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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26일 : 오 세브레이로~뜨리아까스뗄라(21.1km)



제26일 : 오 세브레이로~뜨리아까스뗄라(21.1km),4시간 30분


2019년 10월 14일


반은 자고,반은 깨어서 긴긴 밤을 보냈다.그리고 밤새 내리던 비는 새벽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설마설마 했는데,역시나!

왔다리 갔다리 하며 창문만 내다보다 여덟시가 다 되어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섰다.

걷는 거리가 짧고 큰 고도차도 없는 구간이었지만,날씨 때문에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 갈리시아 지방은 맑은 날이 적고 비오는 날이 많다고 한다.


숙소를 나오자 까미노 표시는 두개로 나뉘어져 있었는데,산자락으로 에둘러가는 윗길을 택했다.

배낭커버를 씌우고,우의를 입고,스패츠를 하고 오르막을 걷자니,땀이 나서 여간 성가신게 아니었다.

다행히도 얼마안가 비가 잦아들어 우의를 벗고 카메라를 꺼냈는데,안개로 휩싸인 산아래 마을이 예뻐 도저히 눈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바로 아래에 있는 도로를 걷고 있는 순례자도 있었는데,갓길이 너무 좁아 좀 위험해 보였다.




산길을 빠져나와 도로에 서니,잠깐 걷힐듯 했던 안개는 또다시 몰려왔는데,바람까지 불어 으슬으슬 추웠다. 

비가 안오는것만해도 어디냐~

맑고 좋은 날만 걸으면 오죽 좋을까마는 까미노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네 인생이 늘 `맑음`이 아니듯 순례길도 마찬가지였다.

흐린날도 있었고,쨍하고 해뜬날도 있었고,비오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냥 길만 걸으면 됐다.    



그러고 보면 다 나쁜것은 아니었다.

촉촉히 젖은 숲길을 걷는건 참 좋았다.

숲에서 아주 좋은 향기가 뿜어져 나왔고,가끔 새들도 지저귀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안개속으로 순례자상이 나타났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표현한듯 세찬 바람을 맞고 있는 모습이었는데,나처럼 모자를 부여잡고 옷자락은 펄럭거리고 있었다.


한치앞도 안보이더니,어느 순간 짙은 안개가 싹 사라지더니만 멋진 풍경이 눈 앞으로 펼쳐졌다.

바람은 시시각각으로 풍경을 변화시켰는데,안개 걷힌 산은 참 유순해 보였다.

몽글몽글한 모양의 나무들도 아주 많았다.



스페인식 숫자표기는 참 특이했다.

천단위로 점을 찍고,소숫점 이하로는 콤마를 찍었는데,우리나라와 반대였다.

그러니까 km155,411은 155km 411cm로 보면 되었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접어들면서는 표지석이 정말 자주 나타났고,거리 표시도 아주 구체적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돌담길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길 끝으로 마을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길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눈앞의 목가적인 풍경을 보며 걷느라 힘든줄도 몰랐다.

이런 길은 하루종일 걸어도 힘이 솟아날것 같았다.





발아래 풍경은 그림이 따로 없었다.

촉촉하여 초록색은 더욱 짙어 보여 아주 멋진 전원풍경이 펼쳐졌다. 





길은 인적하나 없는 농가마을로 이어졌다.

담벼락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마을을 관통했는데,갈리시아 지방의 날씨를 말해주듯 담벼락은 이끼로 무성했다.





도로와 나란히 걷는 길이 한동안 이어졌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도,성가시게 하는 비도 내리지 않아 참 좋았는데,

부디 목적지에 도착할때까지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이기만를 기도하며 걸었다.






지평선 너머로 펼쳐지는 밀밭,거친 돌길,포도밭이 그려낸 장관,고즈넉한 올리브 숲길,높은 산맥까지 그동안 순례길은 참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지만,오늘의 모습은 정말이지 걸음을 멈추고 싶을만큼 평화롭고 고즈넉했다.

돌담으로 경계를 그어놓은 경작지는 대부분이 산비탈이었는데,다 목장으로 쓰지는 않을텐데 대체 무슨 작물들을 키우는지 궁금했다. 

 




도로와 나란히 하여 걷다가 다시 숲길로 들어서고 다시 도로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숲길은 아주 촉촉하고 싱그러워 기분좋게 걸을 수 있었고,몸에 배어 익숙한 길인듯 걸음도 가벼웠다.


