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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이야기/산행(2009~2019)

설악산(설악골~가야동계곡)

산행일 : 2011년 8월 11일

산행지 : 설악산

산행코스 : 설악동-설악골-사태골-범봉-1273봉-공룡능선샘터-공가골-가야동계곡-??골-오세암-백담사

산행이야기:두렵지만 호기심에 한번은 밟아보고 싶은곳,설악의 은밀한 곳으로 간다. 

 

막차타고 속초에 도착하니,새벽1시도 안되었다.

따끈한 국한그릇이라도 먹으면서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그냥 택시타고 설악동으로 이동한다.

매표원이 꾸벅꾸벅 졸고 있어,입장료도 안내고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무려 6천원이나 되는 거금을 아낀다..앗싸~

쏟아질듯 총총히 떠있는 별빛과 막 차오르는 달빛이 굳이 렌턴빛이 없어도 걸을만큼 환하다.

비선산장에 이르러 데크에 자리펴고 누워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

달빛별빛의 은은한 조명아래 하늘을 이불삼고,계곡물소리를 자장가삼고,바람을 벗삼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3시넘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않은 시간..

비선대지나 살짜기 설악골로 스며들자 계곡물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진다.

양팔을 모기에 뜯겨가며 아침밥을 먹고나니,그제서야 날이 새고 설악골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면길을 걷다가,계곡을 거슬러 오르다보니,두 산악인의 슬픈사연을 품고있는 석주길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우린 오른쪽으로 계속 진행하고,조금위로 올라가면 설악좌골과 우골의 합수부에 이른다. 

 

 

 

 

가을바람이 분다.

계곡의 찬기운과 합쳐져 땀이 흐를새가 없다.

척후병으로 보낸 선배님이 사태골로 오르는 길을 찾아내시고,

드디어 산사태가 난다고 하여 이름붙혀진`사태골`로 접어든다.

작년에 잦은바위골에서 내려왔던 길이지만,지형이 변했는지 영 생소하다.

처음엔 명성(?)만큼은 아니라면서 좀 시시하네어쩌네 하다가 고도를 높히면서 오르다보니 점점 위험천만해진다.

작은 자갈돌에서부터 큰 바위덩어리는 조금만 건드려도 우르르 아래로 쏟아져 내릴것만같다.

한발짝 한발짝씩 조심스레 옮기며 경사진길을 오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나고 가슴이 울렁거릴정도로 천길만길 낭떠러지같다.

자연의 두려움..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부딪히고 헤처나가면서의 그 즐거운 스릴이 중독이되어 나를 이끈다..    

 

사진에서 봤던 호리병모양의 바위를 보며 사태골로 제대로 접어들었음을 다시 확신한다. 

 

 

 

 

범봉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바위를 수놓은 바람꽃과 솔체꽃이 환영하듯 환하게 피어있어 한동안 발길을 잡는다.

바로 앞에서 바라본 범봉은..그냥 커다란 멋대가리없는 바윗덩어리에 불과하다.

멀리서 봤을땐 엄청 웅장하고 신비스러웠는데,100m미인이었네..

 

몸이 휘청거릴정도의 바람이 요동치며 불어댄다.

옆에계신 싸모님(?)말씀이 바람이 지랄발광을 한단다..ㅎㅎ

바위를 꽉꽉 잡아가며 오르내린다.

시원찮은(?) 거시기모양의 바위를 지나니 바람이 좀 잠잠해진다.  

 

 

 

 

 

범봉만 지나면 좀 수월한 길이 나올꺼라 생각했지만,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좁은등로를 잡목을 헤치며 고도를 높히자니,너무 힘들다. 

고전끝에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선다.

1275봉이 저만치 보이는걸보니,여기가 1273봉쯤 되나보다.

사방이 훤히 보이는 바위에 올라 또한번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을 맞으며,

그 동안엔 못느꼈던 설악의 색다른 맛을 느껴본다.

 

선배님이 길을 살짝 틀어 내려가시는 바람에 또한번 잡목을 헤치게 되고 어렵사리 공룡능선 약수터에 이른다.  

 

 

 

줄을 넘고 `탐방로아님`이라는 팻말을 지나쳐 공가골로 내려간다.

물에 젖어 미끄러운 바위길을 내려가니,때묻지않은 공가골의 비경이 펼쳐진다.

