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일 : 레온
2019년 10월 6일
순례길을 걸은지 처음으로 가져보는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어둠속에서 더듬어가며 짐을 꾸릴 필요가 없었고,온기 하나 없는 주방에 앉아 빵쪼가리를 꾸역꾸역 먹을 필요도 없었다.
늦잠도 자고 화장실에서도 조급함없이 여유있게 앉아있었다.
여덟시쯤 되어 거리로 나갔다.
불야성을 이루었던 어젯밤 흔적들은 온데간데 없고,청소차들이 물을 뿌려대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띠네스 저택앞에는 여전히 가우디가 뭔가를 쓰고 있었다.
숙소 바로 앞 bar는 막 문을 열고 있었다.
갓 구워 나온 빵은 언제 먹어도 풍미가 남달랐다.
막 내려낸 원두에 따끈한 우유를 넣은 커피도 언제 마셔도 참 맛있다.
다만 기분탓인지 순례길에서 먹는것보다는 조금 맛이 떨어졌다.
언니는 병원에서 약처방을 받기로 했는데,갖고 있던 처방전으로도 가능하다하여 다시 나왔다.
조금씩 무릎상태가 좋아지고는 있지만,아직 걷는건 무리였다.
혼자 속앓이를 했을 언니를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저 하루빨리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중국마트를 가다 광장에서 호벤들을 만났다.
노상의자에 앉아 아침부터 콜라에 츄러스를 먹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레온에 오면 도시스타일로 재정비를 하고 폼나게 돌아다니네 어쩌네 하더니만,다른때와 별반 차이없는 초라한 행색이었다.
삼색 츄리닝에 쪼리 신발 신고,허리엔 전대 하나씩 차고..
거리의 악사들은 다 실력이 좋은게 아니었다.
기타실력도 노래실력도 별볼일 없으니,지나가는 사람들도 눈길을 안주었다.
중국인 마트에는 별의 별게 다 있었다.
오랜만에 익숙한 봉지들을 보니 집생각이 났다.
집에 있는 사람도 분명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을게 뻔할 뻔자였다.안봐도 비디오다.
김치라도 꺼내놓고 먹음 다행인데..
아유,모르겠다.나나 신경쓰자..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도 골고루 샀다.복숭아,사과,자두..
납작복숭아를 먹고 싶었는데,많고 많은 과일 중에 그것만 없었다.
내일 아침으로 먹을 두툼한 빵도 사뒀다.
누군가 남겨놓고 간 코코아가 있어 한잔 마시다 문득 성당도 씨에스타가 있다는걸 깨닫고는 다시 서둘러 나갔다.
씨에스타는 보통 1시나 2시부터 시작해 4시나 5시까지 행해지고 있었다.
그 시간에 레스토랑에 가면 간단한 음료말고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슈퍼나 빵집,상점은 물론이고 약국도 아예 문을 닫았다.
높은 기온과 점심 후의 식곤증으로 인해 일의 능률이 떨어져 정해둔 일정한 시간동안 낮잠이나 휴식을 즐기는 문화인데,이십여일 머물다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낮동안은 뜨거운 햇살에 지쳐 휴식이 필요했다.
6유로를 내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정교하게 조각된 조형물이 남달랐다.
레온대성당은 로마시대에 목욕탕이 있던곳에 세워졌는데,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했다.
석재보다 유리가 더 많은 비율울 차지하고 있었고,120개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57개의 둥근창,그리고 3개의 장미창이 말이 안나올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1층으로 빙 둘러가며 한바퀴 도는데 한시간 가량 걸렸는데,감탄하느라 입이 계속 열려있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성가대석..
엄청난 크기의 파이프 오르간..
숙소 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앞에 아주 큰 슈퍼마켓이 있어 무척 편리했다.
샐러드와 함께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는데,얼큰한 국물이 들어가니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크게 한국음식이 땡기지 않아 뭐든 잘 먹고 있었지만,막상 또 눈앞에 보이면 입은 귀신같이 예전의 맛을 기억하고 마구 땡기게 만들었다.
면을 다 건져먹고나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고,밥과 함께 총각김치 하나 척 올려 먹고 싶고..
그렇게 몸의 기억은 연쇄적으로 반응하곤했다.
그래서 대도시에 오면 익숙했던 맛을 자연스레 찾았다.
다만,매운 냄새때문에 다른 숙박객들한테 조금 눈치가 보였다.
숙소주인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는데,오가며 인사도 하고 아주 부드러워 보였다.
