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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29일 : 뽀로또마린~빨라스 데 레이(25km)


제29일 : 뽀로또마린~빨라스 데 레이(25km),6시간 20분


2019년 10월 17일


6시 45분 출발..

잠시 비가 멈추고 새벽하늘엔 별이 가득하더니 마을을 벗어나자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미처 스패츠와 우의를 챙겨입지도 못했는데,제법 많은 비가 쏟아졌다.

어두운 새벽길,랜턴켜고 물웅덩이 피해가며 질퍽한 흙길을 걷고 있자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빗속의 행군을 하고 있는건지..


터벅터벅 8킬로이상을 걸어 곤사르라는 마을에 도착해 bar에 들어갔다.

우의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여러번 털어 외부에 있는 의자에 걸어놓고,배낭은 들고 들어가 입구에 두었다.

요 며칠 따뜻하게 구워주는 또스따다에 필꽂혀 오늘도 커피와 함께 그걸 주문했다.

역시나 딸기쨈 보다는 버터를 발라먹는게 훨씬 고소하고 맛있다.

다만 버터가 딱딱하여 잘 발라지지 않는다는게 흠이었다.

요플레까지 하나 든든하게 먹고 bar를 나오니,날은 완전히 밝았고 비도 그쳤다.




도로와 나란히 걷다가 숲길로 들어가고,다시 마을을 관통하기를 반복했다.

숲이 워낙 울창해서 숲으로 들어서면 조각하늘조차 보이지 않았고,컴컴했다. 




수국이 가을에 피는 꽃인가?

탐스런 꽃송이의 수국이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보통은 다 닳아 못신게 된 헌 신발을 올려놓는데,누군가 새신발을 까미노 비석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이상하다.500m전에 봤던 신발이 이곳에도 있다.

역시나 밑창이 깨끗한 새신발이다.

누가 무슨 의미로 놓아 두었을까?

신경쓰지 말자.내 갈길이나 가자.다 이유가 있겠지뭐..





어디 하나 거칠것 없는 언덕길을 오르는동안 하늘이 열리며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아,얼마만에 쐬는 따스한 햇살인지.. 

햇볕속에서 메세타 구간을 걸을땐 햇볕의 고마움을 몰랐었다.

먼지가 풀풀 날릴때면 비라도 한차례 쏟아져 촉촉해지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 며칠 매일같이 비와 동거를 하니 그 따가운 햇살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해가 나오고 하늘까지 파래지니 기분까지 업되어 걸음이 가벼웠다.

나의 긴 그림자도 참 오랜만에 나타났다.




대지위로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수풀에 맺혀있던 물방울들은 영롱하게 빛났고,유리처럼 반짝였다.





소박한 마을길은 언제 걸어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다.

앞으로 아주 유명한 관광지를 갈 기회는 있겠지만,스페인의 아주 깊은 속살을 볼 기회는 많지 않을꺼라는 생각이 들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비록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인사 나누는것도 아주 소중한 순간이었다.



지나다니는 차량들을 신경쓰며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갔다.

마을과 마을을 구분하는 경계점인지,언덕 꼭대기에 다른곳과는 다르게 아주 큰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산티아고까지 78.1km지점이었다.

남은거리가 두자릿수에 진입한 이 후부터는 이상하게도 숫자를 아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아쉬움보다는 어서 빨리 줄어들었음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젠 여한없이 걸었다.

 




다음 마을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은 내리막이었는데,길 양쪽으로 숲이 아주 무성했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비슷해서 그런지 많이 봐왔던 나무들이 많았고,숲의 모양도 아주 비슷했다.




그동안은 밀밭에 포도밭 그리고 옥수수밭이 끝이 없더니,갈리시아 지방은 대부분이 다 목장이었다.

목축업이 가장 큰 생계수단으로 보였는데,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에서 소와 말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갈리시아 지방의 아주 흔한 풍경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소똥냄새 또한 아주 흔한 냄새였다.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상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 나도 한장 찍었다.

언제부턴가 이런 모양의 조형물이 자주 눈에 띄었다.

주로 마을 외곽에 세워져 있었는데,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게 아닌가 싶었다.


에스자로 휘어진 아름다운 길을 빠져나와 다시 마을로 들어섰다.

도로 옆으로 까미노가 나 있지만,아스팔트길을 따랐다.발바닥 마찰을 줄이려면 울퉁불퉁한 흙길은 피하는게 좋았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는 내 발님...

두번째 발톱이 새까맣게 멍이 들어 곧 빠질거 같다.






밭으로 엄청나게 큰 호박들이 덩굴째 나뒹굴더니만,창가에도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겉이 반질반질한 우리나라 호박과는 달리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정말 호박같이 못생겼다.

