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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0일 : 산또 도밍고 데 깔사다~벨로라도(24km)


제10일 : 산또 도밍고 데 깔사다~벨로라도(24km),5시간


2019년 9월 28일


어둠속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여럿이 한방을 쓰니,기상시간도 출발시간도 다 제각각이라 새벽이면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배낭을 밖으로 가져나와 하나하나 차곡차곡 배낭에 넣었다.

그런 다음,다시 침대로 가서 손으로 훑어가며 빠뜨린 물건이 있나 확인했다.

용수는 언제 나갔는지 침대가 비어있다.

7시 출발..밖은 여전히 깜깜하다.

신발끈을 일부러 천천히 묶으며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마침 덴마크 신사,여언이 막 나왔다.


마을을 벗어나 흙길을 걷다 커다란 십자가상을 만났다.

보통 죽은자의 무덤에는 십자가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는데,조금 다른건지 아주 컸다.

 


흙길과 포장도로를 돌아가며 걸었다.

내 앞으로 독일에서 온 모냐 아가씨도 걷고 있었다.

모냐는 해맑은 웃음이 매력적이었는데,항상 내 이름을 잊지않고 불러주며 인사했다.

나는 또 이름을 까먹어서 얼렁뚱땅 인사만 하고는 여언한테 물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데이비드도 벨기에 친구랑 함께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몇시에 알베르게를 나오는거야?


나는 보통 여섯시쯤 일어났다.긴 거리를 걸을땐 다섯시에 일어나기도 했는데,알람을 맞춰놓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새벽녘이 되면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은 왠만하면 간단하게라도 먹고 출발했다.

크로와상하나,요플레,그리고 쥬스나 물 한잔이 다였다.

슈퍼가 없어 챙길 수 없을땐 까미노길에 있는 bar에서 해결했다.향좋은 커피와 갓 구워나온 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 먹기도 했고,어느날은 오믈렛을 먹기도 했다.그래봤자 4유로를 넘지 않았다.

점심은 잘 챙겨 먹지 못했다.그래서 항상 배가 고팠는데,때를 놓치면 먹고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숙소에 도착하면 대체로 점심시간이었는데,침대배정받고,씻고 빨래하고 짐정리하다보면 시간을 놓쳐,맥주나 과일로 요기를 하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주방이 있는 알베르게에서는 주로 시장을 봐서 요리해 먹었고,

슈퍼가 없는 작은 마을에서는 10유로쯤 하는 순례자 메뉴를 먹었는데,주요리에 딸려 나오는 감자튀김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푸짐하게 나왔다.


l




첫번째 마을은 그냥 통과했다.

여언과 모냐는 그곳에서 아침을 먹는다며 트럭앞으로 줄을 섰다.

`See you`




마을 중앙으로 시청과 나란히 하고 있는 성당이 나왔다.

시청과 성당은 대체적으로 까미노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곳에 있었는데,알베르게도 그곳을 중심으로하여 몰려있었고,

커다란 광장도 바로 그 앞으로 위치해 있었다.

해질녘이 되어 광장으로 나가면 참 재밌는 풍경들이 많았다.

우리의 광장문화와는 사뭇 달랐는데,유럽의 문화는 광장문화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bar나 상점,그리고 레스토랑이며 기념품점등이 몰려있어 아주 번화했고,식욕을 자극하는 음식냄새로 가득찼다.

하늘색이 새파랗게 변하는 시간,광장주변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의 구세주,베르나..

그라뇽을 빠져나오다 만나 벨로라도까지 함께 동행해주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름을 말하고 내가 발음이 서투르니 나무스틱으로 땅바닥에 `BERNA`라고 친절하게 써주었다.

 



한국인 순례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같이 걸었는데,말수가 아주 적었다.

혼자 왔길래 사진을 몇장 찍어 주었더니 아주 좋아했다.

아무 계획없이 비행기표만 끊어 즉흥적으로 왔다 그랬는데,놀랍도록 잘 걸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아주 요원해 보였다.

도대체 두발로 걸어 닿을 수는 있는곳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줄꺼라 생각했지만,앞으로 남은 날은 아주 많았고,바로 지금 내 앞으로 놓여진 길마저 한도 끝도 없었다.

누런 밀밭 사이로 걷고 있는 사람들은 개미보다도 더 작게 보였다.