짐을 풀어 침낭을 펴고 잠자리를 마련할 필요도 없고,빨랫거리도 없고,뭘 먹을까 고민할것도 없는 오후시간이 아주 여유로웠다.
간만에 가져보는 여유가 되레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침대에 누웠다가,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가,거리위 사람들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가,그렇게 오후시간을 느긋하게 보내고,
6시부터 시작되는 미사에 참석했다.
대성당과 붙어있는 박물관에서 있었는데,쎄요도 거기서 찍을 수 있었다.
나 이러다 독실한 종교인이 되는거 아녀~~??
경건하고 아주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무릎도 꿇고,스페인어로 기도문을 읽기도 했는데,마지막엔 서로 스페인식 인사를 나누며 악수도 하고 포옹도 했다.
30여분간의 미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줄서서 신부님이 주시는 무언가를 입에 넣었다.
언니는 그것을 `영성체` 라 알려줬는데,예수님의 피와 살을 뜻한다 그랬다.
옆에 앉아 아주 진지하게 미사를 드리던 한국인 순례자는 미사가 끝나고나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청했다.
나는 신기하여 연신 두리번거렸고,언니는 계속 훌쩍거리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긴 회랑을 따라 나오며 박물관 마당에 서서 다시한번 대성당의 위용을 실감했다.
성당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는데,고개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한눈에 담기지도 않았다.
솔맨님이 꼭 찾아 인증하라는 조형물은 바로 대성당 앞,박물관 가는길에 있었다.
그렇게 지나다녔어도 보이지 않았는데,주의해서 살펴보니 바로 보였다.
왼손으로 모양을 맞춰 인증샷을 찍어 솔맨님께 날려 주었다.
꼬박꼬박 밥때를 맞춰 열심히 에너지를 충전했다.
단백질 보충한다며 달걀은 네개씩이나 먹었고,과일도 골고루 먹어뒀다.
내일부턴 또다시 똥빠지게 걸을일만 남았다.
조용히 넘어가는 날 없이 오늘도 시행착오는 계속되었다.
기껏 사온 산미겔 맥주는 알콜 0.0%라 다시 슈퍼로 나가야 했고,
언니는 칫솔을 어디다 두었는지 찾지 못해 다시 슈퍼로 나갔고,
남들은 쉽게 쉽게 여는 현관문도 우리는 땀흘리며 겨우겨우 열었다.
다음날 언니는 세면도구 일체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그대로 숙소에 두고 나왔다.
한번 시행착오를 겪을때마다 둘은 완전 배꼽을 잡고 웃으며 자책했고,
그래도 오십대 아줌마 둘이 겁도 없이 이 먼곳까지 와서 이렇게 지내고 있는게 어디냐며 큰소리 쳐댔다.
맞다.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시 늦은 오후시간이 되어 거리는 번화해졌다.
가만 있을 수 없어 다시 거리를 쏘다녔다.
우리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며~~
성차별 폭력 반대~~
광장에는 아주 평화롭게 시위가 진행중이었고,뭐라뭐라 몇마디 외치고는 바로 흩어졌다.
대성당으로 가는 골목이 가장 번화했다.
축제가 끝나 야시장은 더이상 열리지 않았고,어제와 같은 공연도 없었다.
대성당을 한번 더 둘러보고 숙소로 들어가 오랜만에 몽몽님과 긴 문자를 나눴다.
`신는 양말마다 빵꾸가 나서 양말 3개 새로 샀어.`
`초록색 사물함에 새양말이 많은데 그것도 못찾고..돈도 많으시네.`
`빈 자리를 절실히 느끼는 중이야.`
`그러니까 있을때 잘해.`
무안하고 미안해 죽겠는데도 튀나오는 말본새는 완전 가관이었다.
이상하게 몽몽님한테만은 표현하는게 서툴고 인색했다.
몽몽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숙소에서 나가 어떻게 순례길을 찾는지,다음 숙소까지는 얼마나 걸리고 또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문자로 보내왔다.
어느날은 슈퍼가 없으니 참고하라 했고,또 어느날은 어느 수도원이 유명하니 꼭 찾아보라고도 했고,
또 어느날은 뭐가 맛있으니 먹어보라고도 했다.
내일숙소는 찾아가기가 수월해 보였다.
마을로 접어들면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재충전의 시간이 끝나고,이제 내일부턴 순례길 후반전이 시작된다.
무탈하게 마칠 수 있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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