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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

일본 북알프스 (2)


일본 북알프스 (2)


자는둥 마는둥 깊은 잠을 못자고 뒤척거리다 날이 샜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2인용 킬로텐트를 가져갔더니,둘이 눕기엔 좀 불편했고 침낭마저 축축해 몸이 영 개운치 않았다.

바람이 없고 날이 훈훈해 큰 추위없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던건 정말 다행이었다.

기후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북알프스 날씨인걸 감안하면 완전 천국에서의 날씨나 다름없었다.



텐트밖으로 나오니,정상 너머로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여유있게 바라보고 있을 수 없어 일행들을 깨워 5시부터 배식되는 아침식사를 하러 산장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간결하고 깔끔한 아침식사였지만,반찬이 죄다 입에 안맞았다.

여전히 입안도 깔깔해 파래김넣고 고추장에 싹싹 비벼 미소시루와 함께 입에 떠넣었더니 좀 먹을만했다.

오늘 일정을 생각해서 억지로라도 먹어야해서 밥한그릇을 다 먹어치웠다. 




우리의 길은 정해져 있었다.

서로 이야기는 안했지만,자연스럽게 호다카다케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하룻밤 자고나니,조금 몸이 회복되었고 고산적응도 어느정도 되어갔다.

젖은 텐트를 채 말릴새도 없이 배낭을 꾸려 6시쯤 되어 미나미다케를 향해 출발했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야리가다케 정상...

신기하게도 걷다보니,몸은 조금씩 에너지 충전이 되는 듯했다.

차원다른 아침공기도 좋을뿐더러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산풍경에 금새 매료되었다.

 


굵직굵직한 산줄기 사이사이로 운해는 계속 머물었고,어제에 이어 날씨는 너무 화창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어쩌다 한두명씩 마주오는 일본인을 만나는거 빼고는 산길은 거의 우리 다섯명뿐...




미나미산장까지의 길은 그나마 순탄하고 편안한 능선길이었다.

하지만,위험구간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려면 걸음을 빨리해야만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예쁜 야생화는 그저 눈으로만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하나 뒤처짐없이 다들 잘 걸었다.

다들 나 때문에 피해주면 안된다는 신념이 너무나도 강했다.

특히,언니는 아침밥을 거의 먹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힘든 기색없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잘 걸어냈다. 






저만치 보이는 미나미다케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빤히 보여도 기본 한시간이었으니...

눈앞에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없었더라면 힘들었을 길..

걷는만큼 땀흘린만큼 고스란히 멋진풍경이 우리앞에 척척 나타났다.

언제 또 오랴~싶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광활한 꽃밭 너머로 가야할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앞으로 다가올 능선길이 점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남들도 다 걸었는데 내가 못하랴~하는 쓸데없는 자만심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려 애썼다.






미나미다케산장에 도착하니,먼저 도착하신 두 분이 따뜻한 커피를 내어주셨다.

콜라 세병을 사서 나눠 먹고,물도 충분히 보충했다.

산장을 나서는 우리들을 위해 산장주인이 화이팅을 외쳐주셨다.

이제..공포의 능선길 시작...




흰색 동그라미 그려진 길만 따르면 길 잃을 염려는 없는 길이었다.

하지만,길은 거칠고 위험하기 이를데 없었다.

안개라도 끼거나 비가 왔다면 정말이지 상상하기조차 싫을정도로 위험천만한 여정이었을 길이었다.





배낭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인다고는 했지만,15킬로 가까이 되는 무게는 거친 길 위에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선답자의 조언대로 더 줄였어야 했다.


점점 거칠어지는 바윗길...

스틱이 필요없게 되면서 두 손 두 발을 이용해 바윗길을 통과했다.

거의 직벽으로 된 길을 쇠줄과 쇠사다리를 잡고 오르내릴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인건,바위 틈마다 손잡이 삼을만한 곳이 있었다는것..



고도의 긴장속에 걸어야 하는 구간인데,

어쩌자고 이렇게 풍경이 지랄맞게 멋진건지...

얼마안가 카메라마저 배낭안에 처넣어야했다.

이 후,발 한짝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떨어지로 추락할 구간을 엄마 아부지 찾아가며 겨우 통과했다.




길은 점점 사나워졌고,우리가 가야할 봉우리 위로 조금씩 안개도 몰려오기 시작했다.

몇걸음 못걷고 쉬다 걷다를 반복하다보니,거리는 쉽게 줄지 않았고,

하얗게 몰려오는 안개가 비구름이 아닐까 걱정했다.




