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이야기/여행이야기

크로아티아 - 라스토케.플리트비체,스플리트


크로아티아 - 라스토케,플리트비체,스플리트


여행 5일째 되던 날,드디어 크로아티아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일정은 천사의 머릿결이라는 뜻을 가진 라스토케였는데,카를로바츠에서 라스로케로 가는 도중에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얼룩진 마을을 지났다.건물 외벽엔 아직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했고,터전을 두고 떠났던 사람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해 빈집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심지어는 마을전체가 단 한명도 살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 참혹한 전쟁끝에 피해를 보는건 언제나 힘없는 민초들임을 다시한번 느꼈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을 개방하지 않아 마을 외곽을 한바퀴 돌았다.

물이 흐르는 골목마다 뾰족한 집들이 자리하고 있었고,고도차가 크게 없는데도 작고 큰 폭포들이 그림처럼 흘러 내리고 있는 그야말로 숲속의 작은 요정의 마을 같았다.




담너머로 내려다보면 그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마도 벽난로에 쓰일 장작이며,티타임을 즐겼을 이쁜 탁자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마을을 흐르는 개천 위로는 한 남성이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는데,줄이 시작되는 지점에 바구니가 하나 놓여있었다.

이런 퍼포먼스는 여행중에 꽤 여러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비엔나 게른트너 거리의 퍼포먼스가 가장 다양했는데,예술의 도시답게 자주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온몸에 금색 석고상을 바르고 미동도 않고 서있다가 사람들이 옆을 지나면 깜짝 놀래키기도 했고,

기타를 들고나와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거리로 나와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다.

바구니에 동전이라도 넣었어야 했는데,습관이 안되다보니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간혹 그들이 화를 내기도 한다고 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라스토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버스로 약 30분 정도 걸렸는데,강수확률 40퍼센트라 그러더니 날씨만 좋았다.

공원으로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포가 발아래로 펼쳐졌다.

물빛은 또 얼마나 곱고 맑던지 과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할만 했다. 



호숫가로 난 오솔길을 따라 폭포 근처로 다가가니,폭포소리가 아주 우렁찼다.

다들 인증사진 찍느라 바빴고,나 또한 거기에 편승해 얼굴 디밀고 인증사진을 날렸다.  


호수의 물색은 미네랄과 유기물 함량 그리고 광량에 따라 색을 달리했는데,어느 호수는 초록색으로 또 다른 호수는 푸른색으로 또 다른 호수는 흰색을 띄었다.

92개의 폭포와 그 폭포들이 만들어낸 호수는 무려 16개나 된다고 하니,그 규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크고 작은 폭포들이 계단을 이루며 쏟아져 내리는 풍광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이름하여 `꽃누나 코스`로 진행했는데,상류로 갈수록 조용하고 원시림의 느낌이 났다.

바닥까지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물이 참 맑았는데,송어가 무리지어 유영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산책내내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르는 클래식 음악이 수신기를 통해 흘러 나왔다.

자연의 웅장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는 뜻으로 들려주는 음악이려니 했고,

잔잔한 선율과 함께 걷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뷰포인트에 서니 우리가 걸었던 산책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층층으로 이루어진 에머랄드빛 호수는 다시봐도 자연의 걸작이었고,예술품이었다.



플리트비체를 걷고 난 후의 점심은 송어구이 정식이었다.

껍질을 벗기고 레몬을 뿌려 거기에 마늘소스를 발라 비린내를 잡아주는 형식이었는데,우리는 레몬맥주를 따로 주문했다.

워낙 생선을 좋아하는 터라 뼈만 남기고 싹싹 알뜰하게 발라 먹었다.


플리트비체에서 달마시안의 꽃이라 불리우는 스플리트는 3시간 30분이나 되는 꽤 먼 거리였다.

꾸벅꾸벅 졸다 창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늘 일정이 다 끝날때까지만이라도 꾹 참아주길 바랬지만,야속하게도 하늘은 비를 하염없이 뿌리고 있었고,

버스안으로는 크로아티아 전통 아카펠라 합창단인 클라파의 음악이 꽤 오랫동안 울려퍼지며 창밖풍경과 함께 감성에 젖게 만들었다. 


스플리트 시내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커다란 야자수 가로수가 반겼다.

비내리는 아드리아해를 뒤로하고,우산을 받쳐들고 지하궁전을 통해 올드타운으로 들어갔다.

 

양옆으로 온갖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고개를 들면 성문의 투박함이 그대로 전해져 그 세월의 켜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유적지에서 물건을 판다는게 의아했지만,생활속에 녹아있는 유적지는 그 후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유적지가 그대로 그들이 오랜세월 살아온 생활터전이었고,앞으로도 대를 이어 살아가야 터전임을 시간이 갈수록 알아채게 되었다.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덕수궁에 주민들이 점유해 장사도하고 생활을 한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그곳에서는 그게 가능했고,유적도 잘 보존되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한가운데에 있는 열주광장에는 기둥처럼 생긴 16개의 기둥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주변섬으로부터 석회암을 공수하고,그리스 이탈리아에서는 대리석을 그리고 이집트에서 화강암을 가져와 건축했다한다.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여생을 보내기 위한 도시로 선택한 곳이 바로 아드리아해의 바닷가 마을 스플리트였다.

10년 걸려 궁전이 완공되자 자신의 자리를 평화적으로 이양하고 은퇴하여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스의 대리석과 스핑크스를 가져다 썼는데,신전앞에 있었던 스핑크스는 당연히 진품이 아니었다.


비내리는 광장이 꽤 운치있었다.

요란하게 내리는 비가 아닌걸 감사해하며 광장 주변을 맴돌았다.

더러는 클라파 합창단이 공연도 한다던데 오늘같은 날 거리공연을 기대한다는건 무리였다. 

 

 

성 돔니우스 종탑과 그 옆으로는 육각형의 돔니우스 성당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섬세함과 정교함에 또한번 놀랐다.



돔형으로 되어있는 황제의 알현실..


 




금문으로 빠져나와 크로아티아 주교였던 그리고리우스 닌의 동상을 만났다.

라틴어로만 보던 미사를 크로아티아어로 볼 수 있도록 바티칸에 간청한 사람이었다.

엄지발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줄서 기다렸다가 반질반질해진 발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먼 길까지 가 소원을 빌고 왔으니 다 이루어 주시겠지..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재미가 솔솔했다.

기념품 파는 가게며 수제 스카프,그리고 어느곳에서는 좋은 커피향도 났다.

가이드가 알려준 환전소에서 현지화폐인 쿠나를 20유로정도 환전해 두었다.

대부분 유로를 사용하기는 했지만,더러는 쿠나만을 사용하는곳도 있었고,유로로 냈을때 거스름돈을 쿠나로 내어주는곳도 있었다.

1유로를 7쿠나 정도로 환산했는데,화폐가치가 익숙치않아 가격표를 볼때마다 원화가치까지 계산하느라 머리를 좀 굴려야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 같은 마르코 마루릭의 동상이 있었다.



집합장소로 가기 전,다시한번 그레고리 닌 동상의 발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비내리는 아드리아 해를 뒤로하고,또 다시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의 네움으로 이동했다.

다음날 일정이 두브르브니크라 보스니아의 영토를 지나야했는데,하룻밤 묵은 보스니아의 숙소는 단연 최고였다.

저녁 또한 호텔뷔페식이었고,간만에 풍성한 야채와 과일들을 맘껏 흡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