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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4일 : 온따나스~보아디야 델 까미노(28.5km)



제14일 : 온따나스~보아디야 델 까미노(28.5km),7시간


2019년 10월 2일


10월이 되면서 기온이 급격하게 낮아져 새벽에 걸을땐 몸이 으슬으슬했다.

낮동안도 그늘에 있으면 너무 추워서 다운쟈켓을 입어야했고,밤으로는 침낭 지퍼를 끝까지 올려 얼굴만 내놓고 잤다.


우리가 주방에 앉아 꾸역꾸역 빵쪼가리를 먹는 사이,벌써 화가팀들은 나갈 채비를 마쳤다.

5시 30분 출발이다.

보아디야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다,어제 이미 메세타 구간이 어떤곳인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알베르게를 나섰다.

그늘하나 없는 한낮의 메세타 구간을 걷는건 사막위를 걷는거나 다름없었다.   

작렬하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될 수 있으면 일찍 출발하여 일찍 숙소에 도착하는게 답이었다.

그 덕분에 갈리시아 지방으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거의 매일같이 새벽하늘을 가득 메운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고,

마치 마법을 부린것처럼 아름다운 청색의 하늘을 보며 새벽길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었다. 


보야디야를 빠져나와 다시 광활한 평야위에 섰다.평원위로 난 아주 좁은 흙길이었다.

으스스한 짐승소리가 오싹하게 하더니,발끝으로는 야생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오가며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10km쯤 걸어 두번째 마을에 도착할 무렵에야 여명이 트기 시작했다.

까스뜨로 헤리스란 마을이었는데,중심가를 관통하여 노란 화살표가 이어져 있었다.

청색으로 변한 하늘은 도시를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었고,특히 곡선으로 그려져 있는 골목은 압권이었다. 






 

산후안 성당을 향해 걷는데,빵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간혹 운동하는 어르신도 있었고,바게뜨빵을 가슴에 안고 분주히 걷는 어르신도 있었는데,

마을에서 만나는 새벽풍경은 언제봐도 정겨웠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마을을 나와서야 비로소 날이 밝았다.

갈색의 텅빈 밀밭이 보이며 황량해 지더니,목재다리 너머로 언덕 하나가 나타났다.

저만치로 꾸불꾸불한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는 순례자들을 보니,고갯마루까지 오르는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완만해 보이는 언덕이지만,허릿길로 지그재그하여 오르는 길은 꽤나 힘들었다.처음엔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더니,

 고갯마루를 코 앞에두고는 아주 급격하게 올라쳐야만 했다.

숨소리는 거칠어졌고,차가운 기온에도 이마위로 땀이 맺혔다.



오를수록 탁 트인 전경이 발아래로 펼쳐졌는데,여전히 황량한 들판이었다.

그래도 소나무가 많아 눈은 시원했다.

언덕배기에는 햇살이 가득하여 눈이부신데,발아래로는 아직 햇살이 닿지 못하여 흐릿했다.

햇살을 향해 올라가며 꽤 여럿을 추월했지만,용수만은 따라잡지 못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용을써도 안되는게 있었다.







먼저 도착하여 여유만만인 두 호벤들~~

혈기왕성하여 몸에 열이 많을텐데,둘은 몇일전부터 버프까지 하며 무장하고 걸었다.

뒤이어 여러명의 한국인 순례자가 무리지어 올라왔다.

자리를 내어주고 서둘러 언덕을 내려가는데,햇살은 강해도 바람이 아주 서늘하게 불어왔다.




길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너무 급하다보니 지그재그로 걷는 순례자도 보였다.

경작지 사이로 난 길은 지평선 끝까지 기도 안차게 이어져 있었는데, 과연 이 두다리로 걸어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걸으면서 언제나 `인내`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 수련을 하곤 했다.

아무리 마음을 견고하게 다지고 다져도 어느순간 무너지기도하여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하며 반문하기도 했는데,

스스로에게 했던 엄중한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만 했다.





이제 더이상 헤네따도 베르나도 머냐도 볼 수 없었다.

