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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여행이야기

슬로베니아 - 블레드



슬로베니아 - 블레드


 날이 짧은 겨울철이다보니,아침 여덟시가 되어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고,저녁이면 오후 네시밖에 안되었는데도 어둑어둑해졌다.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베니아로 가는 날 아침은 여느때보다 조금 늦게 호텔을 나왔는데,호텔앞 풍경이 예술이었다.쭉쭉 뻗은 나무 너머로 하얀 돌산이 마치 설산으로 보여 신비로웠는데,케이블카도 운행되고 있었다.



그 날 아침 역시 바람개비 빵에 꿀차를 마셨는데,유난히 속살이 부드러웠다.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베니아 블레드까지는 3시간 반이나 걸렸다.

좀 지루하겠다 싶었는데,창밖 풍광에 정신 파느라 시간이 후딱 갔다.

알프스 산자락들이 가는 내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었고,아침 안개가 띠를 이루며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센스넘치게도 우리의 가이드 언니는 에델바이스며 세이굿바이,그리고 폴링인러브등의 명곡을 틀어주며 감상에 젖게 만들어 주었다.

 

산자락 아래의 마을은 한폭의 그림같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터널 하나를 통과하며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로 들어서니 산세는 급격히 달라졌다.

오스트리아의 울퉁불퉁한 산악지형과는 달리 낮고 잔잔한 지형이 이어졌다.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블레드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플라타나`라는 나룻배를 타야만 했는데,사공이 직접 노를 저어 움직이는 작은 배였다.

대대로 물려주는 자부심 강한 직업이었는데,우리가 탔던 사공은 꽤나 힘겹게 노를 저어 안쓰럽게 만들었다.



플라트나에서 내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은 99개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신랑이 신부를 업고 끝까지 오르면 백년해로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 신부는 절대로 말을 걸어서는 안되고,남자 또한 묵묵히 신부를 업고 끝까지 올라야 한다는데,

이는 여자는 참을 인을 배우고,남자는 삶의 무게를 이겨낸다는 뜻이라 한다.

행복하게 살기도 전에 허리 부러질듯..ㅎ


계단을 올라서니 성모승천성당이 나타났다.

바로 트럼프와 멜라니아가 스몰웨딩을 올린곳이기도 하다.


댕댕댕 아름다운 종소리가 성당 주변에 퍼졌던 이유는 바로 소원의 종소리 때문이었다.

세번을 치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소원을 빌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나도 소원을 빌었다.

주변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간절히 빌었고,마지막 종을 칠땐 또다시 이곳에 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알프스의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호수면 100m높이의 절벽에는 블레드 성이 멋드러지게 세워져 있었는데,날리 흐린데다 겨울철이라 무채색의 산자락은 좀 더 멋진 그림이 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화장실도 이용할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두개를 주문해 선생님네와 하나씩 나눠 먹었는데,달콤함의 끝판왕이었다.




집합시간 하나는 참 잘 지켰던  우리 팀들..

부부동반 일행이 대부분이었는데,다들 형님과 나의 사이를 부러워했다.

서로 다가가고 곁을 주다보니 어느샌가 어렵지 않은 사이가 되어 그렇게 여행짝꿍까지 되었고,

여행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또다른 여행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배를 타고 섬을 나와 호숫가를 산책했다.

유고슬라비아 티토대통령의 별장이 있는 곳도 있었는데,그 별장에서 북한 김일성이 보름간 머물며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를 검토했다고 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었다.


소원의 종소리가 맑은 호수위로 울려퍼졌고,마치 응답해 주는듯 호수면은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켰다.



말로만 듣던 슈니첼이 블레드에서의 점심식사였다.

이름이 예뻐 별맛인가 했더니만,그냥 평범한 돈까스맛이었는데,갓 튀겨나와 바삭함이 일품이었다.


블레드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블레드성에 도착하니,여전히 날은 꾸물꾸물했다.

비소식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맑고 쨍한 날씨속에 그림같은 블레드섬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1인당 9유로에 해당하는 입장권을 내고 성 내부로 들어갔다.


투박한 돌담이며 성곽길이 크고 화려하지 않아 더 분위기 있었다.




전망 좋은 곳에서 폼잡고 블레드크림케잌과 커피한잔 마시고 싶었는데,우리에게 그럴 여유는 없다는 사실..

성 한바퀴 돌고 성채에 올라  알프스 산자락 마을을 내려다보고나서 마지막으로 화장실 한번 다녀오니 어느새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말았다.  





블레드에서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으며 처음으로 여권심사를 했다.

크로아티아는 같은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해 국가 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쉥겐조약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나라라 여권심사가 필요했는데,여권을 한데모아 보여주기만 하는 아주 간단한 심사였다.


카를로바츠까지 3시간 반이 걸렸고,그 날 저녁 역시 로컬맥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카를로바츠 맥주와 사과맥주였는데,도수도 높지 않고 맛도 깔끔해 한모금 마시자마자 형님과 눈을 마주치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