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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2일 : 아헤스~부르고스(23km)


제12일 : 아헤스~부르고스(23km),5시간 40분


2019년 9월 30일


초반에 1000m넘는 고개를 하나 넘는 날이었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르고스 대성당이 있는 부르고스에 입성하는 날이었다.

둘러볼 만한 곳이 많은 대도시는 될 수 있으면 한시라도 일찍 도착하여 하나라도 더 보는게 답이었다.  

6시 출발..

날버리고 가면 발병이 날거라고 용수와 영훈이한테 단단히 다짐을 시켰다.


이젠 날이 차서 야외테이블엔 앉아 있을 수 없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져 항상 보온에 신경쓰고 몸의 발란스에 집중했다.

까미노에선 몸뚱아리가 가장 큰 재산이라 절대 아프면 안되었다.

어디 한군데라도 고장나거나 감기라도 걸리면 계획대로 걸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고 싶다고해서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일년에 걸쳐 준비하고 공부하여 벼르고 벼른 끝에 온 곳이었다. 


출발한지 30여분만에 첫번째 마을을 만나 bar에 들어갔다.

그렇게 일찍 출발했는데도 벌써 순례자 두팀이 앉아있었다. 

주인장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자리잡고 기다렸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여기요,저기요하며 큰소리로 불렀을텐데,그러지 않았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르는 법,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느긋한척 자리에 앉아있었다.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간식으로 물과 납작복숭아를 챙겼다.

다 먹고 나오니,갑자기 순례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자칫 조금만 늦었다면 최소 한시간은 bar에서 보낼뻔 했다.



마을을 나와 언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돌길이 예사롭지 않았고,울퉁불퉁하여 걷는것도 쉽지 않았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난 아주 좁은 오솔길을 따라 돌과 자갈로만 이루어진 아주 거친 길을 죽어라 올랐는데,

행여라도 자빠지지 않을까 바짝 신경을 썼다.

용수가 앞장서고,내 뒤로는 영훈이가 따랐는데,앞에서 무지막지하게 잡아 끄는 통에 나랑 영훈이는 정말이지 사력을 다해 기어올라야만 했다.

알베르게를 나오며 누군가 쓰고버린 나무 지팡이가 있었는데,용수한테 그걸 주는게 아니었다. 

스틱 없이도 잘 걷는데,지팡이까지 짚으니 날개를 단듯 올라쳤다. 


1,080m되는 넓은 고갯마루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걸어온 방향으로는 순례자들의 불빛이 반짝였고,걸어갈 방향으로는 오늘 가야 할 부르고스 시내의 불빛이 보였다.

쉽게 닿을듯 보여도 족히 15킬로 이상은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여명빛을 뒤로하고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소똥을 요리조리 피하며 걸어야하는 아주 재미난 길이었다.



파란색에 노란 화살표가 그려진 팔찌 하나를 길바닥에서 득템하여 동생한테 건내는 착한 형아~~

3일만에 걷는 날이라 기분이 정말 째진다고 했다.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져있는 흙길을 걸으며 다음 마을로 향했다.

흐렸는지 햇살이 나오지 않아 들판은 더 황량해 보였다.

수풀이 축축하여 눅눅한 바람이 불어와 자꾸만 옷깃을 여미었고,흐르는 콧물을 들여넣느라 훌쩍훌쩍거렸다. 





독일 프랑스 포루투갈 아르헨티나등의 축구강국 속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당당히 자리한 태극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알베르게를 광고하는 폐차버스였는데,그만큼 한국인 순례자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태극기의 네 모서리에 있는 건곤감리를 아주 정확하게 그려넣었다.


마을초입에 있는 bar는 그대로 패쓰했다.

피자를 주셨던 한국인 순례객과 인사했다.


마을을 지나며 국기가 걸려있으면 대체적으로 시청으로 여기면 되었는데,

까르데누엘라 리오삐꼬란 마을에도 다섯개나 되는 국기가 펄럭거렸다.




재밌는 벽화를 보는것 또한 까미노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순례자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그림에서부터 순례자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까지 아주 다양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기도 했고,또 어느곳엔 해학적으로 그려놓아 웃음짓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지하도를 지날땐 어김없이 멋스러운 그림이 그려져있어 즐거움을 주었다. 