고산화원에 핀 야생화를 차마 눈으로만 보고 갈 수 없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지점에 서서 가끔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설악에서 눈부릅뜨고 찾아냈던 귀한 노랑만병초는 군락을 이루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핑계삼아 무거운 배낭도 내려놓고 쉬었다.


점점 지쳐갔다.

과연 오늘안으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배낭 대신 짊어 줄 포터라도 구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어차피 내가 짊어지고 내 힘으로 걸어가야 할 길...






몸이 션찮은 몽몽님과 언니가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할때마다,너나 잘하라는 답이 날라왔다.ㅎ





사지를 이용해 통과해야 할 구간은 연이어 나타났다.

천신만고 끝에 봉우리 하나 올라칠라치면 동그라미 그려진 또 하나의 봉우리가 눈앞에 나타났고,

등짝이 싸늘해지는 구간은 셀 수조차 없었다.

급기야 어느 한 구간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발 한발짝을 뗄 수 없어 한동안 머뭇거리기도 했다.

 



한번 가졌던 두려움은 위험구간이 나타날때마다 더 극대화 되어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발 한번 잘못 디딘다면...정말이지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죽을거 같았다.

입은 점점 빠짝빠짝 타들어 갔고,산은 점점 두려움의 존재로 엄습해왔다.

늘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기타호다카다케 산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쨌든 한고비는 넘고 무거운 배낭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기에 온 힘을 다해 기어 올랐다.

이름하여 깔딱고개였다.

흘러내리는 돌이라 뒷사람을 위해서 엄청 신경쓰며 올라야했다.




걸어왔던 능선은 안개가 무심하게도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떻게 저 길을 걸어왔을까 싶었고,앞으로의 길은 또 어떻게 걸어야 할까 싶었다.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달달한 음료먼저 원샷했다.

이상하게도 시원한 생맥주조차 땡기지 않았고,점심때가 되었는데도 식욕은 완전 제로였다.


3,100m높이에서 울려퍼지는 압력솥 추소리...딸랑딸랑~~~

밥냄새 끝내주고,식당 또한 고급레스토랑 못지않은 뷰였지만,

다들 식욕이 없어 억지로 한그릇 입에 꾸겨넣었다.


안전요원 두 분이 다가와 우리가 갈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삼일전,우리나라 산객 한분이 추락사를 당했다고 했고,

안개가 낄 경우,위험한 길이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여러번 거듭했다. 


지도상 호다카다케 산장까지는 2시간 15분이지만,지금 체력으로 봐선 4시간정도는 잡아야 할터.. 

잠시 쉬는 동안 풀어졌던 긴장감이 배낭을 짊어지자 다시 또 엄습해왔다.





사진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가라사와휫테를 왼편으로 두고 능선을 이어갔다.

눈으로 느껴지는 거리는 30분정도면 휘리릭 내려갈거 같는데,이정표에 씌여진 거리는 2킬로 가까이 되었다.




큰형님이 앞장서 길잡이 하시며 나를 전담마크 하시고..

내 뒤로는 솔맨님이,그리고 그 뒤로 언니,몽몽님 순으로 대열을 잡았다.

이 대열은 산행을 마칠때까지 흐트러짐이 없었고,다섯명은 마치 한몸이듯 움직였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민낯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것... 





드디어 목적지에 다달았다.호다카다케 산장..

그러니까 9킬로도 채 안되는 거리를 아침부터 꼬박 10시간이나 고생하며 걸어왔고,

기타호다카산장을 출발한지는 3시간 30분만이었다.찔끔 눈물까지 날 정도로 감격했던 순간이었다.



마의 구간을 해냈다는 기쁨에 다같이 환호...


오늘은 산장에서 묵기로 했다.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바깥잠은 무리라 생각했다.

다섯명만 한방에 들 수 있게 배정해 줬고,과연 여기가 해발 3,000m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시설은 완벽했다.

침구류는 냄새하나 없이 깨끗했고,세수까지 할 수 있는 세면대에 깔끔한 화장실까지..

1층에는 테레비와 난로까지 갖춘 편의시설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긴장됐던 마음이 풀리며 온몸의 근육이 아파왔다.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을 곡소리내며 어기적 어기적 걸었고,입술이 심하게 부르터 올랐다.


진라면에 누룽지,그리고 단무지와 김치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는 7시도 안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 그제에 비하면 호사스런 최고의 잠자리였지만,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눈감으면 오늘 걸어왔던 그 살벌했던 칼날구간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떠올릴때마다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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