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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3일 : 부르고스~온따나스(31.1km)



제13일 : 부르고스~온따나스(31.1km),6시간 20분


2019년 10월 1일


모든 순례자들이 두려워하는 메세타 구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메세타는 600~760m의 평균고도를 유지하는 스페인 한가운데 있는 건조하고 거대한 고원지대다.

앞으로 레온까지 일주일정도는 풍경변화 없는 평평한 길을 지평선을 바라보며 걸어야하는 어려운 숙제가 내 앞에 놓여있었다.

순례자들중에는 이 구간이 힘들어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점프하거나,자전거를 빌려 통과하기도 했다.


일찍 출발하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수선을 피우며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현관문 여는 시간이 6시 30분이었다.

그동안 체크인 시간은 있었어도 체크아웃 시간이 정해져 있는건 처음이라 난감했다. 

분명 어제부터 안내문이 붙어있었을텐데,그렇게 들락거렸는데도 왜 못봤는지 모르겠다.

나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현관문앞으로는 많은 순례자들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꼭 마라톤 스타트 라인에 서있는것처럼 보였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요이땅~!

우르르 몰려나가는 순례자들의 선봉에는 용수가 섰다.그 뒤로 나랑 영훈이가 뒤를 바짝 따랐다.

앞장서 갈땐 특히 까미노 시그널에 신경써야 했다.안그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다 알바를 하고 만다.


부르고스를 벗어나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가지를 빠져나가자마자 숲길을 지나고 고가다리를 통해 고속도로를 건넜는데,

등뒤로는 하늘이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새벽길 바짝 걷고나니,진이 다 빠졌다.

흙길을 만난 후부턴 보폭을 좁혀 걷기 시작했다.



식수대가 있어 세면기에서 받았던 물을 버리고 새로 채웠다.

바닥에 센서가 있어 그곳을 밟아야 물이 나오는 시스템이었는데,식수대를 이용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수도꼭지를 돌리거나 누르며 당황해했다.

바로 옆에 앉아 일단 행동을 지켜보고 난 다음에 당황하는 순간에 코치해줬다.

나도 부르고스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었다.

무심결에 센서를 밟고 물을 마셨는데,그 다음에 언니가 마시려니 죽어도 안되는거였다.

  나도 내가 어떻게하여 물이 나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는데,나중에 전망대 오르며 누군가 발센서를 누르는걸 보고서유레카를 외쳤다.





첫번째와 두번째 마을은 그냥 통과했다.

가야할 거리가 만만치 않아 bar에 앉아 꾸물거리다가는 뜨거운 햇볕과 사투할 시간은 그만큼 길어지는거였다.

우리 앞으로 브라질에서 온 레오네오가 걷고 있었는데,알아주는 코골이 아저씨라 순례자들의 기피대상이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는 성격이 참 밝고 유쾌하여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메세타가 시작되는 라베 데 라스 깔사다란 마을에서 충분한 휴식을 했다.

커피에 `빠따따`라 부르는 감자오믈렛을 바게뜨와 함께 든든하게 먹었다. 

 



bar의 한쪽 벽면은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각나라의 화폐와 메모들로 가득했다.

다들 뭘 기념하거나,누구누구와 왔다는 흔적을 남겼다.

나는 천원짜리 지폐 두장을 가져갔었다.

검색하여 들은바로는 숲길에서 강도를 만나면 천원짜리 지폐를 내밀면 아주 큰돈인줄 알고 해코지를 안한다 그랬다.

가기전에는 먼나라에서의 낮선생활이 두려운 나머지 별의별 상황까지 다 상상하여 하룻밤새 혼자 소설 몇 편을 쓰는 날이 많았다.

결국 가져간 지폐 두장은 아헤스에서 만난 캐롤리나와 아르수아에서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주인장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476km만 더 걸으면 된다.

걸어온 길이 300km가 넘으니 이것만해도 참 대견하다.

 

아인슈타인,간디,그리고 마틴루터킹의 모습을 사진과 똑같이 그려놓은 벽화를 지나고 예배당을 지났다.

예배당 주위로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

예배당을 어느만큼 지나오니 등뒤로 맑은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의 길을 축복해주듯..

 



추수가 끝난 누런 밀밭은 이젠 익숙한 풍경이었다.

