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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여행이야기

크로아티아 -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 자그레브


볼꺼리 많은 크로아티아에서는 삼일간의 일정이었다.

마지막 일정은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였는데,자다르에서 3시간 반이나 이동했다.

여행이 중반부로 흐를수록 버스이동시간도 어느정도 익숙해졌고,창밖풍경과 가이드의 서양사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곤 했다.

버스기사님도 한번만 바뀌고는 요셉이라는 귀여운 체코아저씨랑 쭉 함께 했는데,정말 친절하고 다정했다.

덩치만큼 힘도 아주 쎘는데,캐리어가방 두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들어 트렁크에 넣으셨고,한국말도 곧잘 하셔서 눈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하셨다.

덕분에 우린 체코말을 배울 수 있었고,아침이면 `요셉,도부리덴!`하고 인사했고,캐리어를 들어줄때면 `요셉,댓꾸유~`하고 감사인사를 건낼 수 있었다. 


동네빵집에서 매일같이 따끈하게 배달된다는 빵은 아침식사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겉은 약간 거칠었지만 식감은 좋았고,속은 진짜 부드러웠다.속재료를 풍부하게 넣어 빵하나를 먹고난 후,요거트를 한사발 먹고,그것도 모자라 콘후레이크를 우유에 넣어 한사발 든든하게 먹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꿀차를 언제나 잊지않고 마셨다.

밤새 건조했던 목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자그레브로 가는 날 역시 창밖풍경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빨간지붕들 위로 구름띠를 두른 산이 환상이었다.

아침이면 지면에서 습한 기운이 올라와 하얀 안개로 뒤덮였던 날도 있었지만,간혹 안개가 걷히면서 멋진 풍경을 연출해내기도 했다. 



수차례의 내전끝에 1992년에 독립국가로 인정받았던 크로아티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자그레브 시내에 들어서니,가장 먼저 자그레브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길위의 외국인들은 왜케들 멋있는지...



대성당 앞에는 금빛의 성모마리아상이 높이 모셔져 있었는데,사방으로 천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자그레브 대성당앞에 서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두개의 첨탑이 있었는데,높이가 상당해 고개를 들면 뒤로 넘어갈 정도였다.

성당의 건축양식은 어느 날부터는 머릿속에 의도적으로 넣어두지 않았다.

고딕양식,로마네스크양식,바로크양식 등등,처음엔 머릿속에 잘도 입력되더니,시간이 갈수록 머리는 포화상태가 됐고,한귀로 들으면 다른 한귀로 빠져나갔다.

그냥 첨탑이 뾰족하면 고딕양식이려니~~했다. 

하도 많은 성당을 접하다보니,점점 성당앞에 섰을때의 감동도 줄어들었다.

첫느낌이 오랫동안 남는다더니,프랑스에서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가장 오래 각인된 성당이었다.



성당옆 건물외벽은 마치 시간이 멈춘듯 오랜역사의 흔적이 느껴졌다.



성당내부로 들어가면 언제나 숙연해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특히 단상앞으로 다가갈수록 그 뭉클함은 더해갔는데,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졌던 나쁜마음들을 사하여 주실것만 같았다.




돌라츠시장을 지나 좁고 가파른 골목으로 올라갔다. 



일명 오바마 넥타이라 불리는 넥타이 가게에서 걸음을 멈췄는데,그 넥타이의 시초가 바로 크로아티아였다.

30년전쟁 당시,병사들의 아내나 연인이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감아준것에서 비롯되었다.


하나같이 세련미 넘치고 군더더기 하나없는 깔끔한 거리였다.

그저 산책하듯 여유있게 걷다가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한잔하고,또 그렇게 걷다가 와인바에 들어가 따끈한 와인 한잔 마시고 싶은 그런 거리였다.



골목길의 끝에는 커다란 용을 말굽으로 밟은채 서있는 성 조지의 기마상이 있었고,기마상을 왼편으로 두고 올라서니 스톤게이트가 보였다.



철제장식문에 조그만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1931년 대화재로 다른것은 다 탔을때 이것만은 그대로 보존됐다하여 기적의 돌문이라 불린다했다.

소원을 빌기위한 수많은 촛불과 꽃들,그리고 소원내용이 적힌 메모지들이 벽면가득 붙어있었다.

나약한 인간에게 종교는 커다란 의지처가 되는건 분명했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성 마르코성당은 색상이 인상적이었다.

지붕전체가 타일 모자이크로 되어있어 마치 조립식 블럭으로 조립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아담하고 아주 예쁜 외관을 가진 성당이었다.

크로아티아와 자그레브시의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는 지붕이 특징이다.  

측면에는 예수의 12제자 조각상이 있는데,예술적가치가 아주 높아 보물로 여겨진다던데,그냥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봐왔던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은 죄다 펜스가 처져 있다거나 누군가가 지키고 있거나 그랬는데..


성 마르크 성당옆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고,관공서라 그랬다.


반옐라치치 광장으로 가는 골목길 끝으로는 자그레브 성당이 빼곡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오후가 되자 시가지는 활기로 넘치기 시작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반옐라치치광장은 가장 번화했다.

관광객들로 넘쳐났고,가끔 트램도 오갔다.

어딜가든 시내의 중심지엔 언제나 그 나라의 영웅상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광화문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듯..

반옐라치치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입으로부터 크로아티아를 구한 영웅이다.



처음에 그냥 지나쳤던 돌라츠시장으로 다시갔다.

들어서자마자 생동감이 넘치고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며 활기를 띠었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와 치즈,그리고 꽃이나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고,우리는 과일향에 이끌려 지갑을 열었다.


 

귤과 포도를 샀는데,귤은 1킬로에 4쿠나밖에 안되었고,포도는 7쿠나였다.

저울로 직접 달아주는 방식이 너무 흥미로웠는데,과일가격이 너무 싸고 양도 너무너무 많아서 두번세번 거듭해서 가격을 물었다.  



시장을 빠져나오며 싼가격에 호두한봉지를 사고,남은 쿠나를 탈탈 털어 로건이에게 줄 킨더에그 초콜렛을 몇개 샀다.  

 


대성당을 다시한번 눈에 넣고 시내를 빠져나왔다.

언제나 도시를 떠나기 전엔 마지막으로 하는 의식이 있었는데,바로 화장실이용이었다.

워낙 이동시간이 멀다보니 크게 마렵지 않아도 한번은 꼭 들러줘야 마음이 놓였다.





자그레브에서 국경을 넘어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길은 멀고도 멀았다.

거의 다섯시간이 넘게 걸렸는데,국경심사도 꽤 까다로웠다.

심사원이 버스 트렁크까지 열어 테러범이 있나 확인했고,우리도 버스에서 일제히 다 내려 한사람씩 여권의 얼굴과 대조했다.


헝가리에서의 첫식사는 헝가리특식인 굴라쉬였다.

그러니까 비프 토마토 스튜라고 보면 되었는데,파프리카로 빨갛게 소스를 낸 스프였다.

빵과 궁합이 참 잘 맞았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명성만큼 화려함의 끝판왕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도는 코스였는데,국회의사당이며 부다왕궁이며 세체니다리 야경은 환상이었다.

세계 3대 야경중 하나라는 명성은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비도 내리고 너무나도 추웠던 날씨마저 잊을만큼 부다페스트의 야경에 푹 빠졌던 밤이었다.



헝가리에서의 밤은 너무나도 짧았고,새벽부터 밤까지 강행군을 한 탓에 처음으로 한번도 깨지않고 곯아떨어졌다.

점점 그렇게 그 곳 생활에 적응해갔고,앞으로 남은 여정이 하루하루 줄어드는게 아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