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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5일 : 보야디야 델 까미노~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24.6km)


제15일 : 보야디야 델 까미노~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24.6km),5시간 30분


2019년 10월 3일


6시가 다 되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불도 못켜고 손을 더듬어 가며 짐을 챙겨 6시 반이 되어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침기온이 차가워 바람막이를 입고,지퍼도 끝까지 다 올렸다.


안개가 잔뜩 끼어 랜턴불빛이 흐릿했다.

마을을 벗어나 얼마안가 오른편으로 긴 수로가 나타났는데,서서히 여명이 트기 시작하며 수면위로 데칼코마니같은 풍경이 그려졌다. 

새벽빛 고스란히 수면에 투영된 풍광에 취해 마음이 들 떠 자꾸만 걸음이 멈춰졌다.



여명빛 짙어지며 들판위로는 하얀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을랐고,하늘은 오묘한 색으로 물들었다.

딱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색으로 물든 하늘은 차가운 색이었다가 점점 따스한 색으로 변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을 다 분위기있게 만들었다.

 


나뭇가지에 가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들판의 풍경이 어느 순간 한눈에 들어오며 또 한번 감동했다.

혼자만 호들갑이지 앞서가는 두 호벤은 영 관심이 없는듯 했다.

용수는 딱 두번 서서 사진을 찍더니 금세 저만치로 달아났고,

영훈이는 주산지의 풍경과 비슷하다면서도 무심한듯 바라봤다.






수로변을 걷다보니 운하같이 생긴 아주 큰 수로가 나왔고,수문 위를 걸어 프로미스따란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수문위를 걸을땐 물소리가 막 빨려들어갈거처럼 우렁차고 무시무시했다.


까페 꼰 레체에 보까디요를 주문했다.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컸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쎄요도 찍었는데,그냥 동그란 모양안에 bar의 이름만 새겨넣은 아주 평범한 모양이었다.

총 여덟페이지 중에 벌써 네번째 페이지도 거의 다 채워져 갔다.

들르는 곳마다 찍다보면 순례자여권을 더 구입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지금부터는 적당히 봐가며 찍기로 한다. 




아스팔트길과 나란히 하여 마을로 진입하는데,그제야 내 앞으로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길 걸을땐 딱 우리 셋만 있을뿐 아무도 안보여 참 이상하다 했었다.

서둘러 나온다고는 하는데도 언제나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고,

걸음이 날쌔다 하는데도 언제나 나보다 날쌘돌이들이 많았다.    





마을 주민 하나 다니지 않는 아주 조용한 마을 하나를 지났다.

언제나처럼 스틱을 짚지 않고,발소리도 죽여가며 살곰살곰 걸었다.

가끔 걷다보면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블라인드로 가려 너무 썰렁하다 느낄 정도였는데,알고보니 이유가 다 있었다.

우리나라의 블라인드는 건물내부에 커튼형식으로 부착되어 있는데,스페인은 달랐다.

건물 밖에 부착되어 창의 덧문형식으로 되어 있는데,강렬한 햇볕을 피하기 위한 그곳 사람들의 독특한 형식이었다.

창문 안으로는 셔터문이 부착되어 있어 정말로 햇볕 한줌 들어오지 못하도록 원천봉쇄를 하고 있었다.  



뽀블라시온 데 깜뽀스를 나와 두갈래로 난 갈림길을 만났다.

왼쪽은 다리를 건너 도로와 나란히 걷는 루트고,오른쪽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도로를 조금 벗어난 한적한 길을 걷는 루트였다.

혼자였으면 고민의 시간이 많았을텐데,용수는 거침없이 다리를 건너는 루트를 선택했다.



수피가 새하얀  나무들이 일렬로 줄지어 빼곡히 있는가하면,새파란 가지가 축 늘어져 바닥을 향해 있는 나무도 있었다.

누군가 가지를 잘라 길을 만들어 놓아 그 사잇길을 통과했다.

도로와 나란히 걸으며 가끔씩 지나가는 차를 보며 걸으니 크게 심심하지 않았다.

다행히 바닥도 고른 흙길이었다. 




벤치에 앉아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참 정겨웠다.

올라,부에노스 디아스!

부엔 까미노!

그 옆으로는 대학 졸업식때 입는 학사복과 비스무리한 옷을 입고 있는 동상하나가 서있었다.






이전 마을에서 5킬로 조금 걸어 도착한 비야르멘떼로 데 깜뽀스!

집만 몇채 모여있을 뿐,인적하나 없었다.가끔 집앞으로 개들이 있었지만,익숙한듯 멀끔멀끔 쳐다보기만 할 뿐 짖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마을풍경이 참 좋았다.

투박한 담벼락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고,덧대어 아무렇게나 메운 흙담조차 멋스러워 보였다.




추수 끝난 밀밭위로 한무리의 양떼들이 딸랑딸랑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이동중이었는데,무언가 먹을것이 있는지 하나같이 입을 바닥에 대고 있었다.

양몰이 개는 보이지 않았고,양치기 아저씨가 나무 지팡이를 들고 양몰이 중이었다.





길은 계속하여 도로와 나란히 하여 이어졌다.

키다리 그림자가 조금씩 작아지면서 햇살도 무자비하게 내리쬐기 시작했고,

등산화는 하얀 먼지로 뒤덮였다.

