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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23일 : 엘아세보~폰페라다(16km)



제23일 : 엘아세보~폰페라다(16km),4시간


2019년 10월 11일


내 옆에 자리했던 한국인 노부부는 6시도 안되어 나가셨고,루이스 형제도 일찌감치 서둘러 알베르게를 나갔다.

나는 어제 쎄빠지게 걸어놓은 덕에 아주 여유만만이었는데,16km만 걸으면 폰페라다 도착이었다.

5유로를 주고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조식뷔페를 먹고 8시에 숙소를 나왔다.


알베르게를 나와 길을 건너니 바로 산길이 이어졌다.

채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랜턴을 켜지 않고 영훈이 뒤를 바짝 따랐다.

날이 흐렸는지 여명빛도 없고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우리나라의 산모습을 닮은 풍경을 보니,길마저 아주 익숙하여 걸음이 가벼웠다.

메세타 고원지대를 지나니 주변환경은 완전히 달랐는데,사방으로 높고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은 총 4개의 주를 거치는 800km에 달하는 길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나바라를 지나 리오하,까스띠야 데 레온,그리고 마지막으로 갈리시아를 거치는 대장정이었는데,이제 이틀 후면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갈리시아 지방은 대부분이 산악지대라 날씨가 무척 변덕스럽다고 한다.

기상예보로는 다음주 내내 비소식이 예보되어 있었다.

모르겠다..어떻게든 지나가겠지..오늘일이나 신경쓰자..

  


마치 영남알프스를 걷는듯 억새밭 분위기가 물씬 났다.

먼지가 푸석거리는것도 수풀에서 들척지근한 냄새가 나는것도 아주 똑같았다.



노란색 표시와 가리비 표시만 따라가면 되는 길, 화살표만 잘 찾아가면 길 잃을 염려도 헷갈릴 염려도 없었다.

길림길마다 골목마다 친절히 안내하고,그려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 도심에는 바닥 블럭에 가리비를 새겨놓기도 했다.

가끔 순례자들이 돌을 모아 헷갈리기 쉬운 숲길에 그려놓기도 했고,

도로변에는 `Camino de Santiago`라는 입간판을 세워놓았는데,길은 결국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

무탈히 그곳까지 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산길을 내려와 아스팔트길을 2킬로쯤 걷다 암브로스란 마을을 만났다.

초입에는 돌과 나무로 된 아주 오래된듯한 집이 있었고,그 옆으로는 화분으로 치장한 아주 예쁜 집이 있었다.

그림책에서나 볼 법한 그런 집이었는데,인적은 없었다.



작고 아담한 성당에 들어가 쎄요(도장)를 받았는데,동전이 하나도 없어 난감했다.

큰 성당이었다면 덜 미안했을텐데..

꼭 넣으라는 법은 없었지만,기부함에 다만 얼마라도 넣으면 기분이 남달랐고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성당을 들어갈땐 동전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겠다.








투박한 멋이 참 정겹고 아늑한 마을이었다.

특히 돌로 된 담벼락,그리고 아름답게 치장한 화분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차마 두고 가기 아까운 풍경들이라 보고 또 보기를 반복했다.    



다음 마을인 `몰리나세까`까지 가는 길은 아주 거칠었다.

너덜구간인데다 돌이 아주 미끄러워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깊은 숲속이라 공기는 더없이 상쾌했다.

빼곡하게 들어선 숲속에선 새들의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폭이 좁은 울퉁불퉁한 산길이 이어졌다.

가파르게 내려서는 길인데다 돌들은 날카롭게 뾰족뾰족해서 넘어지면 큰일이었다.

어제 같은 방에 묵었던 부부가 앞서가고 계셨는데,`악마의 길`을 걷고 있다고 표현하셨다.


발아래로 구불구불하게 난 도로는 흡사 한계령길 같았다.

차 한대가 아주 힘겹게 고갯길을 오르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설악의 가을이 절정일텐데...


아세보도 그렇더니,몰리나세까라는 마을의 지붕도 검은색 석조 기와로 이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세보 보다는 서너배는 커보였다.

지붕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참 정겨워 보여 어떤 마을일까 더 기대하며 언덕을 내려섰다.





성당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는 중세풍의 다리를 건넜다.

멋스러운 다리 위에서 한참을 놀았다.

오늘같이 여유로운 걸음을 한건 순례길 걸은 이래 처음이라 마을 구석구석 살펴보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용수와 영훈이도 여유롭게 사진놀이를 하고 있었다.

용수는 사진감각이 참 특이해서 무조건 다리만 길게 나오게 찍어주었다.

사진결과에 불만을 보일라치면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을 하고 있어 내가 모르는거라며 막 갖다붙이며 자평하기도 했다.







골목안 풍경이 특히 인상적인 마을이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예쁜 마을로 손꼽는 이유가 있었다.

아기자기한 집들이 돌로 된 담벼락으로 이어져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그 골목으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골목안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길 위에서의 인연 중에 가장 큰 선물은 이 두사람이었다.

나이 많은 아줌마 달고 다니기 귀찮을법도 했을텐데,기꺼이 친구되어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생각이 반듯하여 더 이뻤고,개성도 뚜렷하고 미래에 대한 비젼도 확고했다.