까미노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날짜가 중반으로 가며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부엔 까미노`하고 인사하면 서로의 경계가 한번에 무너졌다.

길 위에 있는 순례자들 모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건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느리게 걷든 빠르게 걷든 버스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모두의 목적지는 한데로 모아졌다.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고 걸었던 길이다.

9시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순례길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늘이 있는 휴식공간에서 어느 순례자의 목에 걸려있는 사진하나를 발견했다.

언뜻봐도 그 분의 남편이 분명했다.하늘나라에 있는 남편분이랑 함께 걷는 중이었다.

가슴 한켠이 찡했다.

몽파르나스역 동기가 따라주는 시원한 쥬스한잔을 얻어먹고 다시 길을 이었다.


무쇠다리,프랑스 순례자가 뒤이어 오고 있었다.

생장 피에드포르 이전 지역부터 걸어 3달째 걷는 순례자였는데,존경스럽기 그지없었다.

유럽을 1년동안 횡단하여 걸었던 우리의 솔맨님 생각이 나면서 정말 대단한 일이었음을 다시금 생각했다.




농경지 사이로 트랙터 한대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마을을 지나며 bar나 성당을 지날때면 쎄요(도장)있느냐 물어보는게 일이었다.

그 분들이 직접 찍어주며 날짜를 적어주기도 하고,더러는 내가 직접 찍기도 했는데,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재미가 꽤 솔솔했다.

내가 여기여기를 들렀구나~하는 일종의 발자국을 남기는거랑 똑같았는데,

성당을 들르면 얼마라도 기부를 하여 순례자 분위기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하면 앞으로 남은 길을 신께서 축복하여 무탈할꺼라는 위안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진입했다.

강과 나무가 있는 풍경이 한동안 이어지더니,옥수수밭이 또 끝없이 이어졌다.

지난번 프랑스 아가씨가 말했던 그 옥수수밭이었는데,들큰한 고향의 냄새가 느껴져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멀찌감치 보이는 bar가 무척 반가워 걸음을 서둘렀다.

20km정도의 한계점을 걸어온 후였기에 에너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상하게 커피 한잔에 빵 한쪽으로 포만감이 들곤 했는데,매일같이 밥심이 아닌 빵심으로도 에너지를 내기엔 충분했다.








서늘해진 기온탓에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단조로운 풍경속에서 가끔 나무도 보이고,트랙터도 보이고 일하는 사람들이 보이며 몸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었다.  

시야는 매일같이 거리를 헤아릴 수 없이 좋다.

새파란 하늘,맑은 공기,그리고 눈부신 햇살은 까미노의 3종세트였다.

이렇게 좋은 날씨속에 걷고 있는 것이 큰 복임을 감사하고 또 감사해했다.

아울러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여건을 주셨다는것 또한 감사하고 감사해했다.

 





까미노에는 새들이 참 많았다.

숲을 지나거나 마을앞 우거진 나무 옆을 지날때면 새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발자국 소리를 듣고 후드득하고 날아갈땐 그 많은 새들이 어디서 숨었다가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많았고,

마을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둥지를 튼 모습도 빈번하게 볼 수 있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넘어서니, 멀리 오늘의 목적지,보야디야 델 까미노가 보였다.

흙길에 자갈길을 걷느라 발바닥은 매일같이 혹사당하고 있었지만,더이상 물집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저녁이 되어 발마사지를 할때면 혈색이 돌아 아주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점점 걷는것도 이골이 나는것 같았다.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와도 한참이나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일단 목적지만 시야에 들어오면 마음이 놓이고 걸음이 빨라졌다.

예약한 숙소를 취소하고 6킬로를 더 걸어 다음 마을인 프로미스따까지 가자며 으쌰으쌰~했던 처음의 호기는 다들 어디로 갔는지,

용수도 영훈이도 누구하나 입뻥긋하는 사람이 없다.

욕심을 부렸다가는 아마 십리도 못가서 발병날게 분명했다. 






엔 엘 까미노란 알베르게는 일인당 8유로였다.