여전히 끝도없이 지평선이 계속되었고,

여길봐도 저길봐도 평원은 거침없이 펼쳐져 있었고,풍경은 한시간을 걸어도 두시간을 걸어도 변화가 없었다. 





나무는 아주 멀리에 보이는 몇그루가 다였고,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딱히 없었다.

걷다보면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는데,뭐든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조금만 마음을 달리하여 걸으면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살면서 땅의 끝과 하늘의 끝을 바라보며 걸은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토록 맑고 깨끗한 날씨에 눈부신 하늘을 머리에 이고 걸은적도 거의 없었다.





풍경이 단조로우니 생각도 단조로워졌다.

몸의 고단함은 복잡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게 만들었다.

그저 두 발의 반복적인 움직임속에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끝없이 보이는 단 하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 목적지까지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언덕아래로 마을 하나가 보였다.몇가구없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긴 길 끝에 만난 마을이라 더 반가웠지만 쉽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아주 가파르게 내려가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길을 쉼없이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마을이 눈앞에 보이면 얼마나 걸릴지를 두고 내기를 하곤 했는데,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겼다. 









레오네오는 먼저 도착해 간식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나를 보더니 `미 아미고!`하며 외쳤다.

맞다.이곳에서는 다 친구였다.



함께 걸어준 참 심성고운 두 호벤들..!

말도 참 잘 들었다.

저기 의자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는 척좀 해봐! 이러면, 

언제나 사진속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다.

청춘이라 뭘해도 다 이쁘고 사랑스러웠다. 







다시 눈앞으로 끝없는 길이 펼쳐졌다.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어 따가운 햇살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하늘은 더 파래졌고,등산화 위로는 먼지가 더 뽀얗게 쌓여갔다.

건조한 날씨는 먼지를 유발하기도 했지만,건조한 날씨 덕분에 땀이 나도 축축하거나 끈적이지 않았다

몇시간을 걸어도 티셔츠에서 땀냄새가 나는일은 거의 없었다.

메세타 구간에서 비를 만나지 않은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비가 오면 온통 진흙길이라 고생길이 뻔했다.

계절이 가을이란것도 정말 천만다행이었다.한여름이었다면 뜨거운 햇살을 이겨내느라 고통이었을것이다.

    



평탄한 고원이라지만,길은 나즈막한 오르내림의 연속이었다.

지루하여 이 길이 언제 끝날지 견딜 수 없다가도,바람이 한점 달콤하게 불어오면 또다시 행복감이 몰려오곤 했다. 

누런 밀밭만 보다가 풀이 자라 연둣빛을 내는 평원을 지날땐 그림같았다.

연둣빛 초원이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였다.



리브 나무그늘 아래 등기대고 앉아 와인을 마시며 쉬고 있는 외국인 순례자를 만났다.

서로 무심한듯 바라보았다.

저런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건지...

맘만 먹으면야 여유를 가질 수도 있지만,맘먹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기쁨보다 앞으로의 길에 대한 막연함이 언제나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순례길이 다 끝날때까지도 나는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한편으로 긴장감과 조급한 마음을 늘 안고 있었다.



부엔 까미노!




덩그러니 놓여있는 신발하나..

밑창이 덜렁거려 테이프로 감싸고 걸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등산화 말고 별이엄마가 사 준 크록스 신발을 챙겨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하는일은 등산화를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는 일이었는데 알베르게마다 신발을 놓아두는 신발장이 따로 있었다.

크록스 신발은 실내에서나 시내를 돌아다닐때 신었는데,꼭 양말을 신어야만 했다.

몇시간동안 혹사당한 발을 보호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슬리퍼를 신고 맨발로 다니는건 또 한번 발을 혹사시키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도저히 발바닥이 아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마을도 없고 bar나 푸드트럭조차 하나 없는 평원이 계속되었다.

점점 체력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걸어도 걸어도 같은 풍경이 계속되어 지루해졌다.

돌무더기 너머로 풍력발전기가 보였지만,어째 자꾸만 멀어지기만 했다.





십자가상을 지나서도 풍력발전기는 여전히 자꾸만 뒤로 밀려나가고 있었는데,도대체 뭔 조화속인지 몰랐다.

나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다.

용수와 영훈이도 열나게 걷는데도 바람개비가 더 멀어져간다고 했다.

 


예약한 알베르게까지 5킬로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났지만,

체감적으로 느끼는 5킬로는 다른때와 사뭇 달랐다.

