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24일 : 폰페라다~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24.1km)


제24일 : 폰페라다~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25km),6시간


2019년 10월 12일


순례길을 걸은지,24일째가 되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몸과 마음이 지쳐 과연 내가 남은 길을 다 걸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고,그럴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곤했다.

말이 800km지 정말 보통일이 아님을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검색을 하고 공부를 했어도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것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는데,심지어 계획한 날짜보다 더 앞당겨 끝낼 수 있을꺼라는 자만심까지 갖고 왔었다.한마디로 기고만장했다..

이만큼 걷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인지를 깨닫고 또 깨달았다.


6시 출발..

폰페라다 시내를 빠져나가는데만 해도 족히 1시간은 걸렸다.

몇번의 횡단보도와 철교,그리고 공원을 지나서야 시가지와 외곽지를 통과할 수 있었는데,

까미노 사인을 찾느라 집중해야만 했다.

이럴때면 발끝으로 들쥐들이 오가더라도 일직선으로 뻗은 흙길을 걷는게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마다 즐기는 커피타임이 너무 좋았다.

문을 열면 향긋한 커피향으로 가득했고,특히나 고소한 빵냄새는 언제나 사랑이었다.

bar의 따스한 온기도 참 좋았고,드르륵~드르륵~원두가는 소리에도 저절로 힐링이 되었다.  





들판위로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초지 위로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얼마안가 마을 하나가 또 나타났는데,이전마을에서 약 5킬로 정도 걸어온 후였다.

비에르소 와인으로 유명한 마을이었는데,마을끝으로 커다란 와인공장이 있었다.



이젠 날이 차가워져 물을 마시는 횟수도 급격하게 줄었다.

하루 500m를 챙겼는데,다 못마시고 남길때가 많았다.

차가운 과일도 잘 내키지 않았고,초코바 하나로 요기하며 걸었다.





까미노는 깜뽀나라야의 시가지를 관통하는 길이었다.

제법 큰 슈퍼에 보건소도 있고 버스도 다니는 꽤 규모를 갖춘 마을이었다.

레스토랑이나 호스텔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마을 끝으로는 비에르소 와인공장이 있었다.안으로 들어가면 시음도 할 수 있다던데,그냥 통과했다.

와인은 마실 기회가 참 많았다.

순례자메뉴를 먹을때면 한병씩 테이블에 놓여져 있어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는데,맛을 잘 몰라 한두잔으로 기분만 내면 족했다.

질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겠지만,슈퍼에 가봐도 한병 가격이 2~3유로밖에 안했다.

나는 칵테일와인 샹그리아가 가장 맛있었다.




고가다리를 건너자마자 긴 오르막이 나타났다.

언덕을 올라가며 방금 지나온 마을을 내려다보니 그림같았다.

산아래로는 옅게 운해가 드리워져 있었고,산그리메도 아주 그럴싸했다.




다른때 같았으면 아주 뜨거울 시간인데,이젠 햇살이 드리워도 그리 따갑지 않았다.

10월 중순으로 가면서 바람은 차가워졌고,햇살은 한 풀 꺾였다.



100km대로의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와닿지 않았던 거리는 점점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고,조금씩 줄어들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스무날넘게 걸어온 거리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았는데,한걸음 한걸음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부엔까미노라는 인삿말을 듣고,가끔 농가에서 나는 꼬끼오 소리를 들으며 걷는길,조용히 귀기울이면 까미노가 들려주는 소리는 참 다양했다.

그 중,저벅저벅 걷는 소리에 스틱 딛는 소리,그리고 거친 호흡소리가 가장 아름다웠다.

살면서 이렇게나 오랜시간 나에게 집중했던때가 있었던가 싶었다.


까미노의 아침은 언제나 긴 그림자와 함께였다.

갑자기 센치해져서 우울해지는 날은 그림자마저 우울해 보였다.




그냥 마셔도 될만큼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에 예쁜 집이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라스토케라는 마을이 생각났다.


포도밭 사이로 난 아스팔트길이 이어졌다.

포도송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막 자라고 있는 키작은 포도나무들 뿐이었는데,잎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밤나무 아래로는 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어 굵은것을 골라 몇개 주워 먹었더니 아주 고소했다.

노랗게 물든 나무들을 보며 순례길에도 가을이 내려앉고 있다는걸 실감했다.

듣자하니,몇일전엔 폰세바돈에 눈이 내렸다고도 했다.

갈리시아 지방을 지나며 눈길을 한번 걷고 싶다고 그토록 노래했는데,결국 눈은 못보고 비만 주구장창 맞았다는 슬픈 이야기~~ 



 




언덕길을 오르는 내내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미루나무처럼 아주 키가 큰 나무는 노랗게 물들었고,포도나무도 노란빛을 띄었다. 

일렬로 쭉 늘어진 포도밭이 정말 장관이었다.






포도밭 언덕엔 그림같이 예쁜 하얀집이 있었고,주변에 서있는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휴식공간으로 아주 좋아보였다.

