 무지막지하게 내리쬐고,걸을때마다 먼지도 아주 많이 풀럭풀럭거렸다.



올리브 나무가 쭉 이어지더니,다시 소나무길이 이어졌다.

그 사이로 난 길은 한없이 이어졌고,저만치에 개미만하게 앞서가는 순례자들이 보이며 언덕의 높이를 가늠하게 했다.  





자갈과 돌이 섞인 길은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다.

애써 피해 가는데도 계속하여 발바닥에 압박을 주었다.


쉼터가 있었지만 식수대도 없고 요기할만한 푸드트럭도 없어 그냥 통과했다.

산길은 더 좁아졌고 더 우거졌다.

어느 깊은 오지산속에 들어있는 느낌이 들면서 멧돼지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괜한 상상을 했다. 

 



도로는 곧바로 나 있었지만,까미노는 곡선을 그리며 우회하도록 되어 있었다.

도로 위에는 지나는 차보다 자전거 순례자들이 더 많았는데,아예 끌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된 순례를 하는구나~할 정도로 고행길이었다.

차라리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길을 걷는게 훨씬 나았다.

그 때의 자갈길은 이 길에 비하면야 완전 껌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설악산에 비하면야 껌 수준이라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악산보다 더 힘겹게 헥헥거리며 기어올랐다.  



폰세바돈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오르막은 멀리서봐도 기가 차더니만,

어느새 마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폰세바돈은 해발 1,430m에 자리한 산중턱의 마을이었다.

척 봐도 아주 오래된 마을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는데,알베르게며 음식점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마을입구에는 피자집이 있었는데,피자냄새가 코를 찌르며 식욕을 자극했다.





복숭아 하나를 욱여넣고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지친 상태에서 아직 11킬로나 더 가야한다는 사실이 몸과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걷다보면 목적지에 닿아있을것이다.

어차피 몸뚱아리 단련하고 내공도 수련하러 온 길이었다. 




지나온 마을을 내려다보니 뿌듯했다. 

한걸음이라야 기껏해야 60cm밖에 안될텐데,그 한걸음은 어마어마한 가치였다.  

  




바로 옆 도로는 구절양장이었다.

아주 심하게 구불구불하게 그려져 있었다. 

산높이는 이제 눈높이와 비슷해졌고,내려다보는 산그림이 너무 예뻤다.

앞뒤로 순례자가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선자령의 어드메쯤 걷고 있는거 같이 아주 익숙했다.  

  



용수가 철십자가라 그러는데,난 그럴리가 없다고 했다.

저렇게 작을리가 없고,바로 도로옆에 있을리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용수말이 맞았다.

기다란 봉의 끝으로 십자가가 있었는데,아주 작았다.


한 순례자가 배낭에서 뭘 꺼내 철십자가 앞에 놓았다.

집에서 출발할때 가져온 돌을 십자가 아래 두면 그간 지은 죄가 사라진다고 한다.

죄 많은 내 인생,돌맹이 하나로 씻겨진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라도 잘 살아야지..

 



산티아고 예배당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무인판매대에는 바짝 마른 복숭아 하나랑 물만 몇개 놓여있었다.

갈증이 나서 기부를 하고 물 한병을 챙겼다.

 

도로와 나란히 나있는 길은 계속하여 급격하게 떨어졌다. 

숲길을 지날땐 아무도 없어 재빠르게 통과했는데,숲길만 빠져나오면 풍경이 너무 시원해 걸을맛이 제대로 났다.

멀리서 봤던 풍차도 아주 가깝게 보였는데,문득 선자령이 떠올랐다. 



뿌옇게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만하린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내려섰다.

 


그 말로만 듣던 만하린 알베르게였다.

전기도 안들어오고 샤워실도 없고 화장실은 재래식인곳..

템플 기사단에서 운영하는 기부제 알베르게인데,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교대로 순례자들을 맞이한다고 한다.

일부러 옛 순례자들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이곳에서 묵는 순례자들이 있다는데,

세찬이도 이곳에 묵을 예정이라 그랬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긴 하겠다. 


알베르게 입구에는 각 나라의 국기와 도시간의 거리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통신탑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힘겨운 언덕이었다.

숨이 턱턱 막혔고,발바닥은 돌맹이를 밟을때마다 고스란히 충격을 흡수했다.

내려다보는 풍광은 한없이 평화롭고 서정적이었지만,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오르자니 여간 곤욕이 아니었는데,하도 힘드니 시원한 맥주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 등산화를 벗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통신탑만 보며 오르다보니 길이 막혀있었다.

자전거 순례자들이 가길래 아무런 의심없이 따라간게 화근이었다.

자전거팀이 돌아나오며 길이 아니라는 사인을 보냈는데,나도 모르게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설상가상으로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잔머리를 쓴다는게 되레 쌩고생만 진탕하는 결과를 낳았다.

바로 아래로 길이 보이길래 수풀을 헤치고 곧바로 떨어지면 까미노와 만날것만 같았다.

