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 (1)
(2018년 10월 1일~6일)
일본 북알프스 산행을 다시 계획했다.
두해 전엔 여름을 보았으니,이번엔 북알프스의 백미인 가라사와의 단풍을 볼 참이다.
두근반 세근반 날짜만 헤아리고 있었는데,난데없는 24호 태풍 ``짜미`가 일본 열도에 상륙하며 오사카와 도쿄를 지나 나고야까지 관통한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진다.강건너 남의 나라 일인줄 알았던 일본의 태풍소식이 나한테 이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줄이야..
잔뜩 들떠 있어야할 여행은 심란하기 짝이없다.
수시로 일본 기상청을 들락거리며 태풍이동경로를 살펴보지만,나고야 관통은 점점 기정사실화되고,항공편이 결항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만일 비행기가 뜬다해도 고생길은 불보듯 뻔해보이고,차라리 `항공편 결항`이라는 문자라도 오기를 내심 기다려보지만,출발일 새벽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신기하게도 8시 15분 비행기는 제시간에 출발했다.
2시간여만에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니,예상과는 달리 날씨만 화창하니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가싶다.
공항을 빠져나와 서둘러 나고야역까지 가는 급행열차를 탔다.(870엔)
나고야역에서 마쯔모토역까지 가는 JR라인 특급열차 시나노행(5510엔)은 매시 정시에 출발하는데,마침 30여분의 여유가 있어 편의점에 들러 간식꺼리를 좀 살 수 있었다.
아줌마 근성에 돈 몇 푼 아껴보겠다고 자유석을 끊었더니,사람들이 바글바글거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열차와 열차를 연결하는 칸에 짐을 간신히 꾸겨넣고 쭈구려 앉아 두시간을 견뎌야 했지만,그 시간 또한 어찌나도 흥미롭던지..
그 와중에도 명란이 들어있는 오니기리와 복숭아맛 나는 음료수를 맛있게도 입에 넣었다.
마쯔모토역에서 다시 표를 끊고 신시마시행 4시 열차를 탔다.
4,550엔으로 가미코지에서 돌아올 수 있는 왕복권을 끊을 수 있었는데,반대편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다.
신시마시역에 도착하니 가미코지로 들어가는 4시 45분 셔틀버스가 대기해 있다.
다시 한시간 반을 더 가서야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가미코지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상점문을 닫아 가스구입도 어렵게 됐다.
그래도 보험은 들어야 했기에 랜턴을 켜고 일인당 500엔씩 하는 보험을 야무지게 들고 야영장으로 올라갔다.
K구역을 배정받아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하는데..바람까지 불어대니 텐트설치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려서야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놓고나니,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고,
무사히 탈없이 계획대로 도착했음을 자축하며 아사히 맥주 한잔씩 마시며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길고도 긴 하루였다.
가라사와 산장까지 가려면 좀 서둘러야 했지만,아침밥을 하려면 가스가 필요했다.
일단,짐정리를 하고는 상점문이 열리는 일곱시까지 기다려서야 아침밥을 지을 수 있었다.
산꼭대기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를 보고는 날씨걱정이 좀 됐지만,다행히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출발~~~
걷는 내내 왼편으로 묘진다케가 신비롭게 펼쳐진다.
처음부터 진빼며 감동하면 안되는데,멋진 풍광 앞에 두고 어찌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우와~캬아~~와아~~
가미코지에서 요코산장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3시간여 걸린다.
길이 편편하고 부드럽고 고도가 없어 최대한 속도를 내어 걷는다.
두해 전에 걸었던 길,다시 걸어도 새롭기만 하다.
묘진산장 가기전에 원숭이떼가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
혹여라도 공격할까 조심스럽게 걷는데,그런일은 없다 그런다.
단,절대로 먹을것을 던져주면 안된다.
원숭이 엉덩이가 진짜루 빨갛네...ㅎ
1시간만에 묘진산장에 도착한다.
600m떨어져 있는 묘진연못이 궁금하지만,갈길이 머니 이번에도 그냥 통과다.
태풍이 지난 후라 더없이 맑고 청명한 날씨를 선사한다.
하늘은 눈부실만큼 파랗다.
하루라도 앞당긴 날짜였다면 못올뻔 했다.
3시간만에 야리가다케와 가라사와의 갈림길인 요코산장에 도착했다.
이제부턴 급격하게 고도를 높여야하는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선 든든하게 배를 채워 에너지를 저장하는게 급선무..
이번 산행을 위해 새로 구입한 초경량 버너의 화력한번 끝내주신다.
30분만에 라면 두개를 후딱 끓여먹고,그것도 모자라 빵 두개에 커피까지 먹고나서 가라사와산장으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본격적인 등산로 시작이니,비와 낙석에 단단히 준비하라`는 안내판이 나오고..
한동안 고도차 없는 편한길이 나오는가 했더니만,조금씩 길은 좁아지고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행여라도 비라도 올까 걱정했지만,날씨는 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오히려 더위 걱정을 할 판이다.
계곡 중간에 나있는 흔들다리를 건너면 길은 더욱 거칠고 가팔라진다.
하지만,시야는 점점 넓어지며 풍광은 화려해진다.
혼자힘으로는 도저히 어깨에 짊어질 수 없는 배낭 무게..
바닥에 내려놓으면 서로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다.
그래도 등짝에 딱 올려지기만하면 어떻게든 가게된다.
처음엔 먹꺼리를 빼려고 했는데,결국엔 막판에 먹꺼리까지 챙기게 됐다.