그냥 마셔도 될만큼 맑은물,파란물빛,고요한 숲..딱 우리들셋만 만끽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가야동계곡으로 접어드니 채 12시도 안되었다.

이제,가슴졸이는 구간도 지났고 조금만가면 수렴동계곡이라하니 탱자탱자 놀다가기로한다.

가져온 술이 모자르네어쩌네,이왕 집나온김에 수렴동에서 하룻밤 더 자면서 밤새 술을 푸네어쩌네하다가,

이 분위기를 몰아 수렴동에서 하룻밤 묵고가자는 의견이 나온다.

선배님이 운을떼시고,아리님은 난감해하시는데,딱 술한잔이 부족한 내가 불을 확 질러버린 결과다.

선배님이 먼저 용대리로 내려가셔서 하루치 양식을 조달해오시기로 하고,수렴동에서 합류하기로한다.

그 사이에 우리는 선녀탕을 만들어 홀랑벗고 퐁당퐁당 물장구를 치고..

(이 때까지만해도 지금부터 우리앞에 펼쳐진 골때리는 상황들을 상상조차 못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음을 나중에 알게된다)

 

계곡에 파묻혀 1시간쯤 놀았을까,이제그만 수렴동으로 갈 채비를 하는데 저만치서 선배님이 도로 올라오신다.

가는길이 장난이 아니라고,시간도 많이 지체될꺼라고,수렴동에서의 하루는 그냥 접자고 하신다.

 

 

 

바위길을 살살 내려오고,건너뛰고,

벌써 두번이나 어의없게 미끄러지면서 양쪽팔은 상처투성이고,그렇게 가야동계곡을 내려온다.

물빛은 정말 끝내준다.설악은 이렇게 깊고깊은곳에 아름다움을 숨겨놓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봐왔던 설악은, 단 10%도 안되는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답이 나오지않는길과 맞닥뜨린다.

오세암과 연결되는 가야동계곡과 합쳐지는 오른쪽 계곡길을 잘못 들어섰다. 

오세암이 나타나야하는데 가도가도 나타나기는 커녕 길은 점점 사납고 날카로워진다.

네발로 기어오르고,물길 떨어지는 곳을 벌벌거리며 우회하고,우거진숲을 헤치느라 몸은 점점 지쳐만간다.

어느순간 밀려온 두려움과 공포는 손을 달달 떨게 만들고,가슴은 벌렁벌렁 진정이 안된다.

뒤돌아가기엔 너무 멀리까지 올라와버렸다.설사 선배님이 뒤돌아가라해도 죽어도 못간다.무섭고 힘드니까..

죽을힘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른다.

흑흑..눈물이 막 나올라한다...

    

오세암

 

2시간가까이 공포의 계곡을 거슬러 올라 드디어 정규탐방로를 만나며 놀랬던가슴을 쓸어내린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이 쑤셔오고 머리도 아프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오세암이 1.2킬로정도 남았다.

부지런히 걸어야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가는 마지막버스를 탈 수 있다.

또 걷고 걷는다.육체적인 힘은 바닥인데 `정신력`이라는 새로운 힘이 생긴다.

오세암지나고 영시암지나고,죽을똥살똥 뛰다시피 걸어 천신만고끝에 백담사에 도착한다.

7시가 막차인데,도착시간이 딱 6시58분이다.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보는데,벌렁대던 가슴은 좀처럼 진정이 안된다.

 

원통에서 서울로가는 막차는 이미 떠나고 할수없이 홍천까지간다.

다행히 서울로가는 10시 20분차가 있다.

대합실에서 1시간정도 기다리는동안 긴 의자에 축 늘어져 사경을 헤매며 곯아떨어져 자고있는데,

누군가 툭툭 건드리며 깨운다. 

오마이갓~거의 일년만에 보는 평해황씨 28대손 황대근 사촌오라버니다.

비몽사몽간에 볼때는 하도 기똥차게 자고있어서 풍기문란하다고 터미널직원이 깨우는줄 알았다. 

하필이면 이런 꼴로 있을때 만나다니..망신살..

 

18시간동안 머물렀던 설악산..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은 일순간 세찬 바람이되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일순간 거친 야수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기억은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자되고,설악이 손짓하는 또다른 유혹의 길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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