하지만,도무지 길까지 닿을 수 없었고 여기저기 찔리고 긁히고 나서야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나왔다.

멀쩡한 길 놔두고 이게 뭔짓인지..참..

미련하게도 10분만 고생하면 될것을 20분이나 뻘짓을 하다 제자리에 돌아왔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가 몸이 고생한 꼴이었는데,

순례길은 잔머리나 꼼수가 통하지 않는 정석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시 도로까지 나와 살펴보니 왼쪽으로 아주 좁은 길이 나있었는데,그걸 못보고 지나친 것이었다. 

깜빡 정신줄 놓으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이 후,빰쁠로냐에서 온 라파엘과 아세보까지 걸었다.

내 걸음이 빠르다며 `데스빠씨오,데스빠시오~하며 진정을 시키더니,`뗀 꾸이다도(조심하세요)`를 연발했다.



무릎 상하기 딱 좋은 하산길이었다.

바위 너덜길이라 무척 조심해야만 했다.

산세는 우리나라와 아주 비슷하여 아주 익숙했다.






여긴 또 한계령길과 비슷했다.

오가는 차는 거의 없었고 자전거만 가끔 씽씽 달렸다.

소리도 무시무시하고 속도도 아주 빨랐다.



언덕만 올라서면 마을이 보일줄 알았는데,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라파엘은 얼마 안남았고는 했지만,여전히 까마득해 보였다.

체력이 점점 한계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삶은 매직이다.

돌에 새겨진 글귀가 와닿았다.

인생은 마술처럼 무엇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예측할 수 있다면 재미없는 인생이 될것이다.

예측할 수 없기에 기대하고 꿈을 꾼다.

생장에서부터 여기까지 온것도 어쩌면 매직이었다.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를 하고 주문을 외웠다.

내일은 또 어떤 마술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를일이다. 





힘겹게 걷는 나를 위해 라파엘이 계속하여 말을 걸어주었는데,나를 신경쓰며 걷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에 피도 조금 흘렸는데,그만하길 천만다행이었다.

나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미안하여 말하지 말고 조심해서 걸으라 하는데도 여전히 말동무를 해주었다.

아주 힘든 구간이지만,아주 아름다운 구간이라 그래서,나도 동감했다.




마침내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너무 기쁜 나머지 라파엘과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검은 돌로 지붕을 한 산아래 마을이 너무 예뻤다. 



마을 끝에 있는 엄청 좋은 알베르게로 간다길래 라파엘과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가보니 우리가 가려고 했던 알베르게도 바로 그곳이었다.

용수가 한참 뒤에 있는줄 알고 마을입구에 앉아 먼지를 털고 스틱을 정리하는데,

용수는 벌써 도착하여 날 찾으러 왔다.

잠깐 길을 잃었을때 지나친 모양이었다.




자전거로 된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산티아고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가다 이곳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은 독일인 순례자를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었다.

 


알베르게는 마을 끝으로 동떨어져 있었는데,호텔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아주 세련돼 보였다.

온천과 함께 운영되고 있었는데,온천을 이용하려면 20유로가 넘는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아주 큰 레스토랑과 bar가 있었고,순례자들 말고도 관광객들도 아주 많았다.


저녁까지 포함하여 22유로를 지불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먼저 도착한 레오네오를 만났다.

엄청 반가워하며 손등에 키스를 날려주었는데,안씻어서 더럽다고 하는데도 노 프러블럼이란다.

숙소는 조망이 참 좋았다.무슨 휴양림에 온거 같았다.

문을 열면 멀리로 산자락이 한 눈에 들어왔고,조망을 잘 볼 수 있게끔 긴 등받이 의자가 줄지어 있었다.

여덟명이 한방을 썼는데,브라질의 루이스와 갈루스 형제가 바로 내 앞 침대였고,

40일넘게 걸어오셨다는 한국인 순례자 70대 노부부도 계셨다.

마나님을 극진하게 챙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평생 꿈을 이루고 있는 중이라 하셨다.


씻고나니 조금은 피로가 풀렸는데,계단을 절뚝거리며 다녔다.

빨래를 널어놓고 저녁시간까지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이 욱신거려 잠이 잘 오지 않아 발마사지만 연신 해댔다.


배가 너무 고파 시간이 안되었는데도 20분이나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 대기하고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샐러드와 닭요리,그리고 딸기를 크림과 함께 버무린 후식이 차례대로 나왔다.

시장이 반찬이었다.샐러드며 닭요리를 다 먹어치웠다. 

 

저녁을 먹는 동안 해는 서산너머로 기울었고,해지고 난 후의 여명빛이 환상이었다.

하지만 식사자리를 차마 뜰 수 없었다. 

스페인 순례자가 조금 늦게와 바로 내 앞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먼저 일어서는건 실례라 생각했다.


처음으로 언니와 숙소를 달리했다.

언니는 버스가 여의치 않아 먼저 폰페라다에 가있기로 했는데,아르헨티나와 우르과이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카톡이 왔다.

서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괜한 걱정이었다.언니도 나도 잘 하고 있었다.

결국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있었다.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