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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야기/산행(2009~2019)

설악산 첫째날

산행일 : 2010년 8월 21일

산행지 : 설악산 1708m

산행코스 : 설악동-비선대-천불동계곡-희운각산장-공룡능선-마등령-오세암-수렴동대피소

산행이야기:불현듯 꺼낸 한마디에 후다닥 설악팀이 꾸려졌다.산속에 파고들어 자연과 동화되는 그 순간순간들을 맘껏 느껴 보기위해,자연을 닮은 이들과 함께 길을 나선다.. 

 

천불동계곡으로 들어서자, 서서히 여명이 튼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언제나 처럼 또 내 가슴이 뛴다.

산에서 맑은 공기속에 온갖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맞이하는 아침은 더없이 벅차다.

주고받는 대화 조차도 `걸림`이기에,조용히 음미하며 걷는다.

 

 

 

 거칠게 토해내는 호흡과함께,골을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잠시만 걸음을 멈춰서면,어느순간 쏙 들어가 버린다.계곡물소리에 마음이 정화되고,

          이 순간 만큼은 그 어떤 나쁜 기운도 삐집고 들어올 수 없을정도로 정신이 맑아지고 순수해짐을 느낄때쯤,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양폭산장앞 계곡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희운각으로 향한다.

 

 

공룡능선 갈림길에 선다.물보충을 위해 희운각까지 다녀올 사람을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하는데,내가 딱 걸린다.

게임의 세계는 냉철한법..연약한 척 콧소리좀 내볼까 하다가 이내 고쳐먹고,

물통 수거해서 씩씩하게 희운각으로 향한다.다행히 든든한 나의 셀파님이 뒤 따라와 주신다.

 

드디어 공룡의 등줄기에 올라 탄다.

파란 하늘 아래 기묘한 모양의 등줄기들이 뾰족뾰족 솟아있고,

저 아래 동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시계가 끝내준다.

 여러번 봤던  풍광이지만,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기막히고 멋진 풍광들..

신선대에 올라서서 공룡의 등줄기 들을 굽어 보고 있노라니 그 위압감과 위대함에 경외감까지 절로 생기고,

그 안에 코딱지 만도 못한 작은 모습으로 서 있는 나를 바라본다. 

 오늘은 발촉에 닿는 그 세밀한 느낌까지 다 기억하고,

바위 틈새에 피어있는 야생화 까지

하나하나 다 눈 맞추며,

 공룡의 거친 등줄기를  찬찬히 걸어 보리라...

 

 

 

 

 

 

 

 

 

 

햇볕이 점점 강렬해진다.배낭도 차츰 버거워진다.

헥헥거리며 똥개 훈련이 시작된다.

이럴땐 별 방도가 없다.말짱 다 즐기면 된다.

 오르막을 빠짝 치고 올라 갈때의 그 가슴 터질듯한 짜릿한 느낌을 즐기고,

 온몸을 타고 흘러 내리는 땀방울의 간지러움을 즐기고,

투박한 발걸음의 소리도 다 경쾌하게 즐기면 된다.

 그러고 나니,한줄기 바람도 감사하고,

걸을 수 있는 이 두 다리가 감사하고,

         내게 주어진 이 황금 같은 시간이 감사하고,

 동행한 산벗이 있어 감사하고...

다 감사의 조건이 된다..

 

 

 

 

 마등령을 1.7킬로 남겨둔 지점에서,

점심 식사를 하려던 계획이 행동식으로 대체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얼음 동동뜨는 시원한 콩국수나,

매콤한 비빔국수만 생각날뿐,

펄펄 끓는 라면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은 설악의 기운으로 벅차고 점점 충만 해지는데,

몸에서 느껴지는 반응은 본능에 이끌리는가 보다.

 

 

 

 

 

 

 

마등령에서 오세암으로 가는길은

 아름다운 숲 길이다.

울울 창창한 그늘이 이어지고, 시원한 계곡길이 이어진다.

 긴장의 끈이 조금 풀어지니,

순간 허기가 몰려 오면서,

"똥개 훈련"(?)에 이어 "기아 체험" 까지 하게 된다.

 셀파님이 난해한 질문 하나를 던지 셨는데,머리쓰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진다.

 배고 파서 머릿속엔 온통 지글 거리는 삼겹살 한점을 깻잎에 착 올려,

이슬이 한잔 먹는 생각으로 꽉 차있는데,

`인생의 참맛`에 대해 생각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1시간 후에 먹을`삼겹살의 참맛`만 떠오른다.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한다.

                우선,등산화 먼저벗고 선물로받은 거금 5천원짜리 깜장고무신으로 갈아신은다음,

계곡으로 직행한다.

맑은물에 발담그니,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거 같다.

 

그리고,오매 불망 기다리던 삼겹살 파티를 시작한다.

긴~~~침묵과 묵언,

한 10여분동안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안걸고 고기가 구워지는족족 부랴부랴 먹는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니,그제서야 이슬이 생각이 나고,

그 때부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을쯤,예고없이 나타난 구조헬기 한대가 모래 바람을 일으키더니,

미처 수습할 새도 없이 금쪽 같은 밥상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린다.

이 개뼉다귀 같은 상황에서도 다들 실실거리며 웃다가,

다시 밥상을 재정비한 후, 2차 술파티를 시작한다.

 옆자리 산님들과 자연스레 합석하고,밤 늦게까지 먹고 놀다가,

달빛과 별빛을 등불 삼아 수렴동 계곡물에 입수하고,

지난번 삿갓재 대피소에 이어,외간 남자들과 적과의 동침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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