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21년 3월 21일
산행지 : 명지산 명지3봉
산행코스 : 상판리-아재비고개-명지3봉-상판리
산행이야기:변산바람꽃 보러 가평 가는 길,비가 오는가 싶더니 해가 반짝 나고 또 비가 내리고 해가 나기를 반복한다.참 변덕스런 봄날씨다.
가평을 지나 상판리로 진입할 즈음,산꼭대기 올려다보니 봉우리가 새하얗다.
헛것을 봤다며 이 봄에 무슨 상고대냐며 타박을 주는데,암만 눈씻고 보고 또 봐도 내말이 맞다.
기네 아니네 말씨름하며 들머리에 도착하고나서야 몽몽님이 꼬리를 싹 내린다.
계곡길따라 얼마간 오르니 널찍했던 등로는 급격하게 좁아지며 거칠어진다.
게다가 경사가 꽤 있는데다 얼었던 땅이 녹아 아주 질척거려 미끄럽기 짝이 없다.
이 와중에 하늘에선 뭔가 날리는데,비인지 눈인지 우박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고..바람은 세차게 불어댄다.
오늘 꽃나들이는 공쳤구나~~
아재비고개에 올라서니 예상대로 꽃들이 완전 대군락을 이루고 있는데,물기를 머금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몇해전부터 벼르고 별러 때맞춰 왔는데,날씨가 심통을 부리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잘됐다~
명지3봉의 새하얀 봉우리를 본 이상,도저히 안가고는 못배긴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바람꽃은 안중에도 없고 봄날의 설산을 오를 생각뿐이었다.
꽃구경 뒤로하고 계획에도 없었던 명지3봉을 헥헥대며 기어오르는데,눈앞으로 펼쳐지는 새하얀 풍경이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춘삼월에 상고대 풍경이라니...
꽃구경 왔다가 눈꽃구경하게 생겼다.
이게 머선 129...
질퍽한 길 미끄러지지 않기위해 힘을 주어 한걸음씩 걷다보니 뒤로 연인산이 빤히 보이고,
계절을 잊을만큼 풍경은 점점 황홀해진다.
윙~윙~강풍은 불어대지,우수수 얼음조각은 떨어지지,손끝이 다 얼얼하다.
아재비고개에서 불과 1.5km밖에 안되는 거리라 만만하게 보고 왔는데,급경사라 무척 힘들다.
길이 미끄러워 발힘이 여간 들어가는게 아니어서 걸음은 더디기만하다.
춘삼월에 겨울풍경 보겠다고 참..사서 고생이다.
허나 이 계절에 돈주고도 못 볼 설경을 만끽하고 있으니 기꺼이 감수해야지..
파란하늘 기대하면 욕심이겠지..
아니 바람만이라도 좀 잠잠해지기를~~
시야가 탁 트이자,와아~~
나뭇가지에 얼어붙었던 서리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니 마치 눈이 오는것 같다.
어머,이게 왠일이래? 대체 이게 뭔 조화냐구?
정말이지 자연의 힘은 어디까지인지 예측할 수 없다.
온도와 습도,그리고 바람의 세기,이 세가지 기상조건이 딱 들어맞아야 볼 수 있는 풍경을 이 계절에 보다니..
점점 시야가 넓어지며 주변의 산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악산,청계산,운악산 등등..
갑자기 한북정맥 걷던 그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요 며칠 날이 포근하여 가볍게 봄바지 입고 올까 하다가 겨울바지에 티셔츠 그대로 입고 왔는데..탁월했다.
장갑은 좀 더 두꺼운걸로 챙겼어야 했는데..
자꾸만 연인산 능선에 눈길이 간다.
저길 갔어야 했나?
이 넘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넘치도록 수중에 쥐고 있는데도 또 다른걸 탐내고 있으니..
특히 산욕심은 유별나다.
뭔가 보이는걸 보니 명지3봉이 머지 않았다.
바람이 세차지만 차마 조망터를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고 또다시 바위에 올라서며 와아~대박~
화려한 눈꽃 너머로 그려지는 산마루금이 죽음이다.
워낙 인적 드문 산이라 이런 곳에선 오히려 마주오는 산객이 반갑다.
타이머 맞춰놓고 애쓰는 모습을 보더니 찍어준다길래...
드디어 명지3봉이다.
이렇게 올라올 줄 알았다면 애초에 귀목고개로 올라오는건데..
마음은 여기서 쭉~명지1봉까지 가고 싶지만,시간이 너무 늦었다.
기상청날씨에 오후부터 해그림이 보이길래 10시 넘어 느지막이 집에서 나왔더니..
우거진 상고대 숲을 지나 전망바위로 올라선다.
우와~~
그저 감탄사만 나오는 풍경이다.
산사면으로 새하얗게 핀 눈꽃들이 마치 벚꽃 핀 풍경같다.
발아래로 연인산과 명지산이 에워싼 마을,백둔리가 보인다.
백둔리에서 소망능선 타고 연인산으로,거기서 이곳 명지산 올라 익근리까지 걸었던 그 해 5월이 생각난다.
하루종일 땀흘리고 하산 후 마셨던 잣막걸리 맛을 어찌 잊으랴~~
따로 세워진 정상석이 없다보니 `명지3봉`이라 쓰여진 돌덩이가 여럿 있다.
그 중 가장 글씨가 가장 예쁘길래..
나도 `명지3봉 산여인` 이렇게 써놓을까 하다가...
3시가 가까워오니 요기를 좀 하긴 해야겠는데..
바위에 앉아 배낭을 풀다말고 그냥 내려선다.
바람불고 기온이 차서 도저히 안되겠다.
요즘같이 어수선한 시국엔 감기라도 걸리면 골치 아프다.
3봉을 바로 내려 서지 못하고 조금만 더,조금만 더~하며 2봉으로 몇걸음 더 가다가 되돌아 와서 나무계단을 내려선다.
올라갈때보다 눈꽃은 많이 떨어졌지만,주변의 산군들은 점점 선명해진다.
햇살도 조금씩 비집고 나오면서 파란하늘 간간히 보이기 시작한다.
연인산 능선도 그새 많이 녹아 거뭇거뭇하다.
바람 없는 움푹한 곳에 자리잡고 늦은 점심을 먹는데,입이 얼었는지 조금 얼얼하다.
하필 삼각김밥에 차가운 과일,그리고 냉커피뿐이다.
이렇게 한치 앞을 못본다니까..
그렇게 산을 다녔어도 아직 산을 알기엔 멀고도 멀었다는 증거다.
오늘같은 반전의 날씨를 만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오를땐 하세월이더니,내려올땐 금방이다.
다시 아재비고개에 도착하니,변산바람꽃 화사하게 피어 반기는데,바람이 너무 불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계획에도 없던 산행하느라 시간이 많이 늦었고,점점 기온도 쌀쌀해진다.
왠만하면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몽몽님이 오죽하면 그만 내려가자 채근하여 아쉽지만 카메라를 집어넣는다.
부지런히 걸어 마지막 계곡을 건너며 흙범벅이 된 등산화와 바짓가랑이 깨끗이 씻고 잣나무숲길 기분좋게 내려선다.
꽃구경 갔다가 눈꽃구경 실컷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