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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1일 : 벨로라도~아헤스(27.4km)


제11일 : 벨로라도~아헤스(27.4km),5시간 30분


2019년 9월 29일


6시 20분,다른날보다 좀 일찍 출발했다.

거리가 27km나 되는데다,고도를 300m이상 높혔다가 낮추는 구간이었다.

용수한테 날이 밝을때까지만 길동무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해놓은 상태라 미리 준비하고 기다렸다.

 

마을을 벗어나 울창한 산림숲 사이를 걷는데,오늘따라 이상하게도 순례자들이 앞뒤로 아무도 안보이고 딱 우리 둘뿐이다.

거의 2시간 가까이를 랜턴빛에 의지해 용수뒤를 바짝 따랐다.

용수는 스페인어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순례길에서 써먹을만한 몇가지 단어와 동사 몇개를 알려주었더니 영리한 아이라 금세 터득했다.

그 후로 bar에 들어가면 주문은 용수가 다했는데,아주 재밌어했고,왠만한 간판은 아주 정확하게 읽었다. 



날이 밝아지면서 용수더러 먼저 가라하고는 혼자 걷기 시작했다. 

서로 그렇게 하는게 편했다.

순례길은 함께 걸으면서 혹은 나 혼자 걷는 길이기도 했다.

길 위에서 만나 힘든 순간을 공감하며 추억을 만들기도 했고,혼자 걸으며 `나`라는 사람을 진지하게 마주하며 걷기도 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누런 밀밭길 사이로 까미노길이 나 있었다.

앞뒤로 순례자들이 보이니 크게 걱정할일은 없었다.

경쟁하며 걷지말자고 다짐하는데도 그게 잘 안되어 여러사람을 지나쳐 아주 콩알만하게 보이는 순례자를 따라잡았다.

  



bar앞으로 아는 얼굴이 여럿 보였다.

TGV멤버도 보였고,화가아저씨와 청주팀도 보였다.

`부엔 까미노!`인사하며 그대로 지나쳤다.

아주 배가 고프지 않는 이상은 혼자 bar에 들어가는 일은 드물었다.

벤치에 앉아 배낭안에 있는 사과와 빵으로 요기하거나,걸으면서 복숭아나 초코바를 먹었다.




아주 멀리 앞서갔다고 생각했는데,용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이,호벤!

호벤은 젊은이란 뜻인데,재미삼아 그렇게 불렀다.

이 아줌마가 걱정되어 일부러 느린 걸음으로 가는줄 알았는데,컨디션이 안좋아 천천히 간단다.

참 솔직한 아이다.립서비스라도 나를 신경쓰느라 그런거라 했으면 감동먹고 지 좋아하는 젤리라도 하나 더 사줬을텐데..



양쪽으로 빼곡한 소나무숲길이 이어졌다.그 옆으로는 무슨 기념비가 말끔하게 세워져 있었고,점점 숲길은 울창해졌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햇볕이 아주 강렬했지만,숲바람이 불어 걷기도 아주 좋았다.



오르떼가까지 이르는 길은 양쪽으로 숲이 아주 우거진,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깊고 으슥한 산길이었다.

산길은 내 전공분야 중 하나인터라 발걸음이 익숙한듯 아주 가벼웠다. 

숲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공기 또한 아주 좋아서 쉬지않고 걷는데도 호흡이 아주 안정적이었다.

길이 아주 좁아지기도 하여 앞사람과의 거리를 계속 유지했다.



울창한 초록숲 사이로 새하얀 길이 가운데로 쭉 나있었다.

언덕을 올라서며 몸을 돌려 걸어온 길을 보고,난 내 눈을 의심했다.오마이갓~!

걸어온 길은 폭포처럼 새하얀 모습을 하고 있었고,아주 아주 가팔랐는데 거의 90도로 뚝 떨어지는 각도였다.

어느절에 내려왔는지도 가파른 줄도 몰랐는데,멀찌감치 떨어져보니 스키슬로프로 보여 아찔했다.

