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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야기/산행(2009~2019)

설악산 둘째날


설악산 둘째날


(중청-대청-희운각-신선대-마등령-오세암-백담사)


4시에 맞춰놓은 알람소리를 듣고 잠이 깼다.

새벽녘에 깊은 잠이 들었던 터라 눈이 잘 떠지지 않아 뒤척거리고 있는데,직원이 들어와 불을 환하게 켜버린다.

더이상 누워 있을 수 없어 담요를 반납하고나서 다운쟈켓을 꺼내입고 대청을 오른다.


새벽하늘엔 눈썹모양의 하현달이 떠있고,파랑과 주황으로 물든 여명빛이 아름답다.

바람이 너무 강해 바위 아래 자리잡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려보지만,조금씩 붉은 빛은 사그라든다.



순식간에 안개가 몰려오더니,대청봉은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바람 불고 하늘은 점점 심상치 않아지고..내 마음 또한 심란해진다.

오후부터 비소식이 있다하니,좀 서둘러야 할거 같다.

아침을 먹고나서 다시 물을 끓여 점심때 먹을 햇반을 데운다.

서둘러 짐을 꾸리는데,어제 한계령에서 단체사진을 부탁하셨던 어르신 세분이 버너 가스를 빌려달라신다.

마음은 급하지만,거절할 수는 없지..

6시가 넘어서야 산장을 나선다.


용아장성과 봉정암은 안개속에 있고,안개로 뒤덮인 꽃밭은 분위기 짱이다.




발끝으로 참기생꽃 한송이가 아침인사를 하고..


희운각 대피소에 이르니,라면향기 산장을 가득 메운다.

라면향기는 언제나 치명적이다.

특히나,산정에서 맡는 냄새는 더더욱 그렇다.

배낭안에 들어있는 라면을 끓일까 하다가 물만 가득 채우고는 다시 배낭을 짊어진다.

 

금강애기나리


신선대에 올라서니,몸을 낮춰야할 만큼 바람이 매몰차게 불어댄다.

몇해전에 아끼던 모자를 이곳에서 날려버린적이 있어 모자를 꼭 눌러쓰고 언제봐도 심장 두근거리게 만드는 멋진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언제쯤이면 저 봉우리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 줄 수 있을까..

아무리봐도 그게 그 봉우리인거 같으니...


이제..공룡능선의 3종세트,세가지 보물을 찾아야 할 시간..

난장이붓꽃,금강봄맞이,그리고 산솜다리...

하나하나 찾을때마다 혼자 격하게 감동한다.

거친 바람 이겨내고 때가되니 또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준 이쁜이들이다.






한참동안이나 신선대 주변을 서성이다 내려선다.



자주솜대


햇살이 없으니,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땀이 흐를새가 없이 마르니,갈증도 없다.

다만,숲으로 들어설때면 좀 우중충해 나도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의 정체는 거의다 다람쥐다.

처음엔 뱀이 아닐까 싶어 줄행랑쳤는데,

걷다보니 점점 숲에서 나는 소리에 대해 둔감해진다.많이 컸다는 증거겠지..ㅎ



어쩜 이렇게나 여린 꽃이 공룡의 바람을 이겨냈을까..

가만이 앉아 꽃을 들여다보니,기특하기만하다.

가녀린 꽃대가 바람에 흔들려 촛점잡기가 쉽지않다.




여건과 건강이 허락되어 이곳에 와있음에 감사하며..

걷고 싶고 보고 싶은 열정이 있음에 감사하며..





금강봄맞이와 난장이붓꽃은 그래도 접근이 수월한 등로 옆으로 있다.

하지만,산솜다리는 대부분이 저멀리 바윗틈에 피어있어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꽃욕심에 배낭 내려놓고 몇걸음 올라가기도 하고..여의치 않을땐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산솜다리 군락지에 다달았다.

우와~~~멀리서봐도 엄청난 군락이다.

바람이 정신없이 불어대지만,눈앞의 꽃을 보고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배낭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산솜다리 군락지앞에 선다..

작년보다 더 풍년이다.셀 수 없을만큼 한눈에 다 넣지도 못할만큼 많다.

자세를 단단히 잡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한다.










바위를 엉거주춤 내려오면서도 미련이 남아 자꾸만 올려다보고 또 보고...

바위를 다 내려서니 후당대던 가슴이 그제야 진정이 된다.


안개가 점점 몰려오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노인봉 산솜다리 군락지가 궁금해 등로를 벗어나 잠깐 들렀다 갈 참이었지만,이내 포기한다.

부디..산행 마칠때까지 꾹 참아주기를...


1275봉 오름길은 역시나 힘겹다.

별 수 없다.누가 대신 걸어주는것도 아니고,내 힘으로 내 두다리로 걸어야 할 길,묵묵히 걷는 수 밖에 없다.




힘들어도 꽃앞에선 주저앉게 되고..

한번 앉았다 일어날때마다 곡소리를 낸다.


1275봉의 골바람도 예삿바람이 아니다.모자를 더 꾹 눌러쓴다.

뭐라도 입에 넣으려고 배낭을 내려놓았지만,다시 짊어지고 숲으로 들어가 바람을 피하며 이것저것 요기를 한다.

산에서 먹는 사과는 진짜 맛있다.

쫄깃쫄깃하게 씹을 요량으로 크래미를 가져와 봤는데,완전 대박이다.



걸음에 집중할 수 있게 이제 좀 그만 나타나 주었음 하지만..바윗틈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으니 아니 봐줄 수도 없고..





햇볕 쨍한 날보다 오늘같은 날이 쉬이 지치지 않아 걷기엔 딱이긴하다.

한가지 생각의 끈을 잡고 걷다보면 어느새 봉우리 위에 서있다.

봉우리 위에서 맞는 바람맛은 기똥차다.

걸어온 길,걸어갈 길,바라보는것도 즐거운 꺼리다. 


난장이붓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모양 참 특이하다.

꽃봉우리가 붓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깔딱길 올라 뒤를 보니,예전엔 눈에 안들어왔던 멋진 소나무가 오늘에야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도 멋질뿐더러 자리한번 기막히다.





등로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산솜다리..

앙증맞기도 하여라..





큰앵초


금강애기나리



드디어 마등령 삼거리 도착..

오세암으로 접어들기 전,마지막으로 외설악의 풍광들을 맘껏 즐긴다.


오세암


오세암에서 영시암을 거쳐 백담사에 이르는 하산길은 족히 2시간 반 가까이 걸리고..

다행히 산행을 마칠때까지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2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용대리로 내려와,백담사터미널에서 3시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버스에 올라탄다.

집에 도착해 몽몽님과 마주앉아 매운닭똥집볶음 앞에두고 칭따오맥주 한캔 들이키고 있자니 세상부러울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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