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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이야기/비박이야기

민둥산 비박

 

산행일 : 2015년 6월 27~28일

산행지 : 민둥산

산행코스 : 증산초교-급경사길-정상-증산초교

산행이야기:주말만 되면 으레 산으로 튀던 습관을 본의아니게 한달가까이 버렸더니,어느샌가 귀차니즘이 자리잡는다.하루종일 방바닥에 착 달라붙어 뒹굴대다보니 점점 늘어나는건 뱃살이요,꿰는건 방송스케줄뿐이니..이번주는 크게 맘먹고 비박산행을 떠난다.

 

(물레나물)

 

막상 배낭을 꾸려놓고도 갈까말까 고민..

한동안 해왔던 주말습관이 머릿속에서 유혹을 한다.

원플러스원 피자헛 피자먹으며 불후의 명곡도 보고싶고,슈가보이 나오는 마리텔도 보고싶고,드디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여왕의 꽃도 봐야하는데.. 

습관이 정말 무섭긴 무섭다.

밍기적거리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선다.

비박지를 검색하던중,초록으로 뒤덮인 이국적인 풍경의 여름민둥산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에 오늘은 꼭 나서야만 했다. 

 

오후의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시간에 산으로 들어간다.

오전까지 비가 내렸는지 땅은 촉촉하게 젖어있고,수풀도 송알송알 이슬이 맺혀있어 생기가 있다.

어차피 왔으니 이왕이면 온몸 흠뻑 적셔가며 빡세게 올라가보자싶어 완만한길을 버리고 급격한 경사를 택했는데,길을 꺾자마자 몸말리러 나온 뱀한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맞이한다.허걱..

 

 

시야 참 좋은 날이다.

전망대에 이르니,백두대간상의 함백산과 매봉산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있다.

가열차게 백두대간을 걸었던 날들이 이젠 까마득한 옛일로 느껴진다.불과 3년도 안되었는데...

그 때의 그 열정은 어디로 간걸까?

 

 

하늘과 가까워지자 사방이 시원하게 탁트이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몰아치는 숨을 가라앉히며 주변을 둘러보니 너무 아름답다.  

길섶엔 개망초에 하늘나리 털중나리 그리고 으아리가 예쁘게 피어있고,

하늘은 가을하늘마냥 높고 푸르고,은빛억새 출렁거리던 자리엔 초록이 물결친다.

그리고 길게 뻗은 능선위로 녹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민둥산

 

정상을 올랐던 몽몽님이 다시 내려온다.

정상데크는 이미 입주완료라고..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그래도 올라와보니,역시나 동간 간격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더 멋진 곳에 집을 지었다.

몽몽님말을 빌리면,정상데크가 연립주택 밀집지역이면 우리집은 고급전원주택이라고..  

 

 

(하늘나리)

 

과연 멀리서 내려다보니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이다.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이 낮게 내려앉는다.분위기 죽여주신다.살살 바람이 불때마다 억새향이 달큰하게 풍겨온다.

여름 민둥산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줄 이제서야 알게 됐으니..

가을산행지로만 머릿속에 박혀있던 선입견이 순식간에 깨지는 순간이다. 

 

 

 

정상 뒷편은 더 아름답다.

군데군데 서있는 나무며 브로콜리처럼 몽글몽글 박혀있는 키작은 나무들이 완전 그림같다.

땅이 움푹 꺼져 있는곳,바로 돌리네(doline)지형이라고..

 

`민둥산에 분포하고 있는 암석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땅이 움푹움푹 꺼져있는곳이 많다.

석회암은 빗물에 쉽게 녹는 성질이 있어서 암석이 녹으면서 표면이 웅덩이처럼 들어가는것이 특징이다.

이를 돌리네라고 부른다

이 근처의 암석은 지금으로부터 약 5억5천만년전(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얕은 바다에서 퇴적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린초)

 

태기산 위로 해가 진다.

화려하진 않아도 너울거리는 산그리메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모습이 멋스럽다.

 

 

`쏟아진다`는 표현말고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없을만큼 별이 쏟아지는 밤이다.

고급지게 먹어보겠다고 꽃등심과 부채살을 사왔더니만,부채살은 아예 개봉도 못하고 밥시간을 접는다.

역시나 비박음식은 삼겹살만한것이 없다는걸 다시금 절실히 깨닫는다.

모기퇴치용 스프레이를 여기저기 뿌려놓고 이슥해질때까지 의자에 앉아 밤이슬을 맞는다.

 

알람이 울리기도전에 뻐꾹새가 단잠을 깨운다.

바깥에 나와보니 사방으로 운해가 만들어져있다.

호들갑떨며 몽몽님을 깨우니 운해고뭐고 잠이나 더 주무시겠단다.

 

 

 

종잡을 수 없는 산날씨다.

해뜰 시간이 가까워지자 순식간에 안개가 몰려오며 한치앞도 안보이는 날씨로 돌변한다.

방금전까지만해도 멋진일출을 볼 수 있을꺼란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하얗게 내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산책길에 나선다.

 

 

 분위기 잡아보겠다고 홀로 새벽숲으로 들어왔건만,얼마안가 등산화며 바짓가랑이며 양말까지 흠뻑 젖고..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개구리 한마리에 간떨어질뻔 하고..

다시 되돌아가자니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에라 모르겠다.못먹어도 고다. 

 

 

여기서  범꼬리 군락을 만날줄이야..

안개속에서 희끗희끗한게 보여 다가가니 바로 범꼬리다.  

 

 

햇살이 번지면서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바람이 안개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시시각각 수없이 풍경이 변하고,

풍경은 마치 움직이는 수채화처럼 경이롭다.

 

 

안개가 걷히며 우리집도 완전히 드러났다.

내려다보니 몽몽님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뭐가 급한지 벌써 장비정리중인가보다.

 

 

민둥산의 또다른 얼굴과 마주한다.

소백산 같기도하고..제주의 오름 같기도하고..

어디선가 사슴들이 튀어나와 뛰어놀거같은 아름다운 초원이다.

 

 

 

 

(엉겅퀴)

 

아침 먹고나서 다시 정상을 오른다.

안개속에서 봤던 범꼬리군락을 다시 보고싶었다.

확연하게 드러난 돌리네 지형도 다시 보고 싶고..

모델이 필요하니 함께 가자하니 단칼에 거절하는 몽몽님..

40여일만에 산행한 후유증으로 허벅지에 알이 배겼단다.

 

봐도봐도 질리지않은 초록빛..

초원위에 하늘나리의 주황빛과 기린초의 노란빛,그리고 엉겅퀴의 보랏빛이 자리하며 그야말로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으아리)

 

(엉겅퀴)

 

다시한번 범꼬리와 눈맞추고..

또한번 바짓가랑이는 흠뻑 젖는다.

 

 

 

실컷 놀만큼 놀았다.

이젠 햇살이 따가워졌다.

머물었던 자리 아니온듯 싹 치우고는 산을 내려간다.

홀딱 반해버린 민둥산을 자꾸만 뒤돌아보며..

 

 

 

급경사길이 오를땐 그런대로 괜찮았는데,내리막은 영 아니다.

땅이 젖어있어 미끄러운 흙길을 힘줘가며 급격하게 내려오니,무릎이 뻑적지근하다. 

몇걸음 줄여보겠다고 잔머리 쓴게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옥수수 한봉지랑 곤드레나물 한봉지 사들고 정선을 떠난다. 

아름다웠던 민둥산의 여름을 고이 간직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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