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티아고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제18일 : 엘 부르고 라네로~레온(37.3km)


제18일 : 엘 부르고 라네로~레온(37.3km),9시간


2019년 10월 6일


드디어 레온에 입성하는 날이다.

레온은 순례길에서 만나는 가장 큰 도시라 자못 기대가 큰데,37km를 걸어내야만 도착할 수 있다.

4시쯤 눈이 떠져 뒤척이다 그만 까무룩 잠이 들어 5시 넘어 일어났다.

불나게 배낭 꾸려 5시 30분 출발~

 

고도변화 없이 일직선으로 난 흙길을 도로와 나란히 하여 걸었다.

영훈이가 앞서고 내 뒤로는 용수가 걸었는데,밤길 무서워하는 나를 위한 호벤들의 기특한 배려였다. 

렐리에고스까지 13km를 걷는동안 순례길 위엔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었는데,조금 으스스해서 긴장되기도 했다. 

발끝으로는 가끔씩 들쥐들이 오갔다.

처음엔 깜짝  깜짝 놀라며 기겁했는데,이 또한 시간이 갈수록 별일 아닌듯 무뎌졌다.

순례길에서는 별게 다 적응이 되었다. 




황홀한 아침은 차분히 맞이하지 못했다.

하늘은 갖가지 오묘한 색을 내며 사위를 붉게 물들이고 강렬한 빛을 쏟아냈지만,걸음을 늦출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오늘은 정말 갈길이 멀었다.

바닥이 고른 도로를 걷는게 속도도 빠르고 발바닥에 무리도 덜 가서 차가 오는지 살피며 갓길을 걸었다.

 




도로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를 즈음,뒤돌아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아름다운 색채쇼를 보는듯했다.





아침빛에 취해 오는동안 어느새 만시야에 도착했다.

만시야는 제법 큰 도시였는데,레온으로 가기전 이곳에서 묵어가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이것 저것 잘 갖춰진 큰 도시에서만 묵으면야 여러모로 좋겠지만,구간을 나누다 보면 그게 잘 안되었다.

나는 필그림이란 앱을 다운받아 31구간으로 나누어진 예시대로 따랐다.

구간별 거리며 남은 거리,그리고 알베르게 정보와 마을정보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아주 요긴하게 썼다.





20km를 걸은 끝에 bar에 들어갔다.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고,발바닥에서는 불이 났다. 



커피와 또스따다로 요기했다.

또스따다에는 사과쨈과 버터가 따라 나왔는데,사과쨈보다는 버터가 훨씬 더 잘 어울렸다.

굽는 시간이 있어 시간이 좀 걸린다는게 흠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영훈이는 도저히 안되겠다며 버스를 타겠다며 버스검색에 들어갔다.

용수마저 마음이 흔들렸는지 함께 버스를 타고가자 유혹했다.

용수는 한시라도 빨리 레온에 도착해 대도시의 풍취를 느끼고 싶어했고,영훈이는 내가봐도 발바닥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꿈쩍도 안했고,두 사람도 씨알도 안먹힐 아줌마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피치못할 사정이 없는 한,등짐은 내가 지고 두 발로 걸어서 간다는 다짐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단 하루라도 다짐을 지키지 못하면 내가 걸은 순례길에 어디 흠이라도 날거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얼마나 벼르고 별러 온 곳인데..



결국은 용수가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정 그렇다면 나 혼자 가겠노라 말하며 구차하게 의리를 운운했더니만,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을게다.

어쨌든..무차스 그라시아스고,앞으론 `의리 용수`라 부르마~~     





만시야 시가지를 빠져나가는 시간이 꽤 걸렸다.병원이며 보건소에 환전소까지 없는게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랬는지,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들판위로 옥수수밭이 이어졌고,군데군데 초록 벌판도 이어졌다.

뭘 심어 놨는지,일렬로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순례자도 있었는데,방향을 달리하여 걷고 있었다.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벤딩 존에서 자판기를 이용하다 잭팟(?)이 터졌다.

10유로를 넣고 1유로짜리 환타를 눌렀는데,거스름돈이 50센트로 와르르 쏟아졌던것이다.

배낭무게만 무거워졌다며 투덜대는데,용수는 옆에서 이랬다.

우와~이모님 잭팟 터졌네요~~!


배낭을 내려놓고 영훈이를 기다렸다.

일요일이라 버스운행을 안해 죽어라 뒤쫓아오고 있다는 메세지가 날라왔다.

얼마후 영훈이가 씩씩거리며 도착했고,

우리는 영훈이의 쌩고생으로 순례길에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려면 요일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도로를 따르다 다시 길은 숲으로 이어졌다.

숲 한켠에는 비박을 하고 있는 자전거 순례자가 있었다.

고개를 내밀며 `부엔 까미노!~`한다.




