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둘째날
(삿갓골대피소-삿갓봉-남덕유산-영각사)
새벽녘에 일어나니 억수로 비가 쏟아진다.
우르릉쾅쾅거리며 천둥번개까지 친다.
화장실가는것도 보통일이 아닌지라 오줌마려운데도 꾹참고 처마아래 의자에 앉아 처량맞게 밖을 쳐다본다.
여름날 삿갓골대피소와의 인연은 늘 비를 동반했다.
이번엔 징크스를 깨려나 했는데,아직은 아닌가보다.
설상가상으로 전라북도에 호우특보가 내렸다며 다들 황점으로 하산하라네..
비의 강도와 양을 보니 예삿비가 아닌듯 싶지만,이대로 내려가기는 싫고...
일단 천천히 아침먹으며 날씨상황을 살피기로한다.
누룽지탕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정도로 대충 식사를 마치고..
모닝커피한잔씩을 마시고 났는데도 여전히 쏟아지는 비..비..비...
모범생인 몽몽님과 샷님은 강력하게 황점으로 내려가시겠다하고..
나는 산장지기 몰래 남덕유산으로 스며들겠다하고..
쭌이형은 다수의사에 따르겠다며 어정쩡하게 답하신다..
비가 좀 잦아들면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싶어 마렵지도 않은 응가가 마렵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려보고,
배낭짐도 천천히 늑장부리며 정리해보지만,날씨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비가오든말든 남덕유로 가야겠다는 내 마음도 변함이 없다.
좀 치사한 방법을 써야겠다.
말없이 일행들보다 먼저 신발끈을 맨다.
그리고는 삿갓봉을 향해 뒤도 안돌아보고 36계 줄행랑~~
마누라 혼자 이 빗속으로 가도록 놔둘 몽몽님이 아니란걸 다 안다.
그럼그렇지..어느정도 올라 뒤돌아보니 몽몽님이 꾸역꾸역 뒤따라온다.뒤이어 쭌이형도 오시고...
계곡으로 하산하는줄 알고 샌달을 신었는데 미처 등산화로 갈아신지도 못하신채...
삿갓봉을 지나도 월성재를 지나도 그치지 않는비..
등로는 움푹 패여 도랑이 된 곳이 많고,그 흙탕을 첨벙거리며 걷는다.
안개숲이 되었다가 다시 살짝 걷히고..또 비가 쏟아지다가 바람이 불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중산행이로세~~~
생기있는 꽃들을 담고싶어도 카메라 꺼낼 엄두도 못내다가,
남덕유산을 얼마 안남겨두고 잠깐 비가 잦아드는 틈을 타 물기머금은 모싯대를 담아본다.
남덕유에 오르기 일보직전..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던 비가 어느정도 잦아들기 시작한다.
하늘이 도왔나?? 바람이 강하게 불더니 서봉이 보일랑말랑하고 서상면일대가 보일랑말랑한다.
얼마안가 산아래마을은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산등성마다 구름이 넘나든다.
남덕유산 1507m
이제사 허기를 느끼고 사과반쪽씩 먹고...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멋드러진 움직임에 취한다.
우리가 가야할 철계단도 보이기 시작하고...
한동안 구름은 저 봉우리를 넘지못하고 있다.
영각사로 향하는 남덕유 능선엔 솔나리 세상이다.
먼산 바라보고 있는 솔나리가 참 청초해보인다.
올핸 가는데마다 솔나리 복이 터졌다.
지난번 설악에서도 그랬고,오늘 이곳에서도 완전 복터졌다.
(긴산꼬리풀)
(바위채송화)
(솔나리)
(난장이바위솔)
어느새 능선을 내려와 숲속으로 들고..
숲길가엔 나리꽃이 촉촉히 젖어있다.
다시 비가 쏟아질듯 우중충해진다.
영각사로의 하산을 서두른다.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계곡물에 깨끗이 씻고,
영각사 주차장에 닿으니,황점으로 내려가셨던 샷님이 벌써 차량회수해서 기다리고 계신다.
의리없이 남덕유로 튄 세사람 뭐가 이쁘다고 점심으로 머루자장면 한그릇씩 사준다며 유명맛집으로 안내하시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음식점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할 수없이 바로옆 정자아래서 배낭떨이에 들어간다.
먹다남은 음식이 제법 많아 든든하게 요기를 하고나서 3시간만에 뚝딱 서울에 도착한다.
하루는 꽃속에서,또 하루는 빗속에서 보내며,
여름 덕유산의 매력을 맘껏 느껴본 1박 2일간의 덕유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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