많은 시간 추억을 공유했던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 집에와서도 한동안 생각이 났다. 

  




아스팔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폰페라다를 향해 열심히 걸었다.

분명 노란 화살표를 확인했는데,이상하게도 앞뒤로 순례자가 한명도 안보였다.

길을 물을 사람도 없어 머뭇거리다 도로표지판에 씌여있는 폰페라다란 방향으로 계속하여 진행하며 화살표를 확인했다.

어느날은 노란화살표보다 순례자들의 뒷모습이 더 믿음이 가기도 했다.

멀쩡이 잘 가는데도 한동안 사람이 안보이면 조금 불안하여 걸음을 멈춰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의 뒷모습을 지표삼아 걷기도 했다.


폰페라다를 4킬로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길은 두갈래로 갈라졌다.

오른쪽길은 도로를 따르는 루트였고,왼쪽길은 흙길을 통해 폰페라다로 진입하는 루트였는데,왼쪽길을 택했다.

먼지 날리는 흙길을 땀좀 흘리며 올라가니,저멀리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전의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지붕이 죄다 검은색 석조로 이어져 있었다.





폰페라다 외곽의 아주 오래된 마을을 지나야 폰페라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SE VENDE`라는 간판이 많이 걸려있는걸로 보아 팔려고 내놓은 집이 많았고,빈집도 꽤 보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길을 따라 긴 오르막이 이어졌고,더위에 지칠 즈음 `산 니콜라스 데 플루에`라는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마을로 접어들자마자 바로 입구에 위치해 있어 찾기 쉬웠다.


화가아저씨는 벌써 도착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언니는 배낭만 있고 보이지 않았다.

체크인시간이 1시부터라  배낭을 줄세워놓고는 언니가 있는 근처 bar에 가서 요기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는 140명 넘게 수용하는 아주 큰 규모였다. 

8인실로 배정받았는데,침대간격이 다른곳에 비해 아주 넓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남녀공동이었는데,세면기와 남자변기를 마주보게 배치해놓아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주방은 아주 넓었는데,주방기기가 넉넉지않아 순서를 기다렸다가 써야했다.







폰페라다에서 꼭 보아야할것은 템플기사단의 성이었다.

템플 기사단은 중세 십자군전쟁때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사단이었는데,그들이 쓰던 요새였다. 

성의 하일라이트는 도개교와 해자를 수반한 입구였고,그곳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기위해 시내 중심가로 들어갔다.

문을 연 bar는 많았지만,시에스타 시간이라 음료만 팔고 있어 어슬렁거리며 골목을 한바퀴 돌았다.







일일 일맥주는 이젠 일상이 되었다.

누군가 순례길이 아니라 술례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맥주맛이 부드러워 술술 잘들어갔다.

작은 잔 하나에 오믈렛이 들어있는 보까디요를 시켰는데,보까디요가 너무 커서 간신히 다 먹었다.

하나를 시켜 언니랑 나눠 먹어도 될뻔했다.  


바실리까 성당





저녁은 모르치야라는 음식을 먹었는데,영락없이 우리나라의 순대와 똑같았다.

고기를 구워 야채와 함께 만끽했다.

레스토랑에 가서 순례자메뉴나 메누델디아를 먹거나,아님 다른 요리를 시켜 먹어도 되지만,

조금의 수고만 들이면 훨씬 더 만끽할 수 있는 밥상을 차려낼 수 있었다.

10유로만으로도 네명이서 충분하여 비용절감에도 아주 도움이 되었다.

    


햇볕이 한풀 꺾인 시간에 성곽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해다시 중심가로 나왔다.

알베르게가 외곽에 있어 시내까지는 20여분정도 걸렸는데,횡단보도를 건널땐 차들을 조심해야만 했다.

신시가지를 오가는 차들이 정말 많았고,다음날이 주말이라 캠핑카들도 줄지어 들어왔다.

알베르게 바로 옆이 캠핑카존이었다.  


가끔 알베르게 표시와 까미노 표시가 똑같아 헷갈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표기하면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빛 스며든 성은 정말 멋있었다.

천년의 세월동안 저 모습으로 있었다고 생각하니 순간 소름이 돋았다.




도로 건너편에서 보니 그제야 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시가지는 무척 크고 복잡해보였다.

이곳과는 아주 동떨어진 다른 세상같았다.

순례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고 성당과 성당을 잇고 있었는데,대부분 지나는 마을은 구시가지였다.

  






바실리까 성당으로 들어가는 벽면엔 템플기사단의 로고가 붙어있었다.

마침 미사시간이 되어 들어갔는데,다른 성당의 분위기와 아주 많이 달라서 슬그머니 나왔다.

산타 마리아~산타 마리아~하며 계속하여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며 매직아워가 찾아왔다.

하늘은 청색으로 바뀌었다가 얼마안가 완전히 어둠이 찾아왔다. 

 노란색 불빛이 고성을 휘감으며 성곽은 더욱 고풍스럽게 바뀌었고,성문을 통해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흰옷을 입은 기사단이 금방이라도 나올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