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0년 10월 24일
산행지 : 영남알프스
산행코스:석골사-수리봉-억산-범봉-딱밭재-운문산
산행이야기:꼭1년만에 영남알프스를 찾는다.작년이맘때 처음으로 마주했던 광활한 억새평원은 오랫동안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었다.근데,잔뜩 부푼기대와는 달리 마음은 싱숭생숭하다.하필이면 겨울추위에 100mm가 넘는 비가 온단다.가끔은 계획수정도하고,세상과 타협도 해볼만하지만,나의 지랄맞은 성질머리는 일단 머릿속에 입력된이상 뒤도옆도 안돌아보고 앞만보게 된다.결국은 아침일찍 운악산행을 마친후,배낭꾸려 서울역으로 간다.
지난 화대종주땐,열혈아저씨들이 옆좌석에 앉는바람에 잠을 설쳤는데,
오늘은 `쏼라쏼라`하며 바로옆통로에 앉아있는 코쟁이들 세명때문에 통 잠을 이룰 수 없다.
다행히 중간에 내리긴 했지만,거의 반쯤잠긴눈으로 밀양역에 도착한다.
대구를 지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치질 않고,
일단 `미리벌광장`에서 콩나물국밥 한그릇 먹은 후,밀양역대합실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
개운하게 볼일도보고,세수도하고,얼굴에 뭣도칠하고,잠시 꾸벅꾸벅 졸기도하고..
어느새 날이밝아 석골사로 향한다.
석골사를 60m정도 남긴 지점을 들머리로 8시부터 오르기 시작한다.
추적거리는 가을비속에 운치있는 산행을 기대했건만,초장부터 죽여주는 된비알이다.
저멀리 달아나는 일행을 놓칠세라 똥빠지게 오르지만,
야박하게도 뒤도한번 안돌아보고 내처 오른다.피도눈물도 없는 독한사람들..
힘든코스라 미리 경고받았건만,처음부터 이렇게 힘든줄은 몰랐다.
처음만나는 표지석과 마주하고,얼굴디밀고 인증사진을 찍을새도없이 그냥 진행하신다.
갈길이 멀고도먼가보다.꽁지를 놓칠세라 그저 땅만보고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배낭짐은 왜이리 무겁고 버거운지 어깨가아프고 갈비뼈까지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비오는날의 운무가 눈을 즐겁게 만들어 잠시나마 육체의 고됨을 잊게해주고,
낙엽길은 폭신하고,산공기가 참으로 맑다.
억산 944m
가을비오는날,참으로 억센산여인이 `억``억`소리내며 도착한 `억산`!!
돌덩이같이 무거운 배낭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니,오마이갓!
산봉우리들이 구름이불을 덮고있다.이 활홀한 풍경에 언제 힘들었냐는듯 실실거리며 웃음을 흘린다.
가을색으로 물든길따라 범봉으로 향한다.비는 오는듯마는듯 찔끔거린다.
물기머금어 빨갛고 노란색이 더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젖은낙엽밟으며
`시몬 너는아느냐? 어쩌구저쩌구`하면서 감상에 잠겨보는것도 잠시,
숨이 턱까지 찰만큼 힘든구간이 이어진다.
꼴깍거리며 범봉에 도착하니,두 갈래길이 나온다.
주저없이 오른쪽등로따라 한시간쯤 가다보니,어째 이상하다.끝도없이 아래로아래로 내려간다.
안개로 꽉차 지형을 읽을 수 없어,산악회시그널따라 무작정 걷다보니,계곡길로 떨어져버렸다.
계곡물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하자,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걸 감지하고,다시 범봉으로 오른다.
배는 고파죽겠고,갈길은 멀고도멀고,힘은 쭉빠지고..
엎친데 덮친다더니,앞장서서 혼자서 냅다 달려가다보니,이 길이 아니다.
범봉으로가는 갈림길을 지나치고도 한참을 내려왔고,일행까지 놓쳐버렸다..
순간 방향감각이 상실되고,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된다.
목청높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다.전화기도 꺼져있다.
이러다 조난당하는건 아닌지 공포가 밀려오고,정신이 혼미해진다.
울먹거리며 오던길을 되짚어 오르면서 더 큰소리로 외친다.
얼마쯤 지났을까? 어딘가에서 호루라기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울림따라 미친듯이 오르고,
멍청한 나를찾아 내려온 일행과 드디어 상봉한다.
하마터면 `산여인`이 아니라 `죽은여인`되어 돌아갈뻔한 아찔한 경험을 한다..
우여곡절끝에 다시 범봉에 도착해,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신하는데,
놀랬던가슴이 진정이 안되어 입에넣은 떡한조각이 목구멍에 턱걸쳐 넘어가질않는다.
도로 뱉어버리고,젖먹던힘을내어 운문산으로 향한다.
더이상 쓸힘이 없어 에너지고갈이 될즈음,드디어 운문산에 도착한다.
사방이 뻥뚫린 정상에 서자,믿지못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해넘이와 어우러진 운해의 장관에 입을 못다물정도다.
그 순간,쫄쫄굶었던 뱃속도 꽉 채워진 느낌이고,
죽을맛이었던 오늘의 산행길도 황홀한맛으로 확 바뀌어버린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더니,그 즐거움이 이제야 충만하게 내게로 찾아들었다.
운문산에 도착한시간이 이미 4시를 훌쩍 넘긴시간이라 오늘산행은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마침 1킬로 떨어진곳에 상운암이라는 암자에 물도 있고,벽돌깔린 헬기장도 있으니,비박장소로는 아주 딱이다.
더이상 걸을힘도 없는터라,지친몸을 쉬어가기로한다.
천상의운해위에 오성급호텔을 10분만에 세우고나서,배낭내려놓고 상운암으로 가는길은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세수도하고 양치도하고,상운암마당에 서니,점점 하늘이 벌개진다.
물통들고 달음박질로 운문산에 오르니,눈으로보이는 모든풍광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소리내어 말로 표현하는건 사족일테고,
그저 숨죽여 찬찬히 내려다보는것으로도 감동이고 벅찬환희다.
시시각각 변하는 운해의 흐름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몸이 으스스 추워질때까지도 정상에서 떠나질 않는다.
비오는날의 성가심을 감수하고 나선 보상치곤 과분한 선물을 받은,내 인생최고로 특별한 날이다.
휘영청밝은 보름달과 반짝거리는 별빛아래서 삼겹살파티를 시작한다.
깻잎싸서 한점먹고,배춧잎싸서 또 한점먹고,묵은지싸서 또 한점먹고..
나의 젓가락질은 쉼이없고.덩달아 홀짝홀짝 술도 잘 넘어간다.
바람한점없고 순한날씨인데다,생각보다 포근한 날씨덕에
꽤 늦은시간까지 별빛아래서 사건사고많았던 오늘산행의 무용담으로 시간을 보낸다.
'산행이야기 > 산행(2009~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장산(전북정읍) (0) | 2010.11.01 |
---|---|
영남알프스 둘째날 (0) | 2010.10.26 |
운악산(경기가평) (0) | 2010.10.23 |
북한산(서울/경기의정부시) (0) | 2010.10.19 |
연인산(경기가평) (0) | 2010.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