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둘째날

 

설악산 둘째날

 

(대청-중청-희운각-공룡능선-신선대-마등령-마등령삼거리-백담사)

 

산장에서 한번도 깨지 않고 푹 잔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군가 맞춰놓은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니 4시다.

이리저리 뒹굴거리다 대청봉에서의 일출을 보기위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다.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더니 바다위로 붉은해가 솟는다.

조금은 밋밋한 일출이지만,새벽의 공기만큼은 청량하기 이를데 없다

설악의 좋은 기운들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흡수되면서 몸이 개운해진다.

 

 

 

안먹어도 배부를만큼 좋은 공기를 실컷 마신 기분이지만,본능적인 욕구까지는 충족이 안된다.

어제 이른 저녁을 먹은터라 뱃속에서 밥달라고 아우성이다.

짙게 산그림자 내려앉은 꽃밭을 연신 곁눈질하며 대청을 내려선다.

 

 

대피소 마당 평상에 앉아 맑은 공기 마시며 아침을 먹는다.

옆테이블 어르신들,혼자 먹는게 안돼 보이는지 됐다고 됐다고 하는데도 자꾸 뭘 챙겨주려 하신다.

 

6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쬔다.

오늘 공룡능선 넘으려면 고생 깨나 하겠구나~~

 

(참기생꽃)

 

소청갈림길 가기 전,어제에 이어 참기생꽃을 또 만났다.

 

 

내가 가야할 공룡능선을 바라보니,더위에 대한 걱정은 커녕 어서 빨리 저 품에 안기고 싶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저 속에 숨어있을 보물들을 생각하는것만으로 막 흥분되어 나도모르게 걸음을 빨리한다.

정말이지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이 틀림없다.

희운각에 도착해 물을 충분히 채워넣고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공룡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선대

 

아,언제봐도 심장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 멋진 봉우리들이여~~

망연히 앉아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영혼은 맑은 기운으로 가득 채워진다.

나 죽거든 화장해서 공룡능선에 뿌려달라 했는데..ㅎ

 

지금부턴 보물찾기 시작~

첫번째 보물로 난쟁이붓꽃을 찾았다.

그리고,다음은 산솜다리,그리고 금강봄맞이...

조금 이르지 않을까 했는데,기특하게도 하나하나 다 나타났다.

 

(산솜다리)

 

 

(금강봄맞이)

 

(자주풀솜대)

 

 

여전히 바위틈에서 가녀린 꽃대를 올려낸 금강봄맞이..

 

 

 

 

꽃들과의 황홀한 만남으로 걸음은 진전이 잘 안된다.

몇걸음 못가 멈추고,또 몇걸음 못가 멈춘다.

산행도 꽃도 포기할 수 없는게 언제나 함정이다.

 

 

산솜다리는 전보다 더 풍부해진거같다.

다만,등로를 조금 벗어난 바위 절벽에 피어있는터라 긴장의 연속이다.

대부분이`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곳에 있는 님`이라 애닳게 바라보기만 할때가 많다.

 

 

공룡의 풍경도 봐야지,꽃도 봐야지..바쁘다..

 

 

 

 

저멀리 바위에 피어있는 꽃송이들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려오는건 나중일이고,꽃부터 보는게 우선이라 배낭 내려놓고 기어올랐더니...

오마이갓~~완전 군락이다.

역시나..위험지수가 높을수록 수익률은 높다.

 

 

 

멀리 설악의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넣고 싶었지만,도저히 각도가 안나온다.

더우기 꽃과 배경의 노출차가 너무 커서 감동먹은만큼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는다.

하지만,눈과 마음은 최고의 호강이다.

 

 

 

1275봉을 오르기전에 노인봉을 들르기위해 잠깐 샛길로 빠져 10여분동안 수풀을 헤친다.

노인봉에도 산솜다리는 바위틈을 둥지삼아 여러송이 피어있다.

 

바로 앞에 1275봉이 우뚝 솟아있다.

말하자면 1275봉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전망터인셈이다.

나혼자 금지구역으로 들어왔다는게 뿌듯하기도 하고,한편으론 간이 배밖으로 나왔구나~싶기도 하고..

 

 

 

 

 

1275봉을 낑낑대며 오른다.

언제와도 쉽게 오른적이 없다.전신의 힘이 다 빠질 지경이 되어서야 안부에 올라선다.

그리고나서 맞이하는 바람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달콤하다.

물반병을 들이키는 것으로도 갈증이 안가셔 사과하나를 꿀처럼 먹어치운다.

그늘에 가만 앉아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경치지만,여기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땀이 식어갈 즈음 다시 뙤약볕 쏟아지는 돌길로 내려선다.

 

 

 

걸음에 집중해야지~하다가도 꽃이 나타나면 절대 지나칠 수 없다.

 

 

 

 

점점 쉬어가는 횟수가 많아진다.

물 마시는 횟수도 점점 잦아진다.

날씨는 아랑곳없이 따가운 햇살을 쏟아내고,하늘은 쨍하게 파랗다.

 

 

땀을 몇바가지 흘린끝에 먹는 꿀맛같은 점심이다.

물에 말아 밥과 함께 먹는 오이지와 멸치볶음..그리고 토마토 하나.. 

밥알하나,멸치꽁다리 하나 남기지않고 싹싹 해치운다.

 

(금강애기나리)

 

 

 

 

먹고나니 걸음 옮기기가 한결 수월하다.

점점 마등령삼거리가 가까워온다.

얼른 바윗길이 끝나고 시원한 계곡길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드디어 외설악의 풍광들이 보이는  마등령 삼거리에 닿는다.

오세암으로 방향을 틀어 숲으로 들어서니,완전 천국이다.

 

 

 

오세암

 

오세암에서 물한사발을 들이키고,다시 또 영시암에서 물을 들이켜가며 완만하지만 조금은 지루한 길을 이어간다.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니,드디어 길의 끝을 만나고,

딱 맞춰 용대리로 나가는 셔틀버스가 들어와준다.

백담터미널에서 한시간넘게 기다려서야 6시 동서울행 버스에 올라탄다.

그리고,집에 도착하자마자 85리터 배낭을 꺼내 또 비박짐을 꾸린다.