내 앞으로 프랑스에서 온 존이 걷고 있었다.

존은 하얀수염을 하고 언제나 야구모자를 쓰고 다녔다.늘 혼자 묵묵히 걷고 있었는데,말수가 적고 아주 점잖았다.

음성이 낮고 고요해 말을 건내면 가까이서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또다시 마을을 만나며 점점 부르고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르고스 외곽에 이르자 공업단지와 주유소,그리고 고층건물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rapido라 쓰여있는 간판으로 택배업체임을 짐작했고,가구 판매점에는 mueble라 크게 쓰여있었다.

왼편으로 있는 공항 활주로와 나란히 하여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었는데,오가는 차들이 많아 신경을 썼다.




시가지로 들어가기 전에 수도원으로 보이는 건물앞에서 조금 쉬었다.

용수와 영훈이는 데카트론에 가서 뭘사고,시내에서는 또 뭘 먹을지 한참을 고민했고,

나는 광장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실 생각뿐이었다.




용수는 대학생 크레덴샬을 따로 발급하여 왔다.

그래서 도시를 만나면 대학교를 찾아가 도장을 받았는데,외국에서는 취업할때 스펙으로 인정해준다.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딸랑 도장만 받고 온다는걸 뻔히 아는데도 대학교를 찾아갈땐 항상 `학교가서 강의 듣고 올께요~`했다.

졸지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와~~

영훈이와 나는 신시가지를 통해 구시가지에 위치한 알베르게로 향했다.

 





삐까뻔쩍한 건물들을 보니 눈이 막 돌아갔다.건물들은 하나같이 현대적이었고,도시사람들은 세련미가 넘쳤다.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낯설기도 했다.

바닥도 아주 반질반질하고 깨끗했는데,왠지 구두를 신고 걸어야할것 같은 도심을 먼지 잔뜩 묻은 등산화에 꼬질꼬질한 옷차림으로  걷고 있었다.   






신시가지를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오니 완전 다른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저만치로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막 요동치기 시작했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그 위용이 아주 웅장했다.


12시에 문을 연다는 알베르게 앞에는 배낭이 일렬로 놓여져 있었고,

바로 앞으로는 bar가 있었는데,먼저 온 순례자들이 거기에서 오픈시간을 기다리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무리들속에서 누군가 아는척을 하며 반가워하는데,도무지 알 수가 없어 머리를 굴리는데 알고봤더니 일본인 도모에였다.

눈만 내놓고 얼굴전체를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모자까지 푹~눌러쓰고 걸었던 순례자였는데,얼굴을 드러내니 알 수가 있나..

이곳에서 10킬로 떨어진 마을까지 더 간다 하면서도 아주 느긋했다.

알베르게 예약을 해야하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내 휴대폰으로 대신 전화를 걸어달란다.  

도움을 주고는 `사요나라`하고 헤어졌다.




15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공립알베르게였는데,대성당과 가깝다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며 배낭줄은 뒷뜰까지 이어졌고,내 배낭은 앞에서 열네번째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언니의 보라색 배낭이었다.

언니는 일찍 도착하여 병원에 다녀온 후였는데,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염증으로 나왔단다.

회복이 더뎌 큰 탈이 나진 않았을까 둘 다 걱정했는데,다행이었다.

하지만 언니에게는 무릎의 통증보다 걷기위해 온 이곳에서 걸을 수 없다는게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무척 상했을텐데도 언니는 티를 잘 안냈고,

나는 내 몸뚱아리를 먼저 챙기느라 그런 언니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했다.





6유로하는 알베르게는 입실수속부터 아주 체계적이었다.

두명이 앉아 체크인을 했고,그 옆에 서있는 사람이 신호를 보내야 한사람씩 들어갈 수 있었다.

도장을 찍고나면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일회용시트를 제공했고 2층에 있는 침대로 안내하며 각종이용시설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2층침대 하나씩 독립적으로 쓸 수 있게 칸막이가 되어 있을뿐더러 심지어 콘센트도 침대하나당 하나씩 머리맡에 있었다.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도 바로 앞이었고,샤워부스도 아주 많아 누군가 문밖에서 기다릴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화장실이며 세면기도 침대에서 열걸음 이내에 있어 드나들기 아주 편리했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어마어마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름이 막 돋았다.