아주 오래 된 듯한 돌로 된 긴 다리를 옆에 두고,우회하여 만들어 놓은 다리를 통해 마을로 진입했다.



다리이름은 바로 `비야렌떼 다리`였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간 덕분에 글을 읽을 수 있고,조금이라도 소통을 할 수 있어서 큰 보람을 느꼈다.

1년 반동안의 노고가 헛되지 않아 정말 뿌듯했는데,

집으로 돌아가면 앤드류 선생님과 예씨 선생님께 큰절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비야렌떼를 빠져나오니 햇볕이 장난아니게 쏟아졌다.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고,티셔츠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걸을때마다 먼지도 장난아니게 푸석거려 목도 무척 칼칼했다. 






어찌나도 갈증이 나던지 식수대를 만나자마자 엄청난 물을 마셔댔다.




배낭이 무거워진다는건 한계가 왔다는 신호였다.

왼쪽어깨가 아파왔고,발목 위쪽도 점점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다시 배낭을 짊어지니,거의 비박배낭 수준의 무게로 느껴졌다.

남들은 이것저것 버리고 간다는데,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버릴것이 없었다.

 



하얀 길위로 하얗게 먼지가 날렸다.

언덕은 나즈막하게 보였지만,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결코 쉽게 오를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아주 저만치에 사람들이 개미만하게 보일 정도면 꽤 먼 거리라 생각하면 되었다.




나도 힘들지만,너도 참 힘들어 보인다.

페달을 열심히 밟는데도 크게 진전이 없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정말 까마득한 길이었다.

완전 기진맥진해서 먼지고뭐고 바닥에 풀썩 앉아 쉬었다.


한걸음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도로옆의 갓길을 두고 왼쪽으로 난 숲길을 택했다.

도로 갓길은 아주 좁을 뿐더러 대형차들이 너무 많이 다녀 위험했다.

자전거 순례자말고는 다 숲길 내리막으로 향했다.

그리고나서 도로 위에 나있는 파란색 다리를 건너는데,저 아래로 드디어 레온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마무시한 규모의 레온이 한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햇살에 등짝이 따가워 미칠 지경이었고,땀이 쉴새없이 뚝뚝 떨어졌지만, 빨리 가고 싶다고 빨리 걸어지지도 않았다. 





시가지에 들어서자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축제기간이라더니,무슨 행사가 있나?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가 곧바로 조용히 뒤돌아 나왔다.

추모식이 아주 엄숙하게 치뤄지고 있었다.




호벤들과 헤어져 혼자 커다란 성벽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버거킹 간판을 봤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예약한 알베르게도 달랐다.

언니와 나는 대도시에 왔다고 조금 사치를 부렸는데,일인당 15유로하는 곳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북적이는 사람들,요란한 음악소리,자극적인 음식냄새..

과연 레온주의 주도답게 아주 번화해서 눈이 막 돌아갈 정도였다.

조금 낯설기도하여 어리둥절했고,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관광지 분위기가 아주 제대로 났다.

꼬마 기차도 다녔고,대성당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더 북적였다.

 



밀리고 밀려 가느라 까미노 시그널을 놓치고 말았다.

숙소가 대성당 부근이라 했으니,대성당만 찾아가면 되겠지..



대성당 도착!

괜히 지도 보며 왔다갔다 하느니,언니한테 전화해보는게 빠르다.

설명해도 못알아들을게 뻔하다 생각했던지,언니가 성당 앞으로  나왔다.





대성당에서 끽해야 2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곳에 숙소가 있었다.

장소가 정말 기막히게 좋았다.

하루 15유로씩 이틀을 예약했다.


숙소가 얼마나 깨끗한지 침구류는 말할것도 없고 화장실 세면기는 윤이 반짝반짝 났고,걸려있는 핸드타월도 뽀송뽀송했다. 드라이기도 비치되어 있었다.

주인여자는 엄청나게 세련되고 도회적으로 보였다.

긴 부츠를 신고 수시로 화장실이며 주방을 들락거리며 쓸고 닦고 해서 들락거릴때마다 신경쓰일 정도였다.

처음으로 침낭을 안펴고 침구류를 그대로 사용했는데,햇볕에 바짝 말린 이불냄새가 났다. 

 

여섯이 쓰는 방에 다섯명만 묵었는데,연세 드신 두 분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사촌사이라는데,한분은 캘리포니아에서 또 한분은 워싱턴에 살고 계셨다.

내일이면 기차를 이용해 산티아고로 가신다길래,난 아직 300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그랬더니,두툼한 약봉투를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했다.

난 old해서 못걸어..



언니가 미리 사놓은 신라면 2개와 짜파게티 2개를 끓여 점심을 먹었다.김치 대신 먹는 할라피뇨가 매콤해서 라면과 궁합이 참 잘 맞았다. 

