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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

일본 북알프스 (3)


일본 북알프스 (3)


드디어 대망의 세번째 날이 밝았다.

그러니까 이번 일정 중 가장 긴 거리,총 22킬로를 걸어내야 하는 날이다.

어젯밤,잠자리도 편하고,밤기온도 따스했지만,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설친 이유이기도하다. 

동이 채 트기도 전부터 랜턴을 이마에 달고 아침밥을 먹고나서 6시 땡! 하자마자 야리가다케를 향해 출발한다.


계곡 깊숙이 내려앉은 단풍과 청량감 넘치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빠른 걸음으로 진행한다.

아침공기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세상의 좋은 기운은 이곳에 다 함축되어 있는듯하다.


몽글몽글 브로콜리마냥 어우러진 나무들은 은은하고 수수해서 더 눈길이 간다.



한시간쯤 되어 해발 1850m에 위치해 있는 야리사와롯지에 도착한다.

두해 전,이곳에서 먹었던 주먹밥은 잊을 수 없다.

물조절에 실패했던 밥으로 만든 주먹밥이 어찌나 드럽게도 맛이 없던지..ㅎㅎ

오늘은 주먹밥 대신 꿀호빵에 냉커피로 요기를 한다.


아직까지는 크게 고도차가 없으니 발걸음이 가볍고...

햇살도 딱 적당해 걷기에도 아주 딱 좋다.

날씨걱정 없으니 산길에서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으랴 싶다.

언니나 나나 컨디션도 아주 좋다.

힘의 원천은 누가뭐래도 `밥심`이다.

매끼마다 든든하게 참 잘도 챙겨 먹고 있으니...




야리사와롯지에서 900m 걸어 바바다이라 야영장을 통과한다.

이용객이 많지 않으니,다른곳에 비해 장소가 협소하다.

야리가다케까지 5킬로밖에(?) 안남았지만,지금부터가 죽음이라는거..

이미 걸어봤던 길이기에 얼마나 고행길인지 뻔히 안다.




세갈래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가 장관이다.

꽤 먼 거리인데도 물소리가 우렁차다.

마침 태풍이 지나면서 비를 뿌린 후라 수량이 풍부하다.


어느곳 하나 시선을 둘 수 없을만큼 흘러내리는 단풍 물결이 장관이고,

그 뒤로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장엄하기도하다.

거친 야성미와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산세를 머리에 두며 산행을 이어간다.





깊은 협곡을 끼고 난 길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인다.






세줄기 폭포는 점점 가까워지고 단풍빛은 더욱 황홀해진다.

가라사와로 가는 산길보다 훨씬 거리가 있고 난이도가 있다보니,오가는 산객들이 그리 많지않아 산길이 호젓해서 더 좋다.

두 아줌마,맘놓고 온갖 감탄사를 내뱉는다.







협곡이 발아래로 점점 멀어질수록 조금씩 숨이 가빠온다.

고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계획한 걸음 다 걸어내려면 한걸음씩이라도 멈추지않고 걸음을 옮기는 수 밖에 없다.


무리하지 말자 약속했다.

우리힘으로 오를 수 있는곳까지만 오르고,목표지점에 못오르더라도 무조건 12시가 되면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오자 했다.

하지만,서로 말은 안했지만 중간에 걸음을 멈추는건 원치 않았다.

그러기에 적당히 쉬어가며 걸음을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언제나 온정 가득한 말을 건네는 산객들..

양보와 배려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넘쳐흐른다.

언제나 우리먼저 가라 양보해주고,`곤니찌와~`하며 인사한다. 




올려다보이는 산군들의 모습이 달라지며 숨은 점점 가빠온다.

연신 물을 마시고,연신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걸어내는 만큼 멋진 선물이 쏟아지니 기꺼이 감수하며 행복한 고행길을 이어간다.






햇살은 없어도 오늘도 날씨는 `굿`이다.

쉬이 지치지 말고 걸으라며 햇살마저 구름속에 숨어 나오지 않는게 분명하다.

햇님이 나와 산등성에 비추기를 바란다면 염치없는 바램이기에,감사하며 걷는다.






모퉁이 하나만 돌아가면 야리가다케가 눈앞에 나타날텐데..

좀처럼 쉽게 나타나지 않는 봉우리..

한걸음씩 서두르지말고 옮기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덴쿠하라 분기점과 야리가다케의 갈림길에 다다른다.

좌측으로 꺾어야 길이 평탄하지만,우리는 빠짝 곤두선 오른쪽 길을 택한다.

가진건 없어도 배짱 하나는 두둑한 아줌마...ㅎ

야리사와롯지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어느 산객은 덴쿠하라로 향하며 불가능할거라는 눈빛을 보내지만,꿈쩍도 않고 씩씩하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콸콸 흐르는 계곡물은 우리의 생명수다.

따로 정수도 필요없다.

물통 500m를 연신 채워가며 수분을 보충한다. 

아마도 물이 없어 물무게가 등짝에 보태졌다면 더욱 걸음은 무거워졌을테다. 



이제 길은 휑해졌다.

거친 돌과 거뭇거뭇한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O`라 표시된 길로만 걸어야지 걸음수 줄여보겠다고 직등할라치면 돌들이 흘러내려 위험하다.

바람이 거세지고 기온도 급격하게 차가워져 겉옷을 꺼내입는다.



오른편으로 아담한 셋쇼휫테가 보여지고...


길은 지그재그로 만들어놓아 고도차를 서서히 적응하게 만들어 놓았고,

100m간격으로 거리표시를 해두었다.

목적지까지 1000m,900m,800m..조금씩 거리는 좁혀지지만,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죽을 지경이다.