저 푸른 초원위의 그림같은 집이 아니고,포도밭 위의 그림같은 집이었다.

너무 예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먼저 언덕에 올라선 용수가 엑스자를 그었다.

아직 목적지가 더 남았다는 신호였다.

아니나다를까 힘겹게 언덕을 올라서니 또다른 길이 꾸불꾸불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산아래로 오늘의 목적지인 비야프랑까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쨌든 목적지가 시야에만 들어오면 희망적이다.

 




비야프랑까에 온것을 환영합니다~~

언덕을 내려가며 마을로 진입했다.



담벼락엔 누군가 이런 글귀를 써놓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개조심하라는 경고도 아주 재밌는 그림과 함께 대문앞에 붙어 있었다.



용서의 문이 있는 산티아고 성당을 지나 계속하여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얼마안돼 비야프랑까 성이 나왔는데,거기서도 한참을 내려가야 중심가에 닿을 수 있었다.








드디어 마요르 광장에 도착했다.

무슨 행사를 하는지 목에 빨간 손수건을 두른 한무리의 사람들이 있었고,

레스토랑이나 bar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늘은 `스페인하숙`에 나왔던 그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2시에 오픈이라 차승원이 커피를 마셨던 그 bar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맥주 4잔에 각각 요리 하나씩을 주문했는데,언니가 주문한 피자가 일등을 먹었고,그 다음은 영훈이의 햄버거였다.

내가 시킨 샌드위치는 3등으로 간신히 순위안에 들었다.ㅎ

 


테레비서 봤던 그 대문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르막이 나왔고,왼쪽으로 꺾자마자 알베르게 입구가 나왔다.



차승원이 넘어져 와인을 깨먹었던 그 현관입구..


유해진이 농담 건내며 순례자들을 받던 데스크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언니로부터 숙소주인이 좀 까탈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조용히 앉아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근데 까탈스럽게 굴었던 이유가 있었다.

방송을 탄 이 후,한국인 순례자들이 이곳에 묵지도 않으면서 시도때도 없이 몰려와 사진만 찍고 간다고 했다.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너무 깨끗해서 깜짝 놀랐다.

깨끗한 시트 깔린 일곱개의 단층침대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는데,일회용시트를 그 위에 깔도록 했다.

배낭은 문옆으로 나란히 놓아두게 했고,수건은 문고리에 걸어두지 못하게 했다.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는거 같아 군말없이 순순히 따랐다.


샤워실은 몸뚱아리 하나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다하여 걱정했는데,괜한 염려였다.

그동안의 샤워실 크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맨 구석에 있는 샤워실은 문을 열면 저절로 가림막이 되어 창틈에 옷을 놓아 둘 수도 있었다. 

빨래는 먼지바람이 심해 빨랫줄에 널지 못하고 4유로나 주고 건조기를 돌렸는데,무슨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반쯤만 마른상태에서 나왔다.   


차승원이 요리했던 주방은 아쉽게도 쓰지 못했다.

토요일인데다 무슨 기념일이라 마을 슈퍼가 죄다 문을 닫아버려 시장을 볼 수 없었다.

작은 상점에서 다음날 먹을 빵이랑 음료를 겨우 살 수 있었다.

순례길에선 요일과 날짜를 잊고 지냈는데,휴일이면 상점이나 레스토랑이 문을 닫는곳이 많아 신경써야 했다.




한동안 못보았던 여언을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포옹까지 하며 인사했는데,그 후로 계속 못보다가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극적으로 또 만났다.

본인 사진을 보내달라며 이메일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 받아 집에와서 사진 몇장을 보냈더니,빨간 바지를 입고 요트를 타는 사진을 보내왔다.

본인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여행을 다니는게 취미라며 코펜하겐에 놀러오라고도 했다.

생각한대로 여언은 아주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는것 같았다.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하다 골목 깊숙이 있는 아주 작은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손님이 우리 둘에 다른 한명 뿐이었는데도 음식이 아주 늦게 나왔다.

시간이 넉넉하니 우리도 급할것이 없었지만,후딱 먹고 나가는 습관에 젖어 온터라 주방을 연신 쳐다보며 조바심을 냈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용서의 문`이 있는 산티아고 성당까지 올라왔다.

교황 갈리스토3세는 교서를 통해 피치못할 사정으로 순례를 마치지 못하는 순례자가 이 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에 도착한것과 같다고 인정했다고 한다.산티아고까지 가지 못해도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문이었다.









골목골목 쑤시고 다니는 재미에 발바닥이 아픈줄도 모르다 숙소로 들어가면 그제야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아팠는데,

그렇다고 황금같은 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해질녘 풍경은 볼때마다 마음을 사로잡았고,해지고 난 후의 코발트빛 하늘은 언제봐도 환상이었다.   








순례길에서 힘든구간으로 손꼽는 구간은 피레네산맥,용서의 언덕,철의 십자가,그리고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는 오세브레이로 구간이다.

내일은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힘든 구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