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둘째날
산행이야기: 새벽녘에 일어나 밖에나가니,간밤의 성난날씨는 온데간데없고 달빛곱고 별이 총총하다.낮게 깔린 운해가 벌써부터 가슴두근거리게 만들고,저 아래 속초시내의 불빛이 선명하게 보이는 참 맑은 날씨다.늘어지게 주무시고 싶다는 아리님을 남겨두고 혼자 대청일출을 보러간다.
산장지기님이 일러주신 시간보다 10분이나 먼저 나왔더니,오늘의 대청손님은 내가 첫손님이다.
붉은기운이 넘실거리는 운해위로 퍼지기 시작하고,
턱 걸친 구름속에 나타난 설악의 봉우리는 마치 용의 허리를 닮아있다.
제우스신이 헤라와 곧 나올듯한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며 붉은색의 바다가 나에게로 물밀듯이 몰려온다.
이쪽저쪽 둘러보며 하늘의 묘한색의 향연에 반해,정신 못차리고 있을즈음,
어디선가 `올라온다!`하며 환호를 한다.
다들 총알같이 방향틀어 한 곳을 바라보니,해가 순식간에 뿅! 튀어올라온다.
그리고,올들어 처음맞는 대청봉에서의 일출이니,두손모아 빌어본다.
우선,이놈의 뽀드락지가 하산할때까지 성내지않고 잠잠해져주기를 빌고,
어느분이 태백산 천제단에서 구배하며 빌었다는 `부국강국`도 빌어보고,
내마음의 평화가 오기를 빌고,건강을 빌고,내가아는 모든분들의 행복을 빈다..간절히..
한참을 머물었는데도 그래도 미련이남아 뒤돌아보기를 여러번 한끝에야
배꼽시계가 울려대는 바람에 산장으로 내려온다.
저만치 아리님이 깔깔이옷입고 마중나와 기다리시고,
아침의 빛이 이쁘다며 이곳저곳 둘러보신다.
입술이 얼얼해져서야 산장에들어 언몸을 녹이고난 후,누룽지를 끓인다.
배고프던참에 바닥까지 싹싹긁어 먹어치우고,9시30분쯤 여장꾸려 천불동으로 향한다.
하도 춥다길래 단단히 준비했는데,생각보다 포근한 날씨다.
바람도없고,이만하면 햇살좋은 따뜻한 봄날과 다름없다.
중청에서 소청구간에 펼쳐있는 상고대가 참 이쁘다.
저멀리 아리님의 모습이 안보이는데도,혼자서 통통거리며 만끽하다가,희운각으로 내려가는데,
거의 썰매타듯 쭉쭉 미끄러져 자동으로 내려간다.
양폭산장에서 또한번 mp1708님네 일행분들과 해후를 하고,다음산행길의 동행을 약속드린다.
한겨울의 조용한 계곡길이 너무 좋아서 천천히 걸어내려오니,그 기나긴 거리가 엄청 짧게 느껴진다.
빛들어오는 이쁜길을 걸어 설악동에 도착하며,
느닷없이 무작정 계획했던 산행을 마무리한다.
속초로 이동하는 도중,지리산으로 떠났던 큰S님으로부터 기분좋은 전갈이온다.
오늘날씨가 개판이라서 천왕일출은 고사하고,눈길을 헤치고 하산하느라 죽다살아났다는..
횟집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먹는 광어회와 이슬이맛이 오늘따라 더 죽여준다..
무작정 나선길,잃은것도 얻은것도 없다.
길위에 내려놓은것도 훌훌 털어버린것도 없다.
가슴에 채워온것도 머리를 비운것도 없다.
결론지은것도없고,애써 지으려고도 안했다.
그냥 물흐르듯,세월가는대로, 내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행(行)하는거,그게 답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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