 



그늘없는 길이 이어졌고,그 길 위로 햇볕은 상상초월로 무시무시하게 쏟아져 머리에 열불이 났다.

바닥은 비포장의 자갈길이었는데,발바닥에서도 열불이 났다.

그래서 양쪽 길가로 비껴 걷거나,풀을 밟으며 걸었다.

다행인건,언제부턴가 뒤꿈치에 굳은살이 박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언제부턴가 중간에 굳이 양말을 갈아신지 않아도 발이 멀쩡해졌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발바닥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주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준건 발바닥 말고도 또 있었다.

더이상 손이 거칠어 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되었고,비누로 감은 머리도 뻣뻣하긴 해도 그런대로 빗질이 되었다. 






리오하 주와 레온 주의 경계점이 되는 언덕에 올라섰다.

커다란 표지판엔 앞으로 걸어가야 할 레온 주의 마을들이 쭉 그려져 있었다.



바로 옆 농장으로는 스프링쿨러가 물을 시원하게 내뿜고 있어 잽싸게 통과했다.

농장규모가 어마어마하니 스프링쿨러 설비도 어마어마했다.

 



갈증이 극도에 다다른채 걷다가 식수대를 만났다.

나는 배낭무게 때문에 500ml로 어떻게든 해결했는데, 베르나는 1리터나 되는 물을 짊어지고 다녔다.

심지어 물을 자주 마시지도 않았다.

유럽 사람들 나이는 정말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는데,베르나는 무려 72세였다.헬리콥터를 모는 군인이었단다.

몸이 단단하고 자세도 아주 곧아 흐트러짐없이 걸었다.

나도 어디가면 걷는거 하나는 빠지지 않았는데,베르나 앞에서는 깨갱 수준이었다.

 

알베르게로 가는 화살표인줄 모르고 길을 벗어났다 다시 나오는 한국인 순례자 두 분을 만났다.

단체로 온 순례자들이었는데,숙소에서 만났고 bar에서도 자주 만나다가 레온 이후에서야 걸음을 달리했다.




마을을 벗어나니 또다시 땡볕아래로 길이 이어졌다.

이렇게 걷다 열사병이라도 걸리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난히 햇살이 지독했다.








리오하 빌로리아에서 당신은 왜 쉬지 않는가?

쉬고싶지만 가야만 했다.이 따가운 땡볕길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산티아고까지는 576km 남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km쯤이니,부산에서도 170km나 더 가야 하는 거리였다.

이렇게 생각하니,남은거리가 피부로 와 닿았다.



베르나는 모자를 쓰지 않고 배낭에 걸고 다녔는데,햇살이 좋아 일부러 안쓴다 그랬다.

누구는 죽을맛인데,누구는 오히려 즐기고 있다니..정말 `헐`이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꼭 맞았다.

 나는 사력을 다해 걷고 있었고,베르나는 길 자체를 즐기고 있었으니,한걸음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진리를 왜 나중에야 터득했을까?

나는 인사를 건낼 힘조차 없는데도 지나는 순례자들마다 `부엔 까미노 !`,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도 `부엔 뜨라바호 !`하며 인사를 건냈다.

베르나는 마음의 여유도 넘쳤다.



내 숨소리가 거칠었는지 베르나가 차분히 숨쉬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그래도 소용없었다.

먼저 가라 하는데도 계속 걸음맞춰 걸어주었던 베르나,목 마르다 할때마다 내 물병을 꺼내 주었던 자상한 베르나,무차스 그라시아스~~


bar가 나왔지만,베르나는 쉬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혼자 걸으면 더 힘들것을 알기에 나도 베르나 뒤를 바짝 따랐다.

베르나는 다른 프랑스 순례자들과는 달리 영어와 스페인어를 곧잘 했다.

둘 다 수준이 거기서 거기라 대화가 잘 통했다.ㅎ

스페인어 동사가 틀리면 내가 고쳐주었고,영어발음이 틀리면 베르나가 고쳐주었다. 






빌로리아 마을에는 성당앞에 조각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지나가는 순례자들마다 기념사진을 한장씩 다 찍었다.

베르나가 찍어준다길래 숨 좀 고를겸 나도 한장 찍었다.

닭 두마리를 거닐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는 인물은 산또 도밍고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마을을 지나며 산또 도밍고를 기리는 무슨 행사를 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도로와 나란히 하여 걷는 길이 나왔다.