 

언덕을 올라서며 넓은 공터를 만나 조금 쉬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양한 모양의 조형들이 서있었다.

폴란드 아가씨들 세명도 막 도착해 쉬고 있는중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걸었던 막달레나는 눈이 마주칠때마다 `슈퍼우먼`이라 불렀고,나는 `유 투`라고 대답했다.

 


산길이 시작될때부터 오르떼가까지 거의 10km가까이를 대만에서 온 왕후이윈과 함께 했다. 

성격이 정말 밝았고,리액션도 아주 컸다.

음성도 아주 좋아 중국어발음을 명확하게 전달하여 저절로 공부가 되었다.

묵시아까지 걸을 예정이라며 튼튼한 두 다리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그래서 나두 공감했다.

마흔 여섯이라 그래서 내 나이를 말하니 `쩐더마? 쩐더마?하며 아주 놀란듯 폴짝폴짝 뛰었는데,서른살로 보인다며 스무살이나 내 나이를 훅 깎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어차피 돈안드는 립서비스니까 인심이라도 후하게 주겠다는 심사였겠지..ㅎㅎ

오늘부로 서른살로 살겠다니 `뚜이,뚜이`하면서 박수까지 쳐주는 리액션의 여왕,왕후이윈~~!.. 어쨌든 `씨에씨에니`다.  



왕후이윈의 목소리는 들을수록 정감이 갔다.

눈치도 빨라서 단어가 생각이 안나 눈알을 굴려가며 우물우물거리면 곧바로 대답해 주었고,걸으면서도 연신 내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딩시양 선생님이 해주셨던 어느 부부 이야기를 해주었을땐 리액션의 여왕답게 눈물까지 흘리며 배꼽을잡고 웃어제꼈다.

이런 이야기였다. 


어느 부부가 있었는데,부인은 싸우고 나면 항상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를 닦았다.

어느날 남편이 묻기를 `싸우고 나서 변기를 닦으면 마음이 달래져?`

그랬더니 부인이 말하기를 `당연하지.당신 칫솔로 변기를 닦거든..`



목적지를 4킬로정도 앞 둔 오르떼가부터는 용수와 함께 걸었다.

행여나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까하여 언니가 단단히 부탁을 해놓은 상태였다.

언니는 아주 뒤끝있는 아줌마니까 잘 모시고 다니라는 말도 덧붙혔다.  






아헤스까지는 소똥 냄새가 진동을 하는 흙길이었다.

여기저기로 분비물이 있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걷다가는 낭패보기 딱 좋았다.

초지위에 군데군데 나무들이 있다보니 햇살이 그렇게 따갑지 않고,바람도 아주 시원해 아헤스로 가는길이 크게 지루하지 않았다.

바닥도 잔돌이 그리 많지않아 그런대로 걸을만하여 발바닥에 불은 나지 않었다.





알고봤더니,농장사이를 지나는 구간이었다.농장끝으로 출입문이 있었다.

바로 옆으로 소와 젖소들이 무심한듯 앉아있거나 서있었고,순례자들도 무심한듯 제갈길을 걸었다.





규모가 크든 작든간에 항상 먼발치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안도감과 함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어떤 알베르게일까? 골목풍경은 어떨까? 그리고 성당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분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518km남았다.

여전히 와닿지 않는 어마어마한 거리였다.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는데,두 발로 걸어 가능한 거리로 보이지도 않았다.



마을로 들어서자 담벼락이 유독 예쁜 건물이 시선을 끌었다.

bar와 상점,그리고 각종 음식물이나 식품을 파는 곳이었는데,이 모든걸 한꺼번에 취급하는걸로 보아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짐작케 했다.

과연 짐작했던대로 약국이나 보건소도 없고 이렇다할 슈퍼도 안보였다.



침대 여덟개가 놓여진 방을 배정받았다(저녁 포함 20유로).3개는 이층침대고 2개는 단층침대였는데,한국인만 다섯이었다.