마당으로 아주 정갈하게 꾸며진 정원이 있었고,정원을 가로지르면 아주 멋진 bar도 있었다.

그곳에는 간이매점도 있었는데,사과며 복숭아같은 과일값이 정말 저렴했다.

레스토랑 손님이 많아서 서빙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과일 몇개를 샀다.



숙소로 들어가면 언제나 카메라 충전부터 했다.

그리고 나서는 몸을 씻고,빨래를 하고,빨래를 널고,침낭을 펼쳐 잠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그런 다음에야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이곳저곳 쑤셔왔다.


바로옆으로 한국인 젊은 처자들이 자리잡았다.

우리처럼 각자 따로 와서 함께 걷는 중이라 그랬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레오네오가 같은 방이었다.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코골이로 유명한 몇명의 기피 대상이 있었는데,바로 그 중 한명이었다.

입실하자마자 하는 말은 이랬다.

`오늘까지는 mi amigo이고,내일부터는 no mi amigo가 될거다`

그러니까 오늘밤을 겪고나면 우리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게 될거라며 미리 자백(?)을 하는거였는데,얼마나 재밌게 이야기를 하는지 깔깔대며 웃었다.

알베르게 주인은 이곳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일이니 이해해야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암요..이해하고 말고요..


볕으로 나오니 뜨거웠다.

그렇다고 그늘로 들어가면 또 추워서 닭살이 돋았다.

아이스크림하나 먹고 맥주로 요기를 하고 나서 일주일만에 또 손톱정리를 했다.

조금만 웃자라도 견딜 수 없는 평소 습관은 순례길에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스페인은 닭이 얼마나 큰지 닭다리 하나만 뜯어도 배가 불렀다.

거기에 샐러드와 후식,그리고 와인까지 곁들이면 배가 벙벙하여 저녁산책은 필수였다.

내 앞으로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온 rand가 앉았다.

목소리가 얼마나 나긋나긋한지 한마디하면 귀를 쫑긋 세워야 말소리가 들렸다.

예전에 은퇴하기 전,유고에서 일한적이 있으시다 하는데,그 다음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시늉만 했다.


닭고기만 뜯고 후딱 끝내면 좋으련만 오늘도 되지도 않는 영어 쓰느라 고생이 많은 산여인..

눈이 마주치면 자꾸만 말을 시키는통에 닭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와인이라도 마셔 혀가 좀 꼬부라지면 좀 나을까 싶었는데,여전히 혓바닥 버벅거리기는 매한가지였다.

중간에 대화가 끊겨 내가 그렸던 인물화를 하나씩 보여주며 맞춰보라 했더니만,

`오드리헵번,엠마왓슨,아만다 사이프리드`하며 척척 알아맞춘다.

안젤리나졸리 그림을 보여줬을땐 이름이 생각 안나는지 `브래드피트 와이프`라 그래서 한참 웃었다.

그렇게 또 까미노에서의 인연이 맺어졌다.

내일 일정도 나랑 똑같았다.    

 


와이파이도 잘 안잡히고 보다폰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아 광장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주인이 그러는데 광장 어딘가에서 신호가 잡힌다 그랬다.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벤치 구석 부근에서 간신히 신호를 잡을 수 있었다.

몇번 신호가 끊기기도 했는데, 그래도 다음날 숙소예약을 잘 마쳤다.

그리고 언니가 내일 타고 갈 택시도 예약했는데,택시 예약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다.

내일,9시,엔엘까미노 알베르게 정문..마지막에 중요단어 세마디를 확인시켰더니, `무이 비엔`했다.

그럼 다 됐다는 표시였다.  




붉게 물든 석양빛이 아름다운 저녁이었다.하늘위로는 초승달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레오네오의 코고는 소리는 생각보다 참을만했는데,

하필 화장실 문앞에 침대를 배정받았기 때문에 변기물 내리는 물소리를 더 참을 수 없었다.

침대도 눅눅하여 자꾸 이곳저곳이 가려워 밤새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