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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6일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26.6km)


제16일 :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26.6km),6시간


2019년 10월 4일


무려 17km동안 마을이나 bar가 없어 `마의 17킬로 `라 일컫는 구간을 걸어야하는 날이었다.

도대체 어떤길일까 궁금하기도 하고,긴장도 되어 충분히 간식을 준비하여 일찍 알베르게를 빠져나왔다.


2시간을 걸어서야 서서히 날이 밝았다.

강도 건너고 아스팔트길도 걷고 흙길도 걸었는데,밧데리를 교환할때가 되었는지 랜턴빛이 흐릿해 신경을 바짝 썼다.

매일매일 색다른 새벽풍경을 보곤 했는데,유난히 새벽빛이 따스해 까미노 풍경은 더없이 예뻤다. 



해뜨기 전의 하늘은 무척 강렬했다.

마침 키 큰 나무들이 일렬로 심어져있어 멋진 그림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까미노의 새벽풍경에 점점 빠져들었다.

하늘 가득 촘촘하게 박힌 별을 헤이다 걷다보면 차가운 하늘은 점점 따뜻하게 바뀌었고,

지평선 위로 하루해가 뜰 땐 온세상이 붉었다.

하늘색이 똑같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고,분위기는 매일같이 새로웠다.

까미노가 선사했던 새벽풍경은 집에 와서도 아주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여전히 길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작은 자갈돌은 여전히 발바닥을 불나게 했고,또다시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기 시작하면서 그림자가 길어졌다.

해를 등지고 걷는데도 양쪽 볼이 후끈후끈거렸다.



메세타 구간의 풍경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가끔가다 덩그라니 나무들이 몇그루 있을뿐,끝없이 이어지는건 밀밭과 보리밭 옥수수밭이었다.

길가에는 그늘한 점 없고,하늘과 땅은 언제나 맞닿아 있었고,구름은 언제나 눈높이에 걸려있었다.

길 위에서는 그저 앞만보고 걷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일이 없었다.

그런 단순함이 바로 메세타의 가장 큰 매력이었는데,한편으론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했다.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살펴보니 비를 피할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공간이었다.

볼일이 급해 건물 뒷편으로가니 완전 화장실이 따로없었다.

허허벌판에 몸을 가릴 수 있는 엄폐물이 나왔으니,누구나 같은 생각을 한게 분명했다. 




까미노가 무척 한산했다.

악명높은 구간이라하여 점프를 한것인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전거 한대가 지나가고 발가락 양말을 꿰매고 있었던 그 호벤이 앞으로 지나갔다.

자꾸 마주치다보니 정이 들어 스스럼없이 `어이,호벤!`이렇게 불렀다.

늘 화가아저씨랑 한 팀이었는데,오늘은 혼자였다. 

몸이 꽤 우리우리한데도 화가팀 셋중에서 가장 걸음이 빨랐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마을은 언제나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다리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고,무엇보다 bar에서 요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bar에 들르지 않아도 마을길을 통과하다보면 저절로 재충전이 되었다. 





커피와 사과파이를 주문하고,쎄요도 찍었다.

주인이 바뻐 내가 찍고 날짜도 적었는데,꼬부랑 지팡이를 들고 있는 아주 멋진 그림이었다. 


레오네오 일행도 뒤이어 도착하며 아주 큰 액션으로 우리를 반겼다.

오우,미 아미고~~!

그리고나서는 양쪽으로 볼뽀뽀~~

늘 색짙은 선글라스를 꼈는데,오늘은 알록달록한 머리수건까지 쓰고 있어 더 액티브해 보였다.

볼때마다 웃음을 유발시켜주는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장훈이가 막 도착했는데,족저근막염이 생겨 컨디션이 영 안좋단다.힘을 내요,훈~~



작은 마을길은 언제나 정갈하고 소박했다.

인적이 없는데도 한결같이 깨끗했고,예쁘게 가꾼 화분들을 길옆이나 창문,그리고 화단에 내놓아 보는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언제 또 스페인의 작은 골목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내가 언제 또 스페인의 시골정취를 느낄 수 있을까?

까미노에서 만나는 마을은 투박하지만 멋스러운 곳,특별한것 없지만 아주 특별함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도로와 나란히 하여 길이 이어졌다.

하도 발바닥이 아파 도로 갓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다시 내려서고,다시 갓길을 걷다가 다시 내려서기를 반복했다.

고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은 발바닥에 끊임없이 무리를 주어 아프게 만들었다.

발목 앞쪽 근육도 땡겨오며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돌 화살표에 감동..