나랑 언니,용수와 영훈이,그리고 장훈이가 있었다.

몇번 봤다고 생각했는데,다른 사람과 헷갈려 기억하고 있었다.

스물여섯,영훈이와 동갑인 아주 반듯한 청년이었는데,.

얼굴만 봐도 착함이 묻어났고,말도 아주 조심스럽고 예쁜말만 골라썼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고개만 돌리면 바로 얼굴을 마주하는 거리에 캐나다에서 온 캐롤라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은퇴하고나서 남동생인 캐빈과 함께 순례중이었다.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데,나도 적극 공감했다. 


씻고나서의 맥주타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루의 피로가 단박에 풀렸다.

올리브안주까지 시켜 맥주를 마시고나서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며 단맛으로 피로를 풀었다. 



순례자메뉴는 언제나 전채요리-주요리-후식 순이었는데,

와인이나 맥주,그리고 각종 음료는 무료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그 날은 주요리로 닭고기를 시켰는데,감자튀김이 아닌 밥과 함께 나와 간만에 밥맛을 만끽하는것까지는 좋았지만

먹을수록 짜다는게 함정이었다.

그래도 먹성이 좋아 접시를 거의 다 비웠다.

다른 레스토랑과는 달리 아주 신속하게 음식이 나와 속시원했는데,

서빙하시는 할아버지 동작이 아주 엽렵하여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다가 접시가 비워지는 즉시 잽싸게 들고 나가고  연이어 다음 요리를 대령했다. 

한국인 순례자들을 아주 많이 다뤄본 듯 했다.    


뭐든 입에 맞고 잘 먹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누구는 매일같이 먹는 빵에 질린다던데,나는 오히려 담백한 빵맛에 빠져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맛좋은 빵을 더이상 못먹게 될것을 미리부터 아쉬워했다.    



아헤스의 성당은 아주 소박하여 더 정감이 갔다.

주변을 서성이니 성당을 관리하시는 연세지긋한 어르신이 성당내부로 안내하셨다.

그리고는 성당 구석구석 하나하나 열성으로 설명하셨는데,알아들을리가 만무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척을 했다.

중간중간 특이한 것은 사진을 찍으라며 `포토,포토`하셨다.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시선을 끌었는데,특히 조개모양을 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깊었다.

오른편으로 난 작은 공간엔 우물로 사용했던 흔적도 있었다. 

 






한바퀴 다 돌아봤자 채 20분도 안되는 작은 마을,아헤스였다.

뭐가 볼게 있을까 싶었는데,마을을 한바퀴 도는 동안 보물찾기를 하는듯 흥미로웠다.  

특히 얼기설기 이어붙인 담벼락이 인상적이었다.

인적이 없어 도대체 사람이 살고있는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예술가의 집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부분이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었는데,다 쓰고 난 생활용품들로 뭔가를 표현했다.

칫솔에서부터 빗,플라스틱 용기,면도기,심지어 알약 껍데기까지 작품의 소재로 쓰고 있었다. 

어떤 작품은 조금 섬짓하기도 하여 언니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캐롤라인은 전직 선생님답게 우리가 알아듣기 쉽도록 또박또박 대화를 이어나갔다.

누가 선생님 아니랄까봐 질문을 하나 던지고는 한사람씩 돌아가며 대답하게 했다.

너는 전공이 뭐니? 너는? 그리고 너는? 이렇게...

어느 알베르게에서 만난 멕시코남자의 코고는 이야기를 할땐 너무나도 실감나게 표현하여 우리 모두 배꼽을 잡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방을 옮길 정도였었는데,오늘 그 멕시코인이 이 방에 없어 천만다행이란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서도 알아주는 코골이가 있다는걸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특이하게 오토바이 소리를 내기도 했고,가끔은 잠꼬대까지 하는 Y가 있는데..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오늘밤은 제발 그 Y가 오토바이를 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