세명이서 나란히 가던 외국인 순례자 중 한명이 카메라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서보란다.

걷는 속도가 있어 리듬을 깨는건 쉽지 않은 일인데,이렇게 온정을 베푸는 순례자들이 까미노엔 참 많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으면 `부엔 까미노 `인사 대신 `아 유 오케이?`하고 걱정해주었고,

초콜렛을 건네며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인적도 마주 할 일 없는 아주 작은 마을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섰다.

돌로 쌓아올린 오래된 집들과 빙 둘러쳐진 돌담길이 무척 정감이 갔다.

 



헐떡대며 언덕배기에 올라서니 방금 지나온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고,

마을주인인양 개 한마리가 나처럼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목줄 풀린 개를 만나는건 예사였다. 

대체적으로 덩치도 아주 컸는데,처음엔 저만치에 보이기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묻어서 가곤 했다.

원래 개를 싫어하여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이또한 적응이 되어 경계심이 사라졌다.

대부분 온순하여 내가 지나가면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뿐더러 낯선 사람 경계하며 짖는 법도 없었다.

장훈이는 안개낀 새벽길에서 덩치 큰 개를 만났다가 혼비백산한 적이 있다 하던데,다행히 나는 한번도 그런 상황에 놓여진 적은 없었다.   


도로 건너에 있는 bar가 나타났지만 그냥 통과했다.

날씨가 조금씩 심상찮아지며 하늘은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얼른 집어넣고 우의를 뒤집어 썼다.

뒤에 오던 순례자가 배낭이 잘 덮여지도록 도와줬다.

이곳의 비는 한두방울 내리기 시작하면 미처 손쓸새 없이 쏟아졌기 때문에 미리 대비를 해야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내 비는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바람까지 동반했다.

갑자기 돌변한 날씨는 최악이었다.

우의는 펄럭거리기 시작했고,바지는 축축해지고,신발까지 젖어버렸다.

스패츠를 착용했지만,많은 비를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펄럭거리는 우의를 부여잡고,간간히 물까지 짜내며 씩씩대며 걷고 있는데,merc가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우의는 입지않고 고어텍스 점퍼에 우의팬츠를 입고 있었다. 

`괜찮아,미쉘?

아니,안괜찮아..

그래도 풍경은 멋있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merc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이 요란한 날씨에 풍경이 눈에 들어오냐구 이 사람아~~~


해발 1,200m에서 600m까지 고도를 낮추는 구간이었다.

흙길은 질퍽하여 조심스러웠고,돌길도 미끄러워 더욱 신경쓰며 빗속을 걸었다.

bar에 들어가 좀 쉬었다 가고 싶었지만,몸이 흠뻑 젖어 있으니 실내로 들어가기도 여의치 않아 한걸음이라도 더 걸어 얼른 숙소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라 초코바로 요기하며 길을 이어갔다. 

비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고,줄기차게 퍼부었다.

목적지를 5킬로정도 남겨둔 비두에두란 마을을 지나는데,장훈이가 처마 밑에서 세상 불쌍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bar가 닫혀있어 비를 피하며 쉬는 중이라 그랬다.

꼴이 우습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완전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 제기능을 못하는 우의가 몸에 착 달라붙는 바람에 실루엣이 제대로 살았다. 

늘 같은 속도로 침착하게 걷던 merc도 날씨 때문에 이성을 잃었는지 엉뚱한 곳에서 숙소를 찾고 있었다.

종이로 된 지도는 너덜너덜하여 젖어 있었고,잘 보이지도 않았다.

4킬로를 더 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밤나무 드리워진 길을 따라 뜨리아까스뗄라로 진입했다.

진입로는 아주 좁았고 소와 말의 배설물이 있는 땅바닥으로는 밤이며 호두가 천지삐까리로 널려 있었다.

발에 밟혀 넘어질까 살살 피해야 할 정도였다.






드디어 알베르게(아 오르따 데 아벨)에 도착했고,문을 열자마자 벽난로에서 나오는 온기가 따스하게 번졌다.

8유로였는데,아홉명이 한방을 썼다.

온수물이 정말 따뜻하여 차가운 몸을 데우는데는 최고였는데,씻고나니 완전 살것같았다.

  

벽난로 옆으로 우의를 걸어 말릴 수 있게 했고.

불 앞으로는 등산화를 놓아둘 수 있게 했는데,여주인은 신발이 손쉽게 마르도록 신문지까지 건네줬다.