마침내 도착한 야리가다케 산장...11시 20분..

계획했던 시간보다 40분이나 앞당겼다.

바닥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을 정도로 기온이 차다.




산장 너머 알펜루트와 이어지는 길을 얼마간 내려가본다. 


와우~~

이 비현실적인 풍경이라니...

소름이 막 돋으며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바람이 세차고 볼까지 얼얼하지만,말도 안되는 멋진 풍경은 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저기 산줄기 어드메쯤,언젠가 걸을 날 있겠지..









아무리 추워도 인증은 하고 가야지..



몸을 좀 녹이러 들어간 산장안은 난로를 틀어놓아 온기 가득하다.

마침 브레이크타임에 걸리지 않았다.

맥주 생각은 1도 없고..600엔짜리 오뎅 한그릇에 녹차 한잔씩 마시며 몸을 녹인다.



야리가다케를 뒤로하고,왔던길 다시 내려선다.

날이 우중충해서 그런가,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거 같다.


셋쇼휫테로 향하는 지그재그로 난 길...





목표한 걸음 걸어내니 얼마나 뿌듯하고 스스로 기특한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상의 짝꿍이다.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기쁨의 세레모니를 하며 서로 배꼽잡고 웃는다.(차마 사진은 못올리고..)




묻지도 않았는데,저 꼭대기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길이라 떠벌리니,

`스고이데쓰네~~!`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오르며 감탄했던 풍경은 내려올때도 마찬가지로 감탄의 연속이고..

그 감동은 더욱 커져 쓰나미가 되어 물밀듯 밀려오고..







허벅지근육이 점점 뻐근해지며 급격한 내림길에서는 곡소리가 절로난다. 

온 몸의 근육이 이제 좀 쉬게 해달라 아우성 친다.






이 산장을 지나면 야리사와 롯지도 얼마 안남았다는 증거..

여전히 황홀하게 펼쳐진 등 뒤의 풍경을 반복해서 뒤돌아보며 바바다이라 산장을 지난다.



하산시간 넉넉하니 오를때 지나쳤던 참회나무 열매를 담아본다.

 


이쯤되니 평지길에서도 곡소리가 날 지경이다.



목적지가 가까워오니 원숭이들도 떼지어 인사해준다. 


9시간 반만에 요코산장에 닿으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언제나처럼 마무리는 아사히 맥주로...

그러고보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였던거 같다.


오늘도 요코산장에 머물기로 했다.

텐트를 걷어 도쿠사와산장까지 갈 생각이었지만,더이상 남은 힘이 없다.

다시 하루치 숙박일지를 쓰고나서,그 어느날보다 더 든든하게 저녁을 먹는다.

밥2인분도 모자라 라면 두봉도 끓이고..

맥주도 한고뿌씩 더 하고..


이리하여 계획했던 산행은 모두 끝이 났다. 

날씨가 큰 몫 해 준 덕분에 더할나위없이 완벽했던 산행이었고,더할 나위없이 완벽했던 짝꿍이었고,

풍경 또한 기대 이상으로 황홀했다.


북알프스에서의 마지막 밤도 바람 한점 없이 고요했다.

새벽녘에 일어나보니 은하수 흘러내리는 밤하늘엔 별들이 빼곡했다.

텐트 옆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비소식이 있어 일찌감치 짐정리를 마치고 산장을 나온다.

가미코지까지 가려면 적어도 3시간은 걸어야한다.




이제..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을 시간도 머지 않았다.

긴장감이 풀려서인가,오를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가벼워야 할 배낭이 여전히 버겁고 무겁다.

그만큼 마음이 풀어졌다는 증거겠지..


도쿠사와 산장을 지나고..





가미코지에 도착하니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고,

산꼭대기는 비구름이 무겁게 걸려있다.

북알프스 사요나라~~~!


가볍게 간식을 먹고는 왕복권을 이용해 신시마시역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비오는 창밖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 무슨 기막힌 타이밍인가 싶다.

신시마시역에서 다시 마쯔모토역으로 가는 11시 26분 기차에 올라탄다.


마쯔모토역에 도착하니 50여분의 여유시간이 있다.

12시 53분 나고야행을 기다리며 가케우동을 흡입한다.



드디어 나고야 시내에 입성했다.

드디어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게 됐다.

그리고..드디어 따뜻한 물에 머리를 감을 수 있게 되었고,드디어 4일만에 몸뚱아리를 씻게 됐고,비데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말끔하게 때빼고 광내고나서 불야성을 이루는 사카에역으로 나갔다.

일단은 배꼽시계를 진정시키는게 급선무라 나고야 TV 타워와 이웃하고 있는 오아시스21 쇼핑몰에 들어가 회전초밥을 미친듯이 흡입하고,

맥주도 쭉쭉 마셔댔다.

일본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돈키호테`도 갔다.

동전파스며 카레에 와사비맛나는 과자들을 봉지가득 사들고는 짐이 무거워 호텔까지 되돌아오는길은 택시를 이용했다.

우리의 불타는 금요일밤은 다시 이어졌고,

꼬치구이 냄새에 이끌려 분위기있는 술집에 갔다가,다시 자리를 옮겨 맥주한잔을 더 마시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도 우리는 나고야 시내를 돌아쳤다.

호텔에 짐을 맡겨놓고 나고야역 주변의 상점들을 기웃거렸고,

점심으로는 나고야의 명물인 장어덮밥을 먹었다.


6시 50분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했고,1시간 반만에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나고야에 갔을때는 태풍 `짜미`가 막 빠져나간 직 후였는데,

서울에 오니  태풍 `콩레이`가 우리나라를 막 빠져나간 직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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