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이야기/산행(2009~2019)

백봉산(경기 남양주시)

산행일 : 2010년 3월 11일

산행지 : 백봉산 590m

산행코스:남양주실내체육관-진곡사-수리봉-정상-창현리 청구아파트

산행이야기:꽃피는 춘삼월 날씨가 단단히 미쳤다.밤새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아침에 일어나니,온세상이 하얗다..큰 산은 엄두도 못내고,자주가는 백봉산으로 나선다.오늘은 멋있게 내가 리딩을 맡았다.

   

 남양주실내체육관부터 시작되는 등로를 걸으며,어마어마한 눈폭탄의 현장을 목격한다.

밤새 무슨 전쟁이라도 난것처럼,소나무와 잣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못해 나뭇가지는 물론이고,뿌리째 뽑혀져있고,

여기저기서 쩍쩍 소리를 내며 부러지기도한다..

행여나 내 머리위에서 떨어지는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

 

 

 

 

 

 

진곡사를 지나,능선으로 접어들자 그제서야 소나무폭격의 현장에서 벗어나고,

주변설경을 맘편히 감상한다.

 그동안 엄청 자주 찾은 산이었는데,이렇게 많은 눈길을 걷는건 처음이다.

그저 걷기좋은 길로만 알았던 이 길도,눈으로 뒤덮히니 환상의 은세계로 바뀌었다.

 

 

 

 

 

 

 

 

 

 백봉산 정상 590m

 

평내에서 올라온 산님께 콩막걸리 한사발 얻어먹고,

당초계획대로 창현리방향으로 접어드는데,발자국하나없다.

지난번 태백산에서 똥뺐던 생각이 스치면서 살짝 쫄았지만,기어이 그 길을 나선다.

그야말로 죽까정신,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정신으로 계획대로 밀고나간다.

 

 

 가면갈수록 등로는 심각해진다.더우기 길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왼쪽으로 빠지는 등로가 보여야하는데,가도가도 눈에 안띈다.

아리님앞에서 리딩한다고 폼은 폼대로 다 잡아놨는데,꼴이 말이 아니다..

아리님도 참 딱하기도 하시지..동서남북 점도 못찍는 날 뭘믿고,초행길을,

그것도 무릎까지 푹푹들어가는 눈길을 따라오셨을까...

안되겠다싶어 묘적사로 방향을 잡는데,몇걸음 안가 리본을 발견한다..다행이다..

방금전까지만해도 말이 아니었던 체면이,금세 말이 되게 체면이 딱 선다..  

 

 

 

 오르내림이 심상치않다.경치는 그만인데,

변변한 이정표도없으니,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감이 안잡힌다.

여러번왔던 길임에도 눈으로 도배를 해놓으니,도대체 영 딴판인 산으로 보인다.

아리님은 나한테 속았단다..

이렇게 멀고 힘든곳인줄 알았다면 안따라왔단다.

인생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닌가..속고 속이고..먹고 먹히고.. 

사실 나도,여름엔 시원하고 폭신하기만 했던 이 길이,이렇게 힘든줄을 몰랐다.

진작 알았다면,아리님께 6킬로길을 3킬로라고 꼽배기로 뻥은 안쳤을꺼다.

 

결국 아리님은,날이 어두워질것을 염려해,날더러 신경쓰지말고 먼저 가란다. 

앞에서 러셀만 해놓으면 달빛에 그 길따라 내려오신단다..

날더러 의리를 저버리라는 말씀..의리하면 황의리,평해황(黃)씨 28대손을 어찌보시고..

 

 

 

 

 

 발이 점점 무거워진다.모래주머니 몇개는 달고 간다.

녹는눈이라 아이젠에 쩍쩍 찰떡같이 잘 달라붙는다.

다행히 날머리가 가까워옴을 감지한다.

반대편에서 올라온 산님들도 만나고,등로도 많이 다져져있다..

 

 

 

 

 잣나무숲이 보이기 시작하고,아파트도 보이기 시작하고,

뾰족히 올라온 교회십자가도 보이기 시작한다.

익숙한 음악소리도 들리고,차빵빵거리는 소리도 들리고,불빛도 반짝거린다.

요란한 이 세상의 소리와 모습들이 참으로 정겹게 다가온다..

 

눈폭탄맞은 소나무들의 처참했던 현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자연의 어마어마한 힘에 놀랐던 하루..

다시한번 자연앞에서 겸손해야함을 배웠던 백봉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