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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여행이야기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 두브르브니크


네움에서 두브르브니크로 가는 날은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은 날씨였다.

비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쳤고,안개가 가득했으며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날씨는 항상 차갑고 습했다.호텔은 늘 건조했는데,아침에 일어나면 목구멍이 칼칼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여러겹 껴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목에는 버프까지 해서 몸뚱아리는 언제나 무거웠다.

네움을 출발한지 5분만에 국경을 통과해 크로아티아로 들어섰다.

드디어 사진속에서 봤던 그 풍광,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려왔던 그 그림같은 풍광,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와 파란 하늘,그리고 붉은 지붕들을 보는가 했더니만,날씨복이 참 없었다.

 `이건 아니잖아~이건 아니잖아~`를 읊조리며 밴을 타고 스르지산 전망대로 올랐지만,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지그재그로 돌고 돌아 올라가는 길은 마치 대관령 고개를 오르는듯 했고,짙게 깔린 안개 또한 대관령의 그 풍경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웃음이 날 정도였다.

차를 돌려 고도를 낮춰가며 두군데의 전망포인트에서 차를 멈췄지만,야속하게도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비바람이 더욱 강하게 몰아쳐 우의는 하도 펄럭거려 입을 수 없었고,우산 또한 홀라당 뒤집혔다.


스르지산에서의 두브르브니크 전망은 이걸로 끝이었다.

멋진 인생사진을 찍겠다고 벼뤘던 마음은 비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렸고,그저 그곳에 머물었다는것에 만족했다. 


두브르브니크의 백미인 성곽투어를 할 즈음엔 다행히 비가 잦아들어 우산없이도 투어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궂은 날씨가 다 나쁜건 아니었다.

촉촉했던 성곽길은 더 투박한 멋으로 다가왔고,빛에 반사되지않아 진득한 색감의 성곽볼 수 있었다.

우산을 쓴채 보슬비 내리는 골목길을 거닐며 중세도시를 굽어보는 것도 아주 좋았다.

   



필레문을 통과해 성으로 들어가니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중세시대로 들어간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눈앞에 보이는 성벽의 질감이며 건물들 하나하나가 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의 더께가 빚어낸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성벽의 색은 은은한 조명빛이 들어오면 오묘한 색을 내어 더 압권이었다.



 

하얀 대리석 깔려있는 플라차 거리에는 여러개의 성당들과 궁전이 있었는데,그 중 두브르브니크 대성당이 가장 중심가에 있었다.

구시가지 끝자락에는 스폰자 궁전이,그리고 렉터궁전과 프란체스코 수도원도 있었는데,한참을 돌아다니다보니 그 성당이 매 그 성당으로 보였고,그 건물이 매 그 건물로 보여 헷갈리기 일쑤였다.

머리굴리며 성당 이름을 기억해 내려 애쓰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그냥 그곳에 나의 숨결과 발길이 닿았었지~하며 만족해했다.



16세기 크로아티아 최고의 극작가,마린드로지크 동상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누구는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고,누구는 손을 만져야 한다고 했는데,우리는 가이드가 알려준대로 손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이번 여행에서 소원을 빌었던 곳이 꽤 여러곳 있었다.

각 나라마다 한군데씩은 꼭 있었는데,너무 많은것을 구하면 왠지 하느님도 골치 아프실것 같아 세가지로 통일했다.

건강,행복,그리고 다시 또 그곳을 찾게 해달라는...




웅장한 성당들 사이 사이로 난 골목길은 보슬비까지 내려 유럽 분위기가 제대로 났고 유럽감성까지 마구 폭발했다.

상점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철제간판을 보는 재미까지 더해졌고,크리스마스 분위기까지 더해지며 걷는내내 마음은 항상 들 떠 있었다.




성의 중앙에는 언제나 우물이 있었고,그 곳 역시 오노프리오스라는 우물이 있었다.

성곽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입장권을 받아들고 성벽으로 올라갔다.

성벽투어의 묘미는 한편으로는 빨간지붕의 시가지를 두고,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드리아해를 끼고 두브르브니크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풍광이 어찌나도 멋드러진지 스르지산 전망대에서의 아쉬움을 단박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오노프리오 분수는 위에서 보니,16면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성곽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전쟁의 아픔을 뒤로하고 완전 평화로웠다.

빨간지붕은 그림같았고,그곳을 거니는 우산쓴 사람들의 모습 또한 그림같이 예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두브르브니크의 성벽 위를 걷는 상상은 그렇게 현실화되어 있었다.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서는 웅장하고 높은 성당들이 있어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역사를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라 그 어느곳보다도 더 주의깊게 내려다봤다. 


도시방어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로브리예나츠는 하늘에서 보면 삼각형 모양인데,난공불락이었다고 한다.

  





여유있게 걸으며 두브르브니크의 풍광을 최대한 만끽했다.