수박처럼 생긴 줄무늬 호박도 있었는데,보는 순간 속담 하나가 생각났다.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ㅎ






항상 이 길이 맞다고 알려주는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

안보이면 불안하고 눈에 띄면 너무 반가웠다.

`그래,잘하고 있어`하고 격려해 주는 무언의 시그널이었다.

선택의 기로에 있을때,누군가 이렇게 방향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마을을 벗어나 도로와 만나는 길은 아주 좁고 미끄러워 좀 위험했다.

돌담을 짚어가며 어기적대며 내려섰다.

비는 오다말다 오다말다를 반복했고,그럴때마다 우의를 입고 벗는게 정말 성가셨다.





기분이 좋을때 나오는 언니와 나의 재밌는 포즈.. 

우리만의 시그니처 포즈를 한번 하고나면 정말 배꼽잡고 웃게 되는 희한한 마력이 있었는데,

언젠가 여언이 우리의 포즈를 따라하는 바람에 한참을 웃었다.




오늘도 바닥으로 나뒹구는 밤이 정말 많았다.

몇개 주워 주머니에 넣고 싶지만,그것도 짐이었다.하나 주워 까먹는것으로 족했다. 



 

 

잊을만하면 후두둑 비가 내렸고, 햇살이 나오는가 하면 또 이슬비가 내렸다.

변덕스럽기 그지없다고 익히 들어 각오를 했지만,끝까지 적응 안되는 날씨였다.

그러다보니 몸은 항상 을씨년스러웠고,감기 기운이 계속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빨라스 데 레이를 3킬로 정도 앞두고 bar에 들어갔다. 

마을 주민 두분이 bar에 들어가면서 쉬었다 가라 손짓했는데,우리가 들어가니 주인보다 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즉석에서 짜낸 순도 100% 오렌지쥬스에 오믈렛으로 요기했다.


bar를 나오니 또 다시 비가 쏟아졌다.

이번엔 양이 제법 많았다.

우의를 벗었다 입었다,도대체 오늘 하루만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무슨 똥개훈련시키는것도 아니고,참..





오늘 숙소는 `부엔 까미노`,외우기도 쉬웠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DIA에 들러 치킨이랑 과일과 빵,그리고 간식을 준비했다.

1층은 레스토랑이고,2,3층은 알베르게였는데,나는 2층에 있는 침대를 배정받았다. 

12명이 한방에 묵는 방이었는데,다 차지는 않았다.

일인당 10유로..갈리시아 지방은 알베르게 가격이 대체적으로 비쌌다.

기본이 10유로이상 이었다.

샤워실은 복도쪽으로 화장실과 함께 딸려 있었는데,샤워 중간에 불이 꺼져 암흑이 되는 바람에 식겁했다.

센서등이라 어느정도 시간이 되면 저절로 꺼지는 원리였는데 그걸 몰랐다.

그러니까 후딱 씻고 나오라는 뜻이었는데,나는 빨래까지 하고 나오느라 연신 들락거리며 센서등을 켰다. 

3층에 있는 주방을 가려면 침대 두개를 지나야하는 구조라 드나들기가 좀 불편했다.

다락방처럼 마치 둘만 쓰는 사적인 공간으로 구분했는데,몇번 마주쳤던 대만인 순례자 두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중에 저녁을 먹으러 올라갔을땐 남자는 열심히 칼질을하며 요리중이었고,

여자는 그 옆에서 음악을 들으며 놀기만 했다.

대만은 남자들이 요리를 많이 한다더니 과연 그런가보다.  

 



히터를 틀어 주긴 했어도 방은 너무 을씨년스러웠다.

건조기를 돌리는 동안 1층으로 내려가 차를 한잔 마시는데,몸의 온도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침낭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한참을 누워있었는데도 여전히 몸은 차갑고 추웠다.

등짝으로 난 수포는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더 통통하게 부어 올랐다. 

걸을땐 괜찮은데,꼭 숙소에 들어와 쉴때면 몸이 으슬으슬 추워 견딜 수가 없었는데,

베드버그에 물려서 그러려니,추워서 그러려니,이렇게만 생각했다.  

이제 딱 3일 남았다.3일만 참자..   

 




빨라스 데 레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현대식 건물이 참 많았다.

성의 없게 한바퀴 돌고나서 약국에 들러 먹는 알약을 더 사고,슈퍼에 들러 떠먹는 초콜렛 두개를 사서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컨디션은 안좋은데,신기하게도 식욕은 폭발하여 먹고 돌아서면 자꾸 뭔가가 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