두 아줌마,입이 짧다보니 고생하더라도 밥이라도 잘먹자는 심산이었는데,덕분에(?) 배낭무게를 고스란히 두 어깨로 감당해야만 하니,여간 고된일이 아니다.
점점 황홀해지는 풍광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규모에 압도되고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 순간이 계속된다.
산 전체가 눈을 뗄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이다.
빤히 보이는 산장은 가도 가도 쉽게 다가갈 수 없다.
모래주머니라도 몇개 달고 걷는듯,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지치지 않게 물을 자주 마셔가며 한걸음 한걸음씩 옮겨보지만,몇걸음 못가 쉬고 또 쉬고..
단풍시즌이라 일본인들이 많다.
어느 구간은 줄지어 갈 정도지만,양보심이 대단하다.
언제나 무거운 짐 짊어진 우리를 먼저가라 양보해주고,심지어 옷깃하나 스치지않게 한쪽으로 밀착하여 한줄로 서서 `스고이데쓰네!`를 외치며 박수까지 쳐준다.
소란하지도 않다.조용히 각자의 산행을 즐기며 묵묵히 걸을 뿐이다.
감탄스런 풍경은 연이어 이어지고..
기대이상으로 펼쳐지는 풍광에 심장이 떨리는듯한 전율을 느낀다.
날씨가 한 몫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동안 쌓아놓은 복도 없는데 이 무슨 과분한 날씨복인가 싶다.
눈부신 하늘아래 펼쳐진 색색의 단풍색도 황홀하기 그지없다.
오를수록 넓게 펼쳐지는 산군은 어딜봐도 그림이고..
숨이 턱까지 차도 발걸음이 무거워도 행복하기만하다.
점점 산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마음은 조급하지만,걸음은 조금도 조급해질 수 없다.
풍경봐야지..사진 찍어야지..
놀랍도록 잘 걷고 있는 언니..
조금도 뒤처짐이 없다.
`바모스,바모스!!`
세상에 못할일은 없다.
두려워 안할 뿐이다.
아줌마 둘이 이렇게 비박짐을 메고 이곳을 오르게 될 줄이야..
두려움 컸지만,결국은 이 자리에 서있다.
하고싶고 가고싶은 곳은 이제 더 많아졌다.
가라사와 휫테라는 이정표를 지나자마자,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에 다다른다.
가미코지를 출발한지 8시간 정도 흘렀다.
문패 723번을 달고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꿈의 비박지에 자리를 잡았다.
팩을 박을 수 없어 끈을 이용해 돌맹이에 고정시키고,바닥도 평평하게 잘 다지고 나니 너무나도 훌륭한 집이 완성되었다.
울긋불긋 단풍물 들고,울긋불긋 텐트물도 이쁘게 들었다.
이보다 더 멋진 집터가 어디 있으랴~~
멋진 풍광은 말할것도 없고,호다카다케 연봉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처져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털모자에 우모바지,그리고 다운쟈켓까지 꺼내입었지만,생각보다 춥지않다.
암만 생각해도 복받은 날씨다.
산은 날씨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데,우리는 천당을 선사받은거나 다름없다.
부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천당에 있기만을 기도하며...
가라사와 휫테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곳에 가라사와 고야가 그림같이 위치해 있다.
내일은 호다카산장까지 갔다가 저곳으로 내려올 참이다.
해발2,350m에서 마시는 생맥주 맛,죽음이다.
안주는 풍광으로 대신하고 싶지만,언제나 감성은 본능을 이길 수 없는법..
배꼽시계가 울려대는 바람에 700엔짜리 오뎅세트 한그릇씩..
이 분위기 이 기분에서 한잔으로는 택도 없다.
또 한잔 주문한다.
오후의 햇살이 산너머로 들어가자,호다카다케 봉우리에 구름이 드리운다.
그리고,산색은 훨씬 중후하고 깊어졌다.
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을 찾다가 신시마시행 열차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조우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먹으며 즐거운 수다타임을 갖는다.
역시나,산이야기가 대부분..
덕분에 산장에서의 저녁시간이 이방인들과의 이야기꽃이 더해지니 더욱 풍요로워진다.
가미코지가 북알프스 등반의 주요 기점이라면 가라사와는 북알프스의 중간 지점으로 올라가는 거점으로 야리가다케나 오쿠호다카다케를 선택적으로 등반할 수 있는 곳이다.
어마어마한 텐트촌에 산장이용객까지 합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까 짐작된다.
놀라운 사실은 조금도 붐비지않고 조용하고 질서정연하다는 것이다.
화장실도 붐비지 않는다.심지어 너무나도 깨끗해서 더욱 놀랍다.
화장지는 언제가도 서너개씩 비치되어 있다.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도 있는데,양치며 세수도 가능하다.
그렇지만,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데도 조금도 지저분하거나 붐비지 않다는 것이다.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텐트촌으로 돌아오는데,우리집을 도대체가 찾을 수가 없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이웃나라에 와서도 새기는 마찬가지..
길치인 두 아줌마,하도 황당해서 낄낄거리며 이리 저리 왔다리 갔다리..
이곳이 아닌가벼~를 되뇌이며 텐트촌을 휘젓는다.
6시가 되니 텐트촌은 적막감만 맴돈다.
어찌나도 조용한지,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해야할 정도다.
밤새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고,아홉시쯤 되어 화장실 다녀오는길에 우리는 또한번 우리집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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