또 감동..

자잘한 돌을 모아 모양을 내느라 품이 좀 들었겠다.

약속한듯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유난히 지치는 날이었다.

바람 한점 없었고,햇볕은 더 극성맞게 내리 쬐었다.

햇볕가리개를 뒤집어 썼지만,사정없이 쏟아지는 햇볕을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땀은 쉴 새없이 흐르며 눈으로 들어가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고,배낭은 한없이 목과 어깨를 짓눌렀다.


`두려워하면 안된다.

하지만 열망해서도 안된다.

한걸음씩 내딛다보면 길은 어느새 지나갈테니까.

아무것도 바라지 말 것,두려워하지 말 것,기대하지 말 것.`

영화 `나의 산티아고`에서 주인공 하페가 했던 말을 끊임없이 되뇌이며 내 앞에 놓여진 길을 걸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름도 참 길었던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



미리 예약해 두었던 알베르게가 있었지만, 너무 외진곳이라 마을과 가까운 알베르게를 들어가봤더니 역시나 full이었다.

단체로 온 팀이 미리 다 선점해 버린 후였다.

알베르게 주인이 무척이나 미안해하며 문앞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신다.

 할 수 없이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어제 예약해 둔 알베르게로 향했다.

마침 브라질 3인방도 왔다가 우리와 함께 발길을 돌려 같은 곳으로 향했다.

마을과는 500m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12시에 문을 연다길래 배낭을 줄세워놓고 정원에 앉아 기다렸다.

레오네오는 지치지도 않은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나를 미쉘 오바마라 부르며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미쉘,너 결혼했니?

당연하지..

근데 남편은 왜 같이 안왔어?

그 사람은 돈벌어야 하거든..나를 위해..


12시가 되어 체크인을 시작했다.

아주 차가워보이는 까칠한 여주인이 차례차례 침대배정을 했는데,4인실과 10인실 중 고르라했다.

2유로 아낄 생각에 10인실을 택했는데,먼저 온 레오네오 일행이 침대 1층을 죄다 차지한 후였다.

외국인 남자 윗층에서 잘 생각을 하니 이건 아니다싶어 다시 데스크로 가서 4인실로 바꿔달라 했더니 주인여자 얼굴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귀찮게 왜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냐 이거였겠지..

`로 씨엔또(미안하다)`하니,입으로만`데나다(괜찮다)`하며 여전히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문제는 나중에 일어났다.

버스시간이 늦어 1시넘어 언니가 도착했는데,글쎄 돈을 안받았다며 8유로를 내라는 거였다.

내가 이미 언니몫까지 계산을 마쳤는데..참 내..

내가 아무리 냈다고 해도 `No`하며 아주 단호하게 발뼘을 하는데,말이 짧으니 더이상 우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8유로를 더 내고 뒤돌아서 엄청 욕했다. 

산또 도밍고 가는길에 만났던 푸드트럭 청년에 이어 두번째로 만났던 어글리 에스빠뇰이었다.  


알베르게에 딸린 bar에서 맥주 한잔과 보까디요로 요기했다.

너무 커서 3분의 1은 남겨 다음날 아침으로 먹었다. 


여주인이 하도 까칠하여 빨래도 정원끝에 있는 빨래터를 이용했다.

보통은 샤워를 하며 함께 하곤 했다.기다리는 사람이 있을땐 불가능했지만..

외부에 있는 빨래터는 아주 찬물인데다 높이가 맞지않아 까치발을 들고 허리를 깊이 숙여야만 해서 많이 불편했다.

 

마침 같은 곳에 머무는 경수언니랑 한 테이블에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생선요리를 주문했는데,부드럽고 아주 맛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사과는 내일 간식용으로 주머니에 넣었다.

Rand도 식사중었는데,이틀만에 보는데도 무척 반가웠다.


주인여자와는 달리 서빙하는 호벤은 아주 친절했다.

언니가 내일 이용할 택시를 불러달라 부탁했더니만,수소문하여 택시번호 하나를 적어줬다.




마을은 너무 작아 둘러볼 것도 없었다.

성당도 굳게 닫혀있었다.



매일 저녁이면 다음날 가야 할 밑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넣는데,내일 일정은 숙소가 불안정하니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몇 안되는 알베르게중에 하나는 문이 닫혔고,나머지 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알베르게가 있지만,선착순이라 적어도 26등안에는 들어야했고,

만약 모든 숙소가 full이라면,무려 13킬로를 더 가야 다음 마을이 있는 상황이었다.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되겠지~ 하며 기도했다.

`All is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