마을을 벗어나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끝없는 밀밭길,그 사이를 걷는 순례자들,그리고 눈물나도록 새파란 하늘..







가끔 초록색 작물도 볼 수 있었다.

베르나가 콩이라 그랬다.콩이든 팥이든 눈에 안들어왔다.어여 벨로라도가 빨리 나타나기만을~

그때까지도 베르나의 물병은 1리터 그대로였다.




마침내 벨로라도에 도착하여 화살표를 따라 우측으로 꺾어 들어갔다.

나무그늘에 식수대가 있는 휴식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쉬면서 베르나와 작별인사를 했다.

고마웠어,베르나..오늘 너를 만나서 운이 참 좋았어.또 봐.

그 후로 베르나를 볼 수 없었는데,나보다 훨씬 앞서 간게 분명했다.



알베르게는 마을 초입에 있었다.

용수는 얼마나 잽싼지 벌써 도착해서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6유로하는 알베르게는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는데,특이하게 수영장도 딸려 있었다.

나무로 된 침대라 언니가 구석구석 베드버그 약을 꼼꼼하게 뿌려주었다.



언니와 영훈이가 시장을 미리 봐 놓은 덕에 슈퍼찾아 마을까지 올라가야하는 수고를 덜었다.

싸악 씻고나니,시원한 맥주에 황송한 점심상이 차려져 있었다.

바게뜨빵에 올려먹는 초리조맛이 환상이었다.


빨래뿐 아니라 침낭까지 햇볕에 널어놨더니 아주 뽀송뽀송해졌다.



수영장에서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었는데,얼마나 차가운지 거의 설악산 계곡물 수준이었다.

스물셋의 용수는 젊은 혈기로 몸까지 담그려고 시도를 하여 다같이 환호해줬는데,준비운동만 요란하게 하고는 딱 1초 담그고 오돌오돌 떨며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탈출했다.

차라리 안들어감만 못했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춥지도 않은지 수영복차림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들락거렸다. 



정원에서는 화가선생님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날 그날의 까미노의 인상적인 풍경을 휴대폰에 담아두었다가 아주 수준급으로 그림한점을 뚝딱 완성하셨는데,

그 날은 전깃줄에 걸린 신발이 있는 풍경을 그리셨다.



언니와 커피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동안,영훈이가 근사하게 저녁상을 차려냈다.

스파게티맛이 얼마나 기똥찬지 완전 깜놀깜놀했다.

가만이 앉아 감사의 밥상을 받은 답례로 내가 할 수 있는건 기껏 설거지가 다였다.

영훈이는 직접 요리한 음식을 본인이 먹기보다는 누군가 맛있게 먹는걸 더 즐겼다.먹는양도 아주 적었다.

용수는 누가 해주는 음식을 아주 잘 먹었다.맛있게 먹으며 풍미가 있다는 표현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는데,양도 영훈이가 먹는 양의 두배는 되었.

근데 참 희한한건,용수 몸이 영훈이보다는 훨씬 가늘었다는것이었다.

 

매일매일 짐풀고 짐싸기의 반복인 생활이었다.

45리터 배낭안에 40일간 생활할 최소한의 물품들이 다 들어있으니,뭐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난감해진다.

그렇게 단도리를 했는데도 손목시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샤워장으로 가면서 배낭위에 두었는데 사라져버린것이다..

배낭을 홀라당 다 뒤집어 뒤져도,침대 아래까지 불을 비춰 찾아봐도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샤워장에 갈때면 배낭 허리벨트 포켓에 넣어두거나,카메라 가방 첫번째 칸에 두었는데,그 날은 뭐가 급했는지 그대로 아무렇게나 배낭위에 두었던게 화근이었다.

누굴 탓하랴..간수를 잘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시계가 없어 얼마간은 시간을 볼 수 없어 답답했는데,점차 익숙해져 챙길 물건 하나가 없다는게 오히려 더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우스갯소리로 벨로 볼게 없다하여` 벨로라도`란 이름이 붙었다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저녁산책도 패스하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는데,천장 한켠에 이런 글귀가 씌여져 있었다.

작렬하는 스페인의 햇살을 기막히게 표현하여 깊이 공감했다.

`나는 오늘 지옥불 속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