성밖에서는 아드리아해의 바람이 파도소리와 함께 실려왔고,

성벽 안 골목길을 구석구석 훔쳐보는 재미도 꽤 흥미로웠다. 

그 곳 역시 주민들이 살고 있었고,간간히 보이는 삶의 흔적들은 정감있고 친근해 보였다.




성벽 밖으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해서 입구를 찾았으나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이 꽃보다 누나에서 나왔던 그 부자(Buza)카페였는데,성벽의 뚫린 구멍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시가지로 내려섰을때 만나는 한국사람들마다 부자카페의 위치를 물었고,처음엔 관심도 없던 우리도 괜히 궁금해져서 한참을 찾아 헤맨끝에 입구까지 갈 수 있었는데,예능의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싶었다.

그 곳 말고도 예능이나 드라마로 통하는 스팟들이 많았다.가이드의 설명에도 언제나 예능프로나 연예인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플리트비체에는 꽃보다누나 코스가,블레드성에서는 흑기사라는 드라마가,그리고 스플리트에는 꽃누나에서 김희애가 먹었던 아이스크림이,라스토케에서는 이승기가 빵을 먹었던 곳이 있다는 등등등...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성벽코스를 마치고, 다시 스폰자 궁전앞에 섰고,또 다시 마리드로지크 동상에 손을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간절하면 들어주실꺼라는 믿음으로... 

선생님댁 소원도 꼭 이루어지시기를~~




태양을 형상화 한 둥근 시계탑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다시 시가지를 쏘다녔다.

산타복장을 한 아저씨가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고,무슨 자동차 쇼도 했고,

한편에서는 와인을 마시고,또 다른 한편에서는 차를 마시는 시가지의 풍경이 너무나 활기찼다.

 



도대체 부자카페가 뭐길래? 싶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맨 끝에 `COLD DRINKS` 라는 카페로 들어가는 골목을 찾아냈고,카페입구에 섰을땐 철문이 굳게 잠겨져 있었다.

파도가 심해 문을 닫은게 아닌가 싶었다.음료가격이 사악하다는 정보를 미리 들었던 터라 뭔가 사먹을 생각도 없었고,그저 유명스팟을 찾아갔다는것에 뿌듯해했다.



집합시간이 다 될 즈음엔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카페에 앉아 한잔에 4유로하는 아주 진한 향이 나는 커피를 마셨는데,빗소리에 한껏 센치한 분위기에 젖어있었고,

집에 와서도 비가 내리면 왠지 그 커피향이 나는듯 했다.

크로아티아는 그렇게 빗소리로 추억하는 도시로 남았다.


해산물 스프와 본식으로 나온 홍합이 들어있는 스파게티는 면발이 힘이 없는것만 빼고는 간이 딱 좋았다.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도 맛있었는데,여행 내내 먹는것 하나는 참 군말없이 참 잘 먹었다.

남들은 딱딱해서 잘 안 넘어간다는 빵도 나는 술술 잘 넘어갔고,

돼지고기 닭고기 요리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비린내 난다는 생선도 맛만 좋았고,

전채요리로 나오는 건더기 없는 멀건 스프도 후룩후룩 잘만 퍼먹었다.


점심을 먹고 버스까지는 구시가지를 가로질러 걸어가야했는데,가는동안 우산이 막 뒤집어지고 비바람이 난리도 아니었다.

언제 또 비바람속의 두브르브니크를 걸어보나 싶어 우산이 뒤집어져도 형님이랑 깔깔대고 웃었고,

한편으론 때맞춰 오늘의 일정을 다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방금전 식당에서 만났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은 점심을 마치고 성벽투어를 시작한다 그랬다.


두브르브니크에서 자다르까지는 무려 4시간 반이나 걸렸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잠도 억수로 쏟아졌다.

지루함도 없애고 잠도 깨라며 `에너미라인스`라는 영화 한편을 틀어주었다.

잔혹했던 민족분립의 코소보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버넨이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무사히 구조될꺼라는걸 알면서도 가슴을 조였다.


날이 거듭될수록 우리 형님과 여러날 먹고 자고 하는 식구(食口)가 아니면 평생 알지 못했을 은밀한 비밀까지 공유하게 됐다.

내가 방귀쟁이란걸 그만 들키게 되었는데,특히 잠자는 도중에 소리를 내는 바람에 형님은 매일같이 내가 쏘아대는 따발총 소리를 들으셔야만 했다.

이상하게도 그 총격전은 3시쯤이 가장 격렬해서 형님은 `새벽3시의 총격전`이라 부르셨다.

나 또한 형님 머리의 미스테리를 알아냈다.

아침만 되면 엄청나게 희한한 기상천외한 폭탄머리를 하고 일어나셨는데,차마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웃음을 참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그 폭탄머리가 우아한 강남아줌마 스타일로 변신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신기방기했고,덕분에 나는 매일같이 내 머리를 전속미용사에게 맡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