그래도 누구나 다 복받은 날씨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내 앞으로는 통풍아저씨가 힘겹게 걷고 있었다.

갈증이 심해 딱 한잔의 맥주를 마셨던게 화근이 되어 통풍이 도졌던 모양이었는데,병원을 찾고 있었다.

레온까지 가신다는걸 오늘의 목적지에 보건소가 있다는걸 알려드렸더니 아주 감사해했다.

외국인 순례자와는 나이 많은 어른도 이름을 부르며 친구로 편하게 소통했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순례자들을 만나면 서로 호칭부터 데면데면하여 거리감이 생겼다.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을때도 오히려 외국인 앞에서는 거리낌이 덜해 그들과 똑같이 속옷을 보이며 갈아입곤 했는데,

우리나라 순례자들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쑥쓰러워 샤워실까지 가서 갈아입곤했다. 



목적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전날 묵었던 보야디야에 비하면 아주 큰 마을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햇볕속에서 벗어나고싶어 열불나게 걸었더니,발바닥에서도 열불이 났다.

목적지가 나타나면 어서빨리 숙소에 들어가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싶다는 마음 뿐이었는데,

벗고나면 발에 땀이 차서 하얗게 불어 있었다.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벨을 눌러 안내 데스크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는데,외국인 순례자가 들어오더니 벨을 눌렀다.

`에스삐리뚜 산또`라는 알베르게는 성당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나이드신 수녀님이 접수를 하고 계셨다.

스페인어 몇마디에 무척 반기더니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며 용수랑 나를 모자지간이냐 물었다.

아공..그런 아들하나 있음 소원이 없겠다. 


방을 안내하는 젊은 청년은 일한지 얼마안되는지 일이 서툴러 등산화를 이리저리 들고 다니게 했는데,

언니가 일회용시트를 못받았다하니 번개처럼 달려가 가져다 주었다.


12명이 한방을 썼는데,단층이라 좋았다.

일회용 시트를 깔고 두꺼운 담요는 따로 마련된 공간에 가져다 놓았다. 

같은 방에는 눈에 익은 한국인 순례자도 있었는데,배도 안고픈지 식사도 안하고 잠만 자고 있었다.

코고는 소리가 어찌나도 요란한지,외국인 순례자 몇몇이 흉내를 내며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을에 가면 언제나 슈퍼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알아봤다.

그래야 다음날 먹을 아침과 간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DIA라는 큰 슈퍼마켓이 있어 몇가지 과일과 음료를 사고 있는데,캐나다에서 온 존도 뭘 사고 있는 중이다.

새신발을 샀다고 자랑하더니,즉석 빠에야랑 샐러드가 저녁이라며 장바구니를 보여준다.

맥주 한잔 마시며 오믈렛 한쪽과 세가지 소스와 함께 나오는 감자튀김을 주문하여 점심을 대신했다.

바게뜨는 덤으로 나왔는데,배가 불러 미처 다 먹지 못했다.

순례길에서는 레스토랑마다  빵인심이 참 후했고 맛도 참 좋았다.

어떤 식탁이든 기본적으로 빵이 나왔고,더 달라해도 따로 돈을 받지도 않았다.

`마스 빤 뽀르 파보르(빵 더 주세요~)`하면 어떤날은 처음보다도 더 후하게 가져다주기도 했다.

겉은 아주 투박하고 단단하지만,속은 아주 부드러웠다. 

간혹 음식이 짜면 중화용으로 먹기도 했고,접시를 싹싹 비워 먹을때 청소용(?)으로 쓰기도 했다.



저녁은 영훈이가 고기파티를 열어주었다.

지나가는말로 용수한테 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을 했더니만,그걸 영훈이한테 전했던 모양이었다.

맛도 맛이지만,데코레이션에도 아주 신경을 썼는데,아보카드 썰어놓은거며 수북하게 샐러드 담아놓은 솜씨가 기똥찼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대만 순례자는 접시를 나를때마다 `쩐 빵!!`하며 부러워했는데,

다 차려놓은 밥상은 완전 황송하여 미안할 지경이었다.

 


맛있는건 나눠야 한다며 장훈이도 불렀다.

내가 뭔 복이 있어 그렇게 어여쁜 호벤들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햇살이 누그러질 시간에 마을로 나갔다.

 차가 다니는 교차로 중앙에는 순례자상이 있고,그 앞으로는 산타마리아 성당이 고풍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어슬렁거리며 마을 이곳저곳을 쑤시고 돌아다니는건 하루의 마지막 일정이었는데,

어느날은 배가 출출하여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아주 달달한 푸딩을 사먹기도 했는데,2유로만 주면 아주 고급진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었다.






수도원 앞으로는 기이하게 생긴 나무들이 쭉 심어져 있었다.

가로수로 자주 봤던 나무였는데,언뜻보면 김연아가 한쪽 다리를 들고 뱅글뱅글 도는것 같기도 했다.






광장이 점점 시끄러워졌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인,킥보드를 타는 아이,벤치에 앉아 있는 어르신,야외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사람등등 참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대로 그들만의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다 또 알베르게로 가는 길을 잃었다.

구글 지도를 켰는데도 계속 어느 한곳만 맴돌며 도무지 큰 대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가는 수녀님의 도움을 받아서야 찾을 수 있었는데,방향만 알려줘도 되는데도 알베르게 문앞까지 착 데려다 주셨다.

무차스 그라시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