거리표시가 잘못 되었는지 5킬로 이상 걸은거 같은데도 알베르게는 커녕 마을조차도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용수는 여전히 흐트러짐없는 자세고,

영훈이는 더 깊이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군소리없이 꾸준하게 참 잘 걸었다.귀여운 투정을 들어야 재밌는데...

 



밀려나던 풍력발전기가 가까이 다가왔다.

왠지 지평선이 끝나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저 앞에 보이는 언덕위에 서면 목적지가 보일것만 같았다.

바람까지 불어오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영훈이 뒤로 말을 탄 한무리의 관광객이 달려왔다.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방향을 바꿀 줄 알았는데,우리를 향해 마구 전진을 했다.

지나가는 동안 한켠으로 비껴 부러운듯 바라보았다.

서부영화의 한 장면같이 아주 폼나게 달려왔다.




한무리의 말이 지나가고 우리앞에 놓여진건 김이 모락모락나는 말똥과 지독한 냄새였고,

똥을 피하기위해 넋놓고 멍하니 걷는일을 멈추었다.

 



발빠른 용수가 먼저 뛰어가 신호를 보냈다.

동그라미를 그리면 마을이 보인다는 뜻이고,

엑스자를 그리면 여전히 지평선이란 뜻이었는데,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어느때보다도 반가운 마을이라 감격스러웠다.

온따나스는 움푹 패인 분지에 그림처럼 나타났다. 




말을 탄 사람들의 종착지도 온따나스였다.

말을 세워놓고 가든파티를 하고 있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언니가 센스있게도 완전 시원한 맥주를 대령해 놓고 있어 다들 감동먹었다.

2시부터 오픈한다길래 bar에 앉아 쉬면서 스페인라면을 먹었다.

 

매운소스가 필요하냐 묻길래 오케이하니 통째로 가져와 수저로 푹푹 퍼주며 놀라워했다.

한숟갈이나 넣었는데도 크게 매운맛이 안느껴졌다.

국물이 우리나라 컵라면과 아주 비슷하여 국물하나 안남기고 용기를 말끔히 비워냈다.


침대당 10유로하는 후안 데 예뻬스 알베르게는 화장실과 샤워장을 같이 썼는데,무척 넓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갈아입을 옷가지를 놓아둘 공간이 없고 그저 몸뚱아리만 하나 들어가면 땡이었다.

물이 좋아 그런가 언제나처럼 비누로 머리를 감았는데도 빗질도 잘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건,화가팀 3명과 한방을 쓰게된 것이었다.

그 중에는 파리 몽파르나스역 동기도 있었는데,원래 무릎이 션찮은 상태에 왔다가 지금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했다

어쨌든..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어둠속에서 숨죽여가며 짐을 안챙겨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모두다 좋아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옷가지를 핀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햇살 좋은 곳에서는 화가선생님이 부르고스 대성당을 멋지게 그리고 계셨다.

외국인까지 몰려들어 그림감상을 하며 감탄했고,타이완이냐 물었을땐 더 큰 소리로 꼬레아라 대답했다.




저녁은 영훈이의 야심작 `크림파스타`였다.

스페인순대까지 구워 완전 황송한 밥상을 차려놓고 불렀다.

너무 맛있어서 접시에 남은 양념을 바게트 빵으로 싹싹 닦아 먹었다.

이쯤되니,나는 줌마 체면이고뭐고 영훈이의 다음번 요리가 기대됐고,

영훈이는 마을이 가까워오면 어떻게 저녁을 차릴지 항상 고민했다.


골목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부드러워지는 시간이 되었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골목은 아주 분위기 있었는데,순례자들 몇빼고는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조용했다.




골목에서 만난 경수언니가 아주 맛있는 홍차가 있다며 성당으로 안내했다.

각자 알아서 따라 마실 수 있게 놓아둔 보온병안에 들어있는 따뜻한 홍차는 정말 맛이 좋았다.

중간에 만난 장훈이에게도 안내하여 홍차맛을 보게했더니 아주 감격허며 두잔이나 마셨다.




성당안으로는 은은한 음악이 울려퍼지며 마음을 적셨다.






중간에 잠이 깨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새벽이면 득달같이 일어나 짐을 챙겼는데,점점 일어나기 싫어 뒤척였다.

 몸과 마음이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아직까지는 신이 잘 지켜주고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