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1년 1월 15일
산행지 : 백덕산~사재산
산행코스 : 관음사-용바위-백덕산-당재-사재산-관음사
산행이야기:알록달록한 캐리어 끌고오신 손님들이 가시자마자,딥다큰 회색의 캐리어를 끌고 또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친다.따박따박 삼시세끼 차리는게 여간 골치아픈게 아닌데다,하루에 열두번도 더 쓸고닦고하느라 온몸이 고달프다.이럴땐 산공기마시며 걷는게 최고의 보약이니,손님들 눈치만 살살보다가 기어이 배낭을 꾸린다.
올겨울들어 최고로 춥다는 오늘,집앞을 나서는순간 코끝이 싸~아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참을만한 정도라 추위걱정은 뒤로하고,들머리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한다.
다행히 바람도없고,햇살도 좋고,하늘도 파랗다.
뽀득거리며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받으며 산죽길을 호젓하게 걷는 기분이 참 상쾌하다.
일주일간 때아닌 시집살이로 지쳐있던 몸이 스르르 풀린다.역시 난,산에와야 기운이 펄펄 난다.
기온이 점점 차가워진다.가파른 오르막을 걸어 능선에 올라서니,골바람이 장난아니다.
눈을 뜰 수 없을정도로 눈보라가 일고,귀가 떨어져나갈거 같다.
물통에 들어있는 물은 이미 마개부분이 얼었고,먹다남은 감 몇조각은 살짝 얼어 샤베트가 되어있다.
2킬로 남았다는 이정표를 본 지가 아까아까였는데,좀처럼 거리도 줄지 않는거같다.
전망바위에 닿아 시원한 조망앞에 섰는데도,너무 추워서 냅다 내려온다.
이 와중에도 대포카메라 장만한 후,야심차게 첫출사하신 큰 S님은 연신 카메라 눌러대며
있는폼없는폼 다 내고 계신다.
있어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금을 투자해 장만하셨다는데,
요리조리 살펴봐도 본연의 어정쩡한 폼은 여전하시다.
물한모금 안마셨는데도 소변은 왜이리 자주 마려운지,벌써 두번이나 영역표시를 했는데,
그럴때마다 궁댕이가 시려 죽을지경이다.
백덕산 1350m
정상인증만 간신히 하고 후다닥 당재로 향하는데,
길도 미끄럽고 눈쌓인 등로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구간이 많다.
급조한 스틱 한짝이 그나마 도움이 된다.
이러다 동태가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살아서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칼만 들면 강도로 보일정도로 눈만 빼꼼히 내놓고 완벽하게 중무장을 했는데도,
입이 얼어서 말이 어눌해지고,발끝손끝은 마비현상이 오고,추워서 뒤질지경이다.
모자에 고드름이 달리고,눈썹이 얼어 눈깜박거리는것도 이상하다.
사재산이고뭐고 그냥 하산했음하는 마음만 굴뚝같은데,쉼없이 움직이다보니 약간 살만해진다.
계획대로 움직일 요량으로 양지바른 길목에서 속을 채우기로 하는데,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먹을수가 없다.
젓가락질은 고사하고,밥숟가락 들고 입으로 떠넣는 작업도 큰 고역이다.
양반체면이고뭐고 촐싹거리며 뜀박질 열번하고 밥한술먹고,또다시 뜀박질 열번하고 김치한조각 먹고,
매실주 한잔마시고 국민체조하고...
온갖 요란법석을 떨며 경박스런 식사를 하는데,
유일하게 A님만이 장장 40분을 꿋꿋하게 꼼짝않고 앉아,진정한 산행의 고수님답게 경건한 식사를 하신다.
사재산 1166m
산행역사상 최악의 날씨다.
이미 내몸은 반동태가 되어 있다.
이놈의 사재산정상은 왜 안나타나는지 화딱지나고,힘빠지고,돌아가시기 일보직전이다.
봉우리를 몇개나 넘었는지 모르겠다.저 봉우리다 싶으면 헛탕이고,
요번엔 진짜 정상이겠지 싶으면 또 헛탕이고를 반복하고,
등로도 불분명한 눈쌓인 길을 똥빠지게 걷고걸어 드디어 사재산에 도착했는데,
딸랑 표지목하나 히쭈그레하게 걸려있다.아,허무하여라..
어찌됐든,이젠 어둡기전에 하산할 일만 남았다.
점점 추워지니,허벅지까지 시려오고 콧물 훌쩍거린 흔적이 두줄로 선명하게 그려진다.
조신한 산여인 꼬락서니가 오늘 말씀도 아니시다.
마을이 바로 아래 보이는데도 쉽게 도착하지않고,가파른 내리막과 두어군데 험로를 지난다.
하늘에 울긋불긋하게 노을이 이쁘게 질 무렵에야 마을에 닿고,관음사 바로 뒷편으로 떨어지며
하마터면 얼어 죽을뻔 했던 백덕산~사재산 환종주를 무사히 마친다.
맘씨고운 작은s님이 연포탕을 사주신다길래,평균속도 120킬로로 달려 2시간여만에 태릉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었다.
뜨끈한 국물이 속을 달래주고,불같이 매운 낙지볶음으로 속에 열불을 내주니,
그제서야 하룻동안 얼어있던 몸이 녹는다.
집에와서 배낭을 풀어헤치니,아이젠 한짝이 없다.
지난번엔 그놈의 술때문에 스틱을 잃어버려 속쓰림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연말엔 맨땅에 헤딩을 하더니,연초엔 줄줄이 분실사고까지..무슨 푸닥거리라도 해야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도대체 가출한 내 정신줄은 언제쯤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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