무려 3세기에 걸쳐 완성된 고딕건축물이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대성당의 위용은 더 대단하여 완전 압도되었다.  



노랫소리에 이끌려 아치형 문으로 다가갔다.

왠 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난 파바로티가 이곳까지 온 줄 알았다. 

오솔레미오~를 정말 환상의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듣는 귀는 똑같은지,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너도나도 네모난 통에 돈을 집어넣었다. 





대성당을 앞에두고 먹는 맥주라니~~

어떻게 이런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믿기지 않았다.



따빠스 2개를 시켰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 그림을 보고 손으로 짚었다.

하나는 감자튀김이었고,다른 하나는 기름에 바짝 튀긴 삼겹살이었는데,아주 고소했다.

먹을수록 짜다는건 언제나 함정이었는데,희한하게도 다먹고 시내를 돌아다닐때가 되어서야 갈증이 심하게 났다.






순례자할인을 받아 성당안으로 들어갔다.(4.5유로)

입구에서 무전기처럼 생긴 이어폰을 나눠 주었는데,있으나마나한 무용지물이었다.

작품을 지날때마다 스페인어로 설명하는데 도통 알아들어먹을 수 없어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고 눈으로만 감상했다.




특히 눈여겨봐야할것은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가대석,엘시드 부부무덤,그리고 회랑을 따라 쭉 이어져 있는 예배당이었다.


























한시간넘게 한바퀴 돌아보고 성당을 나왔다.

성당을 나와서도 한동안은 그 감동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 성당주변을 서성였다.













부르고스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하여 정확한 길도 모른채 무조건 언덕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높은 곳은 딱 그곳뿐이었는데,전망대로 향하는 언덕길이 보였다.




10여분만에 도착한 전망대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대성당을 중심으로 붉은 색 지붕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날씨까지 맑아 먼데까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구름 둥둥 떠있는 하늘마저 환상이라 부르고스는 더욱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온통 화분으로 장식한  어느 가정집을 통해 다시 시가지로 내려왔다.

발바닥이 아파 조금 쉴 생각에 알베르게를 찾았지만,도무지 나타나지 않아 난감했다.

분명 대성당 첨탑이 보이는 위치였는데,첨탑이 한두개라야지 원..

이 골목 저 골목을 쑤시다 간신히 찾았는데,꽤 먼데까지 가서 헤맸던터라 발바닥이 얼얼했다.

나라는 사람은 정말이지...

신은 왜 나한테 동서남북을 짚어낼 수 있는 능력을 안주셨을까?








저녁은 맥주와 샌드위치로 대신했다.

점심으로 먹었던 삼겹살 튀김이 채 소화도 안된 상태였는데 하나를 다 해치웠다.

그리고나서는 또 오렌지쥬스와 커피까지 더 주문했다.

다 걷고나면 몸이 축나서 최소 5킬로는 저절로 빠질꺼라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아무래도 그른거 같았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상은 딱 맞았다.

집에 와 체중계에 올라가니 딱 3킬로정도밖에 안줄어 있었다. 

주변사람들은 자세히 뜯어보고도 잘 모르겠다며 그조차 알아차리지 못했고,

몇일 잘먹고 잘자고나니 그마저도 말짱도루묵이 되어있었다.


광장안으로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한무리의 군중이 요란하게 들어왔다.

시위 군중이었다.


공적연금방어를 위한 투쟁~~!

아주 재밌게 구호를 외쳤고,주변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함께 외쳤다.

참,별걸 다보네..



머냐와 데이비드,그리고 벨기에 아저씨가 광장에 앉아 있었다.

머냐는 참 귀염성있는 얼굴이라 볼때마다 예뻐죽겠다.

캐롤라인 남매도 만났다.

전망대를 꼭 가보라는 말이 영어로 금방 안나와 어벙벙거렸는데,용케도 알아듣고 `오케이`했다.





저녁빛이 좋을까해서 언니와 함께 전망대에 다시 올랐는데,해지는 방향이 아니라 그럭저럭했다.










다음날은 그 악명높은 메세타 구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어둠이 짙게 내려앉을때까지 성당주변을 배회했다.

9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을땐 바로 옆칸에서 들려오는 드라이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단체로 온 한국인 순례자중 한명이 드라이로 옷을 말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