떡 본 김에 어디 한번 배불리 먹어보겠다고 욕심을 부렸는데,둘이서 라면 네봉은 정말 무리였다.  



도시는 마침 주말이라 활기로 넘쳤다.

꼬마기차는 연신 오갔고,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순례자에서 관광객모드로 거리로 나왔지만,옷차림은 누가봐도 순례자의 모습이었고,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도 순례자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숙소 건너편 대문앞에는 항상 모자 쓴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주변으로 비닐봉다리가 몇개는 기본으로 있었는데,말끔한 차림으로 보아 노숙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음날은 옷차림이 바뀐채 친구랑 둘이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는게 아니었다.

저런 멋진 bar에 들어가 와인 한잔 마시며 의자에 폼나게 앉아있기라도 했어야 했다.     


스페인 북부에서 몇 안되는 가우디 예술품,보띠네스 저택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1894년에 완공된 네오클래식 양식이라 한다.

입장료 8유로를 내면 그 당시의 저택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패쓰~~ 

 

보띠네스 저택 앞에는 가우디가 벤치에 앉아 뭔가 적고있는 동상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1882년에 지어졌다는 구스만 궁전이 있었는데,지금은 네온지방정부건물로 사용되고있다 그런다.

어느새 몸의 고단함은 잊고 레온의 멋에 심취했다.



보띠네스 저택 옆으로 난 골목은 완전 북새통이었는데,

꼭 우리나라 풍물시장 분위기였다.

각종 주전부리나 각종 수공예 제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고,사람들은 발을 디딜 수 없을만큼 거의 밀리듯 움직였다.

소지품에 신경이 쓰여 크로스백을 두 손으로 꽉 끌어안고 잔뜩 긴장하며 구경했다.









길거리음식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은 어딘가 있어보이고 멋스러워 보였는데,

내가 먹을땐 왜케 없어 보이는지..

야심차게 젤라또하나를 들고는 구석에 앉아 누가볼까 얼른 먹어치웠다.






레온 대성당(Catedral Santa Maria De Leon) 부근을 어슬렁거리는게 제일 재밌었다.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가며 성당을 한바퀴 돌기도 했고,

멀찌감치 떨어져 한눈에 다 넣어보기도 했고,

가까이서 고개가 꺾이도록 첨탑끝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마치 고딕양식의 진수를 보는듯 첨탑은 하늘 높이 우뚝 솟아있었다.

암만 봐도 예술품이 따로 없었다.봐도 봐도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완성하는데 400여년이 걸렸다지,아마...






성당 뒷편의 성벽도 아주 멋스러웠다.

로마시대의 성벽으로 보였는데,너무 견고하여 놀라웠다.

대성당이든 성벽이든 분명 인간의 힘으로 지어졌을텐데,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이었다.

아마도 신의 힘이 보태졌으리라~~






병원건물 하나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아주 오래된듯 고풍스러워 궁전처럼 보였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오후의 거리 풍경이 참 이뻤다.

여전히 꼬마기차는 분주히 오갔고,

야외테이블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웠다.





하늘이 코발트 색으로 물들 즈음,다시 광장으로 나갔더니,

성당은 조명이 들어와 더욱 신비스러웠다.





성당앞으로 난 긴 줄이 궁금해 한 어르신께 물었더니,묻기는 물었는데 대답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딱 두마디만 알아듣고 얼른 줄을 섰다.

공짜,9시..



키크고 늘씬한 아가씨의 안내에 따라 착석하고보니,성당 내부를 구경하는줄만 알았는데,글쎄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였다.헐~~

이런걸 보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 하겠지.

미리 예약한 사람들은 정중앙에 앉고 나같은 공짜 관객은 모서리에 배치했는데,아무렴 상관없었다.


성당안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이 물밀듯 몰려왔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더욱 아름답게 빛났고,

오르간 선율은 성당 안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마음속 깊은곳까지 스며들었다. 

황미숙 역사에 길이 남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봤는데,

심지어 그곳은 스페인의 레온 대성당이었다.. 


숙소 열쇠 3개(대문,현관,방)를 챙겨 밤거리로 나왔다.

항상 다음날 일정을 신경쓰느라 해떨어지면 잠자리에 눕기 바빴는데,오늘은 여유가 넘쳤다.

다음날까지 레온에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니 야시장은 더욱 북새통이었고,먹거리는 더욱 다양해졌다.

보띠네스 저택 앞 광장에서는 락페스티벌이 한창이었는데,

갑자기 언니랑 나를 지목하여 `까미노!`하며 호응을 유도하는 바람에 손을 들어 박수를 치고 엉덩이를 좀 흔들어 주었다.







모처럼 긴장감없이 잠자리에 누웠다.

내일은 재충전하며 잘 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