4유로를 주고 빨랫감을 주면 주인이 다 알아서 뽀송뽀송하게 말려 바구니에 담아다 줬고,

심지어 차곡차곡 개다 주었다.   

 


레온에서 사두었던 짜파게티를 끓여 장훈이랑 셋이 점심을 먹었다.

비가 오니 어디 나갈만한 곳도 마땅찮았고,근처 슈퍼도 시에스타에 걸려 닫혀있었다. 

마침 달걀 세개가 있어 고명으로 얹었고,

마침 레드와인도 있어 추위로 떨었던 몸을 따스하게 데울 수 있었다.






지천으로 깔려있는 밤들이 아까워 깜장봉다리를 들고 좀 줍기로했다.

크고 튼실한 것들만 골라 조금만 줍는다는게,어느절에 봉다리가 가득찼다.

그만 줍자,그만 줍자 하면서도 자꾸만 눈에 밟혀 한알 두알 줍고 또 줍고 하다보니 제법 많았다.

갓 주워와 삶았으니 맛이 오죽할까..

도란도란 앉아 먹으며 각자의 시골추억에 잠겼다.




비가 오다말다 오다말다를 반복했다.

햇살이 번지다가도 금새 비를 뿌려댔는데, 내리기 시작하면 피할 새 없이 쏟아져 우산을 꼭 챙겨야했다.

마을이 작아 한바퀴 도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는데,집집마다 모락모락 연기 피어오르는 굴뚝풍경이 참 정겨웠다.

장작을 쌓아놓은 풍경도 아주 정감이 넘쳐 시골정취를 물씬 풍겼다.









산등성으로 구름이 걷히니 그림같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붕으로 난 굴뚝은 암만봐도 마음 따스해지는 풍경이었다.

어디선가 옥수수 감자 삶는 냄새가 나는듯 했다.





저녁은 세명의 호벤들이 뚝딱뚝딱 하더니,한상 차려냈다.

마늘을 까고,양파를 까서 올리브유에 아주 제대로 볶았다.

펜네를 이용한 숏파스타였는데,올리브와 바게뜨도 곁들였다.

이곳에 와서 누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그것도 이십대 청년들한테.. 


한차례 무시무시한 크기의 우박이 내리더니,저녁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베드버그는 순례길에서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기피대상이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그 악명은 이랬다.

모기처럼 한곳을 무는게 아니라 혈관을 따라 수십 수백방을 문다.

물리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게 아니고 얼마간의 잠복기간이 있어 언제 어디서 물렸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한번 물리면 미치도록 가렵고 수포가 생기는데,흔적이 남기 때문에 절대 긁으면 안된다.

물고 사라지는게 아니라 내 짐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또 다시 공격한다는게 문제다.

그렇다면 물리지 않는 방법은??

복볼복이니 각별히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나무로 된 침대는 더욱 신경쓰고,침낭은 자주 털어 햇볕에 말리고,기피제를 뿌리고..

그런데,시간이 흐르다보면 다 무뎌지고 귀찮아서 신경을 안쓰게 된다.


장훈이 팔뚝에 난 흔적은 영락없는 베드버그 흔적이었다.

그동안 영훈이가 유독 잘 물려 물린 자국을 봤는데,완전 똑같았다.

가까이 오지 말라며 손사레치며 놀려댔고,그것도 모르고 옷가지를 함께 넣어 건조기를 돌렸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글쎄 내 등짝에도 비슷한 흔적이 생겼다.

오 마이 갓~~!

그동안 한 행실(?)이 있으니 동정도 못받고 오히려 웃음꺼리만 되는 신세라니~~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바르는 연고와 먹는 알약을 15유로나 주고 사서 급처방을 했는데,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디 밤새 별탈이 없어야 할텐데..

하필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불청객까지 와서리,이래 저래 심란한 밤이었다.

 

(그 날 이 후, 나는 일주일동안 저녁마다 알약 한알씩을 꼬박꼬박 챙겨먹고,아침저녁으로 잊지않고 연고를 열심히 발랐다

연고를 바를땐 좀 따꼼거렸지만,가렵거나 아프지 않아 약효과가 아주 좋다고 생각했는데,시간이 흐르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수포는 점점 부위가 넓어지며 커져갔다.

그 때까지도 가렵지 않으면 됐다고 안심하며 베드버그에 물린 